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하늘을 보니, 연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이 걷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었다. 오늘은 꼭 집을 나서야 했다. 어제는 머리가 복잡하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집 안에만 처박혀 있었으니까, 오늘은 몸을 더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의미로든 나아갈 수 있다.
아이들 등교 준비를 도와주면서 틈틈이 외출 준비를 했다. 과일을 깎고, 시리얼과 우유를 내놓고, 스무디 한잔을 만든 뒤 잽싸게 샤워를 마쳤다. 어제 입고 아무렇게나 걸어둔 까만 민소매 티셔츠와, 언제 걸어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옆 연갈색 리넨 반바지를 입었다.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빗어주면서 생각했다. 내게도 이걸 입을까, 저걸 입을까 전신 거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가끔은 특별히 신경이 쓰이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오랜 시간을 들이지는 않는다.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이제는 젊지도 않아서 뭘 입어도 특별할 것이 없다. 얼마 가지고 있지도 않은 옷은 모두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시원하고, 편하고 서로 어떻게 매치해도 어울릴만한 컬러. 갑자기 좀, 울적해진다.
내 외모에 자신감 가질만한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어려 보인다는 거였다. 아직도 종종 나이보단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도 이제 꽤 좀 들어 보인다는 것을. 진지하게 화장법을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예뻐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생기 있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다. 비밀로 하고 싶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내게 중요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무시하지 못할 거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다. 활기차고, 위트 있고, 심신이 안정된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그런 이미지는 사실 모두 내면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눈치채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만약 내 외모 - 깨끗한 피부와 표정,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것 - 가 도와준다면, 그 시간은 좀 단축될 수 있지 않을까? 만남과 헤어짐의 주기가 짧은 해외살이에서, 이 시간 단축은 굉장한 이득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정말 조금씩 그렇게 되어간다. 처음에는 내가 나에게 속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다. 나는 10년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내가 바라던 쪽으로,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변해왔다. 이제는 나의 외모도 그 이미지와 잘 어울리도록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래야겠다고 마음 먼저 먹는다.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숄더백에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챙겨 넣었다. 갑자기 큰 아이 방과 후 활동이 있는 날이라는 게 기억나서 초스피드로 간단한 간식 도시락을 쌌다. 아이들 스쿨버스 시간이 임박했다. 다행히 스쿨버스와 동시에 픽업포인트에 도착했다.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 우리가 늦어도 몇 분 간 기다려주기는 하지만, 나는 늦는 게 정말 싫다. 기사님과 승하차 도우미, 다른 학생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들을 시간 내에 준비시키지 못하는 엄마로 보이는 게 싫다. 또, 또, 남 시선 의식이다. 버스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화답하고, 버스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아무 특징 없는 옷을 입은 한 여자가 나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