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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리나 May 16. 2023

눈치 빠른 아이들

[보육원 라이프]

아이들이 성장할 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이다. 그렇다면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존재는 누구일까. 역시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들이다. 


보육원에는 여러 어른들이 함께 지낸다. 아이들의 생활공간에서 함께하며 돌봐주는 생활지도원부터, 총무나 시설을 담당하는 선생님, 자립 준비를 담당하는 자립전담요원, 아이들의 영양과 위생을 책임지는 영양사와 위생사, 여러 행정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무국장 등 많은 직원들이 있고, 마지막으로 보육원 전체를 총괄하는 원장이 있다. 보육원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구성된다. 이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부모이자 가족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가장 큰 역할은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용돈을 주고 학원을 보내고 공부를 시키는 등 그때 그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수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지원 사업을 찾아보고 아이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단체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중에서 말을 잘 듣는다거나 해서 선생님에게 잘 보인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이 모두 충분한 지원 속에서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애써서 후원 연결을 해 주었는데 아이가 제대로 참여하지 않아 기회가 사라졌다거나 하면 선생님도 속이 상할 테고, 다음번엔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아이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질 것이다. 결국 선생님도 사람이고, 마음에 드는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보육원은 어쨌든 직장이다. 생활과 업무가 겹치는 모호한 영역이긴 하지만, 결국 보육원도 원장, 국장 등 직급 체계가 있는 직장이다 보니 모든 결정에는 상사의 허가나 결재가 필요하다. 이 말은 어떤 선생님이 A라는 아이에게 이러이러한 지원을 하고 싶다고 결재를 올려도 결재권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선에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좋은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 되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일부에서나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나는 차별을 겪은 아이들도 만난 적이 있다. 

또 말 잘 듣고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후원을 연결해 주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할 수도 있다. 소위 선생님에게 '찍힌' 아이들은 사춘기의 흔한 반항심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기타 다른 심리정서적인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 이런 경우는 사회복지 영역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정신건강이나 심리상담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과 지원이 필요한데, 한정된 자원으로 다수의 아이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보육원 상황에 이들을 세밀히 배려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대부분 선생님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잘 보여야만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어렸을 때부터 이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러한 권력관계를 알면 알 수록 아이들의 눈치는 빨라진다. 공부를 하기 위해, 용돈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하면 선생님 눈 밖에 나지 않을지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저 학교 담임선생님께 혼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보육원 선생님의 눈에 들지 못한 아이들은 훨씬 더 큰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직접 후원/지원사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제도들이 개선되고 있다. 기존에는 선생님의 대리신청만 가능했던 지원사업들이 본인 직접신청으로 바뀌는 등 아이들이 직접 할 수 있는 루트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아이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주체가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청, 주민센터, 자립전담기관 등 여러 기관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게 되니 피로도가 높아지고 효율도 떨어질 수 있다. 


보육원이라는 특성에 의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 도움을 주는 입장이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직접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선택지를 많이 열어주는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 속에서 중복을 취소화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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