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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리나 Jun 07. 2023

이소(離巢), 집 찾아 떠나기

10년쯤 된 것 같은데, 회사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 있다. 1년간 진행한 멘토링 프로그램의 우수 참여자들에게 주어지는 포상 개념으로, 멘토인 회사 직원들과 멘티인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함께 데리고 동남아의 오지 학교를 찾아가 환경 개선도 하고 문화 행사도 하는 활동이었다. 인프라가 부족한 오지를 가야 하다 보니 대형 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어 마을버스 같은 작은 버스를 구하고,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할 게 너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필리핀에 함께 가는 것으로 선정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흑...쌤, 저 어떡해요 ㅠㅠㅠ"

"응? ㅇㅇ야, 왜, 무슨 일이야?"

"흑흑..저 해외봉사 못 갈 거 같아요 ㅠ"


자기는 비행기 처음 타본다며, 현지 친구들에게 인사하겠다고 현지어 인사말을 열심히 찾아보며 연습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못 간다니?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함께 부모님 없이 할머니 댁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미성년자이다 보니 보호자 동의 없이 여권 발급이 어려웠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아니었는데 연락이 어려웠고, 이런 경우 법적으로 할머니가 보호자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결국 여권 발급은 포기해야 했다.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회사에 이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이 친구만 별도로 멘토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보내주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잘 도착했다고 보내온 사진 속 활짝 웃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이건 내가 함께 겪은 하나의 작은 사례일 뿐, 이 친구는 생활하면서 이런 비슷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겪어왔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벌써 10년이 지났고, 지금 그 친구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 취업을 하고 할머니 댁을 나와 자립에 성공했다. 


이런 친구들이 가정위탁 보호아동이다. 부모의 사망, 실종, 질병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없는 아이들을 다른 가정에서 대리양육하는 건데, 대부분 이모/고모/할머니 등 친인척이 돌보는 경우가 많다. 단체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더 세밀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자립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는 가정위탁 보호아동들이 좀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먼저, 가정위탁은 보호종료의 명확한 단계가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립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덜하다. 가정위탁도 보호종료 절차가 있고 보고서도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지만, 어느 날부터는 내가 살던 시설을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것만큼의 드라마틱한 압박감은 적다. 보육원에서 지내는 친구들은 퇴소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나가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느끼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가정위탁 보호아동들은 참고할 동료집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위탁부모의 성향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준비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더라도 정보가 부족하다. 시설에는 자립전담요원이 있어서 여러 자립 정보들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아이들에게 연결을 해 준다. 시설 아이들은 본인이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를 하지 않더라도 주위에 참여하는 다른 선후배, 동료들을 보면서 관련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가정위탁 보호아동들의 경우 위탁부모가 자립전담요원만큼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전달하기는 쉽지 않고, 전달한다 해도 어떻게 해야 잘 준비할 수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가정위탁 보호아동들의 관리를 하긴 하지만, 담당자 1명이 100여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시설의 자립전담요원만큼 깊이 있는 관계 형성은 쉽지 않다. 

또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자립지원정책은 아동양육시설 퇴소 아동들을 초점으로 하고 있다. 단체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비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많다 보니 가정위탁 보호아동에게는 딱 맞지 않더라도 지원을 받으려면 따라야 하는 실정이다.

 

자립준비청년은 100명이면 100명의 상황과 사연이 있다. 물론 그들의 모든 상황을 다 맞춰줄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자립준비청년들의 현실을 살펴보고 점차 다양화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정책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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