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리나 Aug 03. 2023

기부와 기브(give)

"기부?? 기부금 내 봤자 진짜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가지도 않고 중간에 다 빼먹는 거잖아요? 그래서 안해요"


사회공헌 일을 하면서 기부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말한다. 기부할 여유가 없다면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되는데, 꼭 저렇게 핑계 아닌 핑계를 대는 것이다.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은 기부금을 어떻게 썼는지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고 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어서, 해당 단체의 홈페이지 등에 가면 기부금을 얼마 받았고 얼마를 썼고 얼마가 남았는지 등등에 대한 결과 보고서가 다 게재되어 있다. 과연 저렇게 말하는 이들은 이런 보고서들을 한 번이라도 찾아본 적이 있을까. 


그리고 본인이 원한다면 정말 본인이 도와주고 싶은 사람에게 지정해서 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통 기부를 할 때는 지정/비지정 기부금을 후원자가 정할 수 있다. 지정 기부금은 특정 대상을 정해 결연을 하거나 특정 목적을 위해 써 달라고 지정하는 것이고, 어디든 상관없으니 좋은 일에 써 주세요 하면서 기부하는 것이 비지정 기부금이다. 즉, 지정 기부를 한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게 바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도와주고 싶은 이들에게 직접 기부를 하는 게 맞을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금은 꽤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 중에서는 또 다른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정서적 지지가 필요할 수도 있고, 그저 외로움을 달랠 말벗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필요한 도움은 다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실행하는 것이 많은 NGO 직원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려면 직접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비용 외에도 담당자들의 인건비나 출장비 등등의 운영비도 필요하다. 실제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에서는 사업비의 15% 내에서 운영비를 쓸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모두가 지정 기부만 하겠다고 한다면 정작 이런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반드시 대상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란 뜻이다.


나는 기업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하면서 많은 NGO들과 함께 일을 했었고, 함께 사업을 했던 NGO인 월드비전과 어린이재단에 각각 정기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나 혼자만의 작은 규칙인 셈인데, 함께 일하는 NGO에 후원을 하게 되면 해당 NGO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 그 직원이 후원이나 모금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 좀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도 있고, 그들의 NGO를 존중하고 있다는 마음을 조금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나도 내가 후원하는 단체와 함께 일하는 것이니 우리 프로그램도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기도 하고.  

그리고 지정/비지정 중에서도 사용처를 지정하지 않는 비지정 기부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만났던 여러 NGO 직원들은 모두 전문성을 바탕으로 진심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누군가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이나마 손을 보태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의 방식이 비지정 후원이었다.


결국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 제대로 쓰일지 몰라서 기부를 안한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차라리 여유가 없다거나 굳이 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기부, 그 자체의 의미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킬힐 신으면 안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