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시공간을 분리하다
여보, 7시 30분이야.
평일 아침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다.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다 잠시 눈을 붙였던,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가 이 시간만 되면 나를 깨운다. 더이상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 직장 다닐 때야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이유가 나에게 있었지만, 이제는 타인에게 있다. 잠을 깨는 것이 예전에는 주체적이었지만 퇴사후 수동적으로 변했다. 대신 아내가 주체적으로 나를 깨운다.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애타는 사람은 아내이므로.(당시 아내는 출퇴근용 자가용이 없었다. 시골에서 대중버스를 이용하기도 힘들다.)
주양육자가 아내에서 나로 바뀌었다. 지난 8년 동안 아내 덕분에 아이들이 제 앞가림할 정도로 컸으니, 아내는 다시 직장에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되는 나는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 그런 결정을 할 때만해도 육아가 내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대충 씻고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아내 직장까지 왕복 40분. 아내는 겨울이 되어서야 새로운 직장을 얻었는데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아내를 직장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집에 올 때까지, 날 밝은지 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간단히 방청소를 하다. 벌써 오전 10시다. 겨울방학 동안 시골에서 동네 친구 없이 심심해할 첫째와 함께 방학프로그램으로 2시간 동안 장구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주부 생활을 하면 이렇게도 시간이 잘 간단 말인가. 직장에서 시간은 그렇게도 더디 흐르더니만.
점심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내가 당부한 빨래를 그제야 겨우 널고, 잠깐 시내라도 다녀올 일(세탁소를 들르든가, 아이들 문구를 사던가)이라도 생기면 어느새 어린이집에서 둘째를 데리고 와야 할 시간이다. 퇴근하는 아내를 모시러 갈 때까지 1시간 남짓.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정말 먹는 게 일이다. 돌아서면 밥 차릴 시간이라는 어머니와, 아내의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며칠 저녁 준비까지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또는 아내가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적응한다 싶어) 이제는 귀찮아서 안 한다. 퇴근하는 아내에게 저녁 준비를 맡긴다. 퇴근하자마자 주방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쩌겠는가. 이러다가 내 일은 하나도 못하게 생겼는걸. 예전에 직장 다녔을 때 아주 가끔씩 일찍 퇴근해 내가 직접 요리해서 저녁을 차리면 아내가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것도 이제는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다.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은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 같다. 이 녀석이 큰 입으로 내 일상을 한 번 베어 먹어버리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남아나질 않는다. 중간중간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기더라도 일을 시작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자료를 찾거나, 글을 쓰더라도 리듬이 툭툭 끊긴다. 글이라는 것도 쓰고 싶을 때 써야 하는데, 아이들의 리듬에 맞출 수밖에 없다. 저녁 시간 책이라도 읽으려고 책상에 앉으면 둘째가 목 위로 올라타 놀아달라고 조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육아에 파묻힐 것 같다. 왠지 내 삶이 수동적으로 바뀐 것 같아 불안하다. 이런,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수동적이지 않았던가.
밥할 일이 있으면 밥하고,
빨래할 일이 있으면 빨래하고,
강의할 일이 있으면 강의하고,
농사지어야 한다면 농사짓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모습이다.
오늘 짬짬이 읽었던 법륜스님의 <행복>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스님은 이렇게 사는 것이 ‘최상의 자유’라고 했다. 해야 하는 모든 일이 내 일인 것처럼 받아들일 때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 정도의 깜냥이 되지 않는다. ‘이번 주는 글을 하나 써야 하는데. 강의안을 빨리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는데.’ 일은 하지 않고 조바심만 일으킨다. 괜히 죄도 없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린다. 하고 싶은 일이 최우선이라 육아와 집안일은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긴다. 법륜스님의 말처럼 지금 당장 할 수 없다면 투덜거리지 말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내 일로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고 최선의 선택인데도 말이다.
새벽에 뒤척이며 우는 둘째를 달래다가 잠이 오지 않아 책상 앞에 앉는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을까. 습작 노트를 끄적이다 답을 찾은 것이 공간과 시간의 분리다. 날이 따뜻할 때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글을 쓰고 책을 읽곤 했다. 다락방 문을 닫으면 아이들이 침범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다락방은 냉장고로 변한다. 비닐을 치고 온열매트를 깔아도 등이 시린 것은 피할 수 없다. 글작업실로 꾸민 다락방에 먼지만 쌓인 지 100일은 지난 것 같다.
봄이 오기 전에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새벽에 일어나 아이 방에 앉아 글을 쓴다. 아쉽게도 시골집에는 다락방 외에 나만의 공간은 없다. 아이들이 깨어난 후에는 법륜스님의 말처럼 밥을 차릴 일이 있으면 밥을 하고, 청소할 일이 있으면 청소를 한다. 아내가 퇴근한 후 저녁 시간에는 커피숍이나 도서관으로 나와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책을 읽고, 또 글을 쓴다. 하고 싶은 일, 주어진 일을 있는 그대로 하려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은 뒤죽박죽 되고 만다.
지금 이렇게 커피숍에서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피곤한 퇴근길에 ‘저녁에는 나가겠다.’고 내뱉은 나의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준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일의 육아는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