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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리나 Jun 02. 2023

스무 살, 15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스무 살. 한창 에너지 넘치고 즐기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이. 

스무 살의 당신에게 1500만 원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이 스무 살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1500만 원이 바로 자립정착금이다. 자립정착금은 아동복지시설이나 가정위탁보호를 종료하는 만 18세 이상의 자립준비청년에게 지급되는 돈이다. 당장 보육원을 퇴소한 아이들이 거주할 집과 일터부터 구해야 하는 막막한 시점에 조금이나마 기초자금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이다.  처음엔 300-500만 원 수준이었던 자립정착금은 점차 확대되어왔고, 지금은 서울시 기준으로 1500만 원까지 늘었다. 여기에 이런저런 다른 지원금들까지 더하면 자립준비청년들은 인당 1500~2000만 원 정도를 들고 퇴소하게 된다. (서울시 기준이며, 지자체나 시설 별로 다를 수는 있다)


사회 지지 기반이 부족한 자립준비청년 입장에서 이 정도의 목돈이 주어진다는 것은 꽤나 괜찮은 혜택이다. 일반 가정 청년들 중에서도 스무 살에 이 정도 금액을 가지고 있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정말 이 금액이 취지에 맞게 제대로 잘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설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이 청년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 달에 몇 만 원씩 용돈을 받아서 썼을 것이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해서 추가 용돈을 더 벌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목돈을 경험해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내 통장에 1500만 원이 넘는 돈이 꽂히는 것이다. 


지원금은 이뿐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자립수당이 매월 40만 원씩 퇴소 후 5년 동안 나온다. 그리고 혹시 대학에 진학한다면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고, 이 외에 생계 급여라고 해서 졸업 시까지 매월 평균 50-60만 원 정도가 추가로 지급된다. 핸드폰 요금도 할인되며, 월세도 주거 급여가 있어서 꽤 많은 금액을 감면받는다. 


그런데 이 모든 금액 지원은 5년 뒤에 끊긴다. 갑자기 모든 혜택이 제로가 되는 것이다. 5년 안에 이 돈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계획을 세우고 자립을 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막 보육원이라는 단체 시설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이 아이들은 이제 스무 살이고,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은 나이다. 안 그래도 한창 흔들리는 나이인데 지지 기반도 부족하니 유혹에 더 휩쓸리기 쉽다. 그러다 보니 생각 없이 야금야금 다 써버리고 5년 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심지어는 이 아이들에게 목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몇 나쁜 어른들에게 사기를 당해 홀랑 날려먹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정부도 이런 점을 알고 있기에 자립정착금은 금융교육을 이수해야만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육이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금융교육의 내용을 떠나서, 아직 제대로 금융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금융교육을 열심히 해 봤자 과연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물론 금융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20-24살이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꽤 큰돈이 한 번에 주어지는 것이 과연 괜찮은 제도일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 돈이 제대로 쓰이기에 이들은 너무 어리고, 기간은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정책 방향이 자립정착금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너무 부족했던 금액을 확대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정말 그 돈이 제대로 잘 쓰이도록 관리하는 부분에 대해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돈을 주는 것에 집중된 지원 프로그램들도 좀 더 다각화되면 어떨까 싶다. 물론 돈이 없으면 아무 시작도 할 수 없지만, 사실 궁극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건 사회적인 지지 기반이다. 지원금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자립준비청년들이 정말 제대로 된 사회구성원으로서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어른들이 지지 기반이 되어 줄 수 있는, 장기적/포괄적 관점에서의 프로그램 기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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