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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리나 May 07. 2023

'고아'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군 면제는 굉장히 관심도 많고 민감한 주제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한창인 나이에 강제로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대체 면제받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게 당연하다. 특히나 정치판이나 연예계 등에서 부정하게 면제를 받은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공식적인 군 면제 사유는 꽤 다양하고, 그중에서도 '고아'사유라는 것이 있다. 아동양육시설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 군 면제 대상이 된다. 


그래서 보육원 출신인 A 씨는 해당 사유로 군 면제를 받았다. 당시에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좋다고만 생각했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입대를 했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본인이 원할 경우 고아여도 현역 입대를 선택할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군대를 다녀온 대부분의 다른 남성들끼리의 문화에서 약간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한창 취업활동을 하는 지금 상황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남성의 경우 취업 시 군 이력은 필수 제출 정보 중 하나이다. 특히 군 면제를 받았다면 면접장에서 면제 사유에 대한 질문이 거의 100%의 확률로 나온다. 그러면 생전 처음 보는, 게다가 내가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의 면접관에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고아라는 것을 오픈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덤이다. 이것이 취업 자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다. 합격한 적도, 탈락한 적도 있으니까. 물론 고아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고 숨겨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 다른 면제 사유들도 비슷하겠지만, '고아'는 특히나 본인의 잘못은 0%에 가깝고 순전히 부모나 어른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억울함이 더 클 것이다. 이러한 일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픈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안타까운 점은 '고아'라는 단어가 아직도 쓰인다는 점이다. 고아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사용을 지양하면서 과거 고아원이라고 불렸던 시설들의 명칭은 보육원이나 아동양육시설 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군 면제 사유에는 '고아'라는 용어가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뜻인데 상관없지 않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용어가 가진 힘은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사용하며 그 횟수가 누적될수록 더욱 커지고, 이는 사회적 인식 전환에 큰 힘이 될 수도,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아원이라는 용어를 바꾸기 시작했던 것일 테고, 보호종료아동을 자립준비청년으로 바꾼 것일 테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보육윈이나 아동양육시설이라는 명칭도 너무나 어른의 입장에서만 바라본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곳이 나의 집이고 가정인데, 보육/아동양육 모두 어른이 아이를 돌본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룹홈'이 함께 사는 집이나 가정이라는 의미이니 그나마 가장 생활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자립준비청년들은 시설을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취업현장에서부터 '저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밝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자립준비청년들은 '고아'라는 이유로 늘 스스로가 '고아'임을 셀프 증명해야 하고, 그렇게 꼬리표를 스스로 붙여야 하는 현실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한 지원 제도나 정책은 그들이 스스로 얼마나 불행한지 증명하도록 하면서 또 한 번의 상처를 주어서는 안되며, 건강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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