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타 K. 토마슨, 『악마와 함께 춤을』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너 자신에게 집중해.”
“다른 사람과 너를 비교하지 마.”
살면서 이런 말을 여러번 들어왔다. 비교는 하자면 끝이 없고, 평가는 주로 나를 주눅 들게 하므로, 나는 자꾸 타인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고, 나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타인의 반응을 자꾸 신경쓰게 된다. 그러다 보면 타인은 (자신 혹은 세상을 향한)'분노, 시기와 질투, 앙심과 쌤통, 경멸'이라는 나쁜 감정의 트리거가 된다.
『악마와 함께 춤을』에서 저자 크리스타 K. 토마슨은 “사회생활에 얽매여 있다는 건 사실은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취약하다는 걸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홀가분한 말이다. 그동안 줏대없다고 여겼던 내 취약한 모습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변호해주니 말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대학생 때 어떤 책에서 읽은 '남들보다 더 나아지려 하기보다, 과거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라'는 요지의 조언에 깊이 감명받은 적이 있다. 실제로 이 조언은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내게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크리스타는 ”비교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하는 것“이라는 맥락의 조언을 보기 좋게 까버린다. 듣기에는 고상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비판을 피하기 위한 핑계 아니냐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서 한번 남과 나를 한 번 비교 해볼까 한다. 지금껏 뒤에 숨어 몰래하던 비교를 대놓고 구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지인 A는 원래도 날씬하고 예쁘지만 본인을 소녀같이 잘 꾸민다. 옷이나 액세서리, 헤어스타일, 얼굴의 생김새까지 모두 여자여자 하다고나 할까. 그 모습이 과하지 않고 정말 잘 어울린다. 반면에 나는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다. 나름 한다고는 하는데 꾸미는데 영 소질도 없고 바지런함도 없다. 유니클로 스타일의 심플하고 코디하기 쉬운 옷이 그나마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액세서리는 결혼반지와 목걸이 하나밖에 없으며, 머리는 부스스하고, 각진 턱은 도드라진다.
윽,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살짝 나빠지지만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내게도 나름의 스타일이 있기는 한 것 같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이런게 정신 승리 일까?). 어쨌든, 나도 나름의 스타일을 찾은 셈이다. A는 A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스타일대로 행복하게 존재하며 잘 어울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또 다른 지인 B는 명문대를 나와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오고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나는 겨우 인서울에는 성공했지만 애매한 수준의 대학을 나와서, 출신 대학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출신 대학 이름이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신경 쓰게 할 줄 알았더라면, 고3 때 더 열심히 공부할걸, 편입을 중간에 포기하지 말 걸, 하고 후회한다. 그랬다고 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갔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B는 이런 면에서 얼마나 당당할까를 생각하면 부러워진다. 언제든 출신 대학을 말할 상황이 생기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쩌면 약간의 자부심과 함께) 자신 있게 대학이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야 독서량이 급격히 늘었다. 원래 문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 이름에 대한 열등감이 독서에 더 불을 붙인 것도 사실이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지적으로 보이고, 그런 이미지라면 내 대학 이름을 덮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타고 다니던 지하철 노선에서 책을 읽고 있는 대학생이라면, S대 학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때의 독서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지금의 취미로 남았다. 열등감이 내게 준 선물이랄까.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내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며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은 분명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과 삶에만 집중하며 사는 것도 그리 건강하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타인과 엮여 살며, 도움을 주고받고, 상처를 주고받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어떤 가능성은 나와 타인을 비교할 때라야 보인다. 내 삶을 타인의 삶과 비교할 때라야 찾아오는 현타도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우리에겐 타인이 필요하다. 내 취약함을 드러내고 덮어줄 타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