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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May 10. 2020

좋은 때

그리고 '더' 좋은 때

   그랬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를테면 최종 면접을 본 회사 인사팀에서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거나, 사랑하는 연인이 반지를 건네며 “나와 결혼해 줄래?”라고 말 한 그런 역사적인 날. 분명 행복하긴 한데, 어쩐지 슬쩍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아이러니한 경험,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정글 같다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가 지레 겁이 난다거나, 결혼과 함께 남자나 여자로서의 매력도 끝나버리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의 경우엔 아이를 가졌을 때가 딱 그랬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연달아 시도한 뒤에 나름 어렵게 ‘성공’한 임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복잡한 심정이 되어 슬며시 우울에 젖어버리곤 했다. 곧 만날 아이를 생각하면 한없이 감사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막상 내 몸 안에 생명체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몹시 불안했다. 임산부가 되고 보니 주변에는 조심해야 할 것 천지였고 앞으로 다가올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대단했다. 사회가 가하는 모성에 대한 압박, 예를 들면 태교 같은 개념 자체가 스트레스로 느껴지기도 했다.


   최근에 다시 이런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셋째를 임신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남편의 해외 발령 소식 때문이었다. 지난해 남편이 몸 담고 있던 사업부가 다른 회사로 인수되면서 출근해야 하는 사무실이 바뀌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는 바람에 재택근무를 하게 된 남편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자기 책상이 사무실 한가운데 붕 떠서 공중을 떠돌고 있는 듯한, 뭐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지. 인수합병 뒤에는 으레 조직개편이 있게 마련인데, 집에, 그것도 우리 집 같이 볕이 잘 안 드는 컴컴한 집에 갇혀 이렇다 할 소식이나 계획 없이 근무를 이어가는 마음이 동굴 같았을 거다.


   답답하고 어수선한 그 시기를 우리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버텼다. 이런저런 신나는 계획과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남편의 해외 발령이었다. 새로운 회사의 아시아 헤드오피스는 싱가폴에 있다고 했다. 싱가폴이라! 깨끗하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나라. 좋은 기억으로 남은 여행지다. 우리 부부는 당시에는 터무니없어 보였던,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우리 가족의 싱가폴 생활을 그려봤다. 상상은 자유니까!


그: 만약 싱가폴로 발령이 나면 어떨까? 우리 거기 가서 살 수 있을까?

나: 덥고 습하기는 하지만 깨끗하고 세련된 곳이잖아. 당신, 그때 본 슈퍼트리 쇼 기억나? 정말 환상적이었어. 거기서 나 프러포즈받고 싶었는데.

그: 그래. 우리 이미 결혼해서 6개월 된 아이까지 품에 안고 있었는데 넌 그런 말을 했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나: 그 정도로 좋았어ㅎㅎ 도시 전체가 인공미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 거기는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 수영장이 있대. 물 좋아하는 우리 애들은 매일 수영장에서 살 듯.

나: 게다가 외국인이 워낙 많은 곳이라서 우리 가족이 생활하기 한국보다 더 편안할 수도 있어(내 남편은 프랑스 사람이다). 애들 학교도 잘 되어 있을 거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록 좋은 점만 떠올랐다. 그곳이 세상에 없는 파라다이스라도 되는 양. 그리고 머지않아, 거짓말 같이, 남편은 진짜 싱가폴로 발령이 났다. 그러나 환호성이 터진 것은 잠시 뿐. 막상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하니 좋은 점은 페이드아웃되고 근심거리만 늘어갔다. 맛있는 한국 음식과 훌륭한 의료서비스, 편리한 택배시스템을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낯선 땅에서 아이들의 적응을 도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안 그래도 이중언어로 혼란스러운 아이들이 또 다른 새로운 언어를 접해야 한다는 것이 염려됐다. 비싼 집세와 학비는 또 어떻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지원은 해준다지만, 이전엔 몰랐던 싱가폴의 높은 물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해진 기간도 없이, 가족이나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내가 과연 무탈하게 지낼 수 있을까?

   

   아이들을 낳기 전에야 어디에 살건 무슨 일을 하던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외려 크고 작은 변화를 기다렸던 것도 같다. 서핑보드 위에서 파도를 즐기듯 인생의 장애물을 반갑게 타고 넘었던 시절. 다소 거칠고 대중없이 살아도 큰 문제가 없었던 시절. 그것을 ‘좋은 때’라고 불러도 된다면, 내게 그 ‘좋은 때’란 끝났다.

       

   하지만 '더 좋은 때'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연히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어 앞에 놓여 있는 지금,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도 그 길을 가기로 선택한다. 두려움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기회를 잡기로 한다. 어느 길을 가든 평탄대로만 펼쳐져 있진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를 그 모든 예상 불가능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기꺼이 그러안고 갈 뿐.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보니 슬 기대가 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시작이, 우리들의 '더 좋은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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