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리드, 『흐르는 강물처럼』
최근 약 10년 만의 재취업을 했다. 설렘도 잠시, 출근을 하고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차가운 현실이 살결로 느껴진다. 일이야 자꾸 하다 보면 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지만, 그동안 다 잊어버리고 만 업무에 대한 감각이나 업무적으로 맺게 되는 관계에서의 대화 방식 같은 것들이 어렵다. 물론 이런 센스도 일을 하다 보면 늘겠지만, 그런 센스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어쩐지 있어서는 안 될 공간에 나와있는 기분이 든다. 민폐만 끼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얼마 전에는 왜 자꾸 같은 것을 반복해서 물어보냐는 핀잔을 들었는데, 나는 정말이지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아서 좀 억울했다. 한데 오래지 않아 그 억울함은 나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었다. 엇, 설마 나 여러 번 들은 이야기를 정말 새하얗게 다 잊은 거 아냐?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간 무언갈 새하얗게 잊으며 살아왔다.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휴대폰을 찾고, 지인에게 했던 이야기를 처음인 것처럼 또 하고, 아이들의 픽업 시간을 놓치고, 남편이 부탁했던 일을 잊으면서. 무언갈 까먹을까 봐 메모를 하면 정작 필요할 때 내가 메모를 했는지 안 했는지 뿐 아니라 혹여 했다고 확신하더라도 대체 그 메모를 어디다 했는지를 잊었다. 하지만 이 모든 덜떨어짐은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이런 건망증이 너무나 흔했고 흔한 만큼 너그럽게 넘어갈 만한 것이었다. 출산을 하면서 뇌를 낳았다는 농담을 하면서. "야 너도? 깔깔깔." 또래 친구들과 서로의 치매끼를 위로하면서.
하지만 회사는 내 덜떨어짐을 웃어넘기는 곳이 아니다. 내 어리바리가 낳는 트러블과 책임은 그대로 나를 넘어 내 동료와 사수에게까지 전가되고 심하면 회사 이익에까지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덜떨어짐은 하나도 귀엽지 않고 하나도 안쓰럽지 않고 하나도 공감받을 수 없다. 사수는 내게 말했다. 두세 번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기억할 의지가 없는 거 아니냐고. 어쩌면 정말 그럴 의지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으른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럴 의지를 갖는 법을 잊어버려서. 그게 아니라면 정말 바보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부족한 점을 메꾸려고 출근 전후로, 심지어 주말에도 일에 매달려 본다. 실제로 업무를 한다기보다는 업무를 잘 해내려고 예습 복습을 한다. 어떤 면으로든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무엇보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들 하지만, 타고나길 잘하게 타고난 게 아니라면 열심히라도 해야 한다. 열심히 해봐도 안되면 뭐, 어쩔 수 없고. 그때는 사수 속 터지기 전에 조용히 사라져야 할지도....
셸리 리드(Shelley Read)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원제: Go As A River)의 주인공은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고 이렇게 말한다.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이 말은 일견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하나마나한 말 아닌가, 싶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면 내가 이 당연한 사실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를 깨닫는다.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살기도 하고, 다음만 바라보며 살 때도 있다. 요즘의 나는 지금을 건너뛰어 그다음으로 훌쩍 넘어가는 공상을 한다.
'눈을 꼭 감았다 뜨면, 여름휴가지에 가있으면 좋겠다.'
'빨리 시간이 흘러 일센스를 다시 획득하고 싶어!'
그렇지만 여름휴가를 떠나려면 수개월을 일해 돈을 모아야 하고, 일센스가 늘려면 수십 개월을 일해 내공을 쌓아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지금 겪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다 겪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을 잘 보내야만 나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도망가봐야 결국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있고, 외면하면 지금에 갇혀버린다. 그다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