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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Nov 17. 2021

coming back to you

주민센터에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스피드 랙 선반을 분리 중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살림살이를 처분하느라 바쁜 요즘. 나는 열심히 당근에 올리고 남편은 부지런히 제품을 정리해 둔다. 남편을 도와 기둥 하나를 붙들고 있는데, 그만 쇠기둥 하나가 내 정강이를 때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얏!"

"미안."

어쩐지 그의 말투나 태도에서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 걸까. 그래도 이건 좀 불쾌한데. 싸한 기운을 눈치챈 건지, 아니면 자기 태도에 스스로 멋쩍었던 건지, 그는 한 문장을 덧붙였다. 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말을.

"그게 아팠어?"

왜 엄살이냐, 라는 소리로 들리는 건 왜일까. 내 촉이 좋은 걸까 아니면 그냥 속이 비틀린 걸까? 나도 결국 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말을 뱉고 말았다.

"아프냐고? 너도 한번 쇳덩이에 부딪혀 볼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실수였고,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저기, 지금 이게 미안한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해?"

그렇다. 우리는 이토록 사소한 문제로 싸웠다. 한순간 기분이 잡쳤다. 나는 당장 혼자 있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차키와 책 한 권, 휴대폰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에 있는, 커피맛이 좋은 작은 카페에서 책이나 읽다 들어가야지. 하지만 막상 그 카페에 도착해보니 주차장이 만차였다. 이게 뭐람. 보통 늘 빈자리가 있는 곳인데, 왜 하필 오늘... 결국 차를 돌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가려는데, 어쩐지 내 기분이 영 프랜차이즈가 아니었다. 나는 동네 카페에 있고 싶어. 조용하고 포근한 곳에. 하지만 여기저기 둘러봐도 주차공간이 있으면서도 커피 맛이 좋아 보이는 동네 카페란 찾아내기 어려웠고, 더 멀리 나가기엔 당근 거래 약속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드라이브만 하다 다시 우리 집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집 안에 들어서자 근무 중이었던 그가 방에서 나왔다. 아까보다 표정이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그래, 이게 당신의 원래 모습이야. 다정한 그 얼굴. 내게 조용히 다가온 그는 나를 가만히 안았고 나는 어정쩡하게 안겼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잠시. 그래,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누구의 잘잘못도 아닌걸. 우린 서로 예민해져 있었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툰 것뿐이야. 마침내 두 팔로 그의 허리를 안아줄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의 안심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여러 마디 말보다 침묵이 진심을 더 잘 전달해주는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해외 이주를 앞두고 꽤나 예민해져 있는 우리. 챙겨야 할 일도, 계획해야 할 일도 많다. 놓치면 틀어지고 틀어지면 연기되는 크고 작은 과제 더미 속에서 평소의 안정감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서로를 돕고 의지 할 밖에. 우리 외엔 아무도 이 일들을 책임질 사람은 없으니까.

세상 속에 벌거숭이로 내 던져진 기분이 들때마다,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려 한다. 내 곁에 한 명의 벌거숭이가 더 있음을, 우리는 한 팀임을 말이다. 우리 팀은 지금 팀원들의 힘과 마음을 모아야 할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드림팀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어찌어찌 살아남는 팀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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