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필터가 들어간 샤워기를 새로 샀다. 샤워필터로 내 몸에 닿는 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까지 신경이 쓰인다. 샤워할 때마다 필터에 까만 먼지가 끼었나 안 끼었나 확인해 본다. 아파트 수도가 이상한지 검정색 알갱이 같은 게 샤워필터에 끼어 있는데, 샤워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것이다.
샤워필터로 내 몸에 끼얹는 물의 정체를 안 이상, 샤워필터가 없던 세상으로는 못 돌아갈 듯하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거늘, 이제 나에게 샤워필터 없는 샤워기는 해골물과 같다. 해골물을 달게 마셨던 원효대사도,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샤워필터를 사용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