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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Sep 06. 2022

여유, 마음의 공간

사십춘기에 얻은 것들(6)

"생각의 흐름에 틈을 만들어 내적 공간을 발견하라. 그 틈이 없으면 당신의 생각은 어떤 창조적인 불꽃도 없이, 반복적이고 활기 없는 것이 된다."

-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중 


무언가에 쫓겨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톨레의 책을 펼친다. 사십춘기에 방황하던 나날을 버티게 해 준 책이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내면을 살피다 보면 정신없이 사방으로 날뛰던 마음이 고요해진다. 어두웠던 긴 터널을 벗어난 이후에도 일상에서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예상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어서 조급해질 때에도 작은 지혜를 선물해준다. 


톨레의 설명을 빌리자면, 시간과 돈에 쫓기는 마음은 대상과의 동일화에서 비롯된다. 동일화란 어떤 대상과 나의 의식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딱 달라붙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욕심과 불안과 같은 감정이 접착제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집착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 집착이 대상과 나의 의식을 하나로 꽁꽁 묶여버린다. 일단 동일화되고 나면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나의 의식은 집착하는 대상에 점령당해 버린다. 강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떨쳐버리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더욱 심해지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집착하는 행동을 멈추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대상과의 동일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톨레가 말하는 ‘내적 공간’을 발견해야 한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나는 ‘내적 공간’을 ‘마음의 공간’으로 이해한다. 마음의 공간이 좁아지면 조급해지거나 기운이 빠져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살핀다. ‘지금 내 마음속에 공간이 얼마나 남아 있나? 좁아지고 있나? 아니면 넓어지고 있나?’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미루거나 시작하지 못할 때,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어찌할지 모를 때, 내면을 살펴보면 마음속 공간이 좁아져 거의 사라져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여유와 조급한 상태를 오간다. 대체로 아침은 여유롭다. 창문을 열어 밤새 갇혀 있던 작업실의 공기를 환기시키고, 방석을 깔고 앉아 가볍게 명상을 한다.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는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날이면 일은 순조롭게 처리되고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남는 시간 동안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읽거나, 쓰고 싶은 글을 쓰거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이렇게 여유롭게 행동하다 보면 행복한 감정이 충만해진다. 


점심을 먹고 작업실로 돌아오면 가끔 아침의 여유로운 마음이 사라져 버릴 때가 있다. 몸이 나른해져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줄어든다. 그런 내 몸 상태를 인정하고,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지 않는다. 동네 저수지를 걷거나 수영을 하러 가는데, 물에 몸을 담그거나 땀을 빼고 나면 의욕이 다시 올라온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운동을 하지 못하고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마음의 공간은 좁아지고 조급함이 올라온다. 무언가에 쫓겨 마음의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면 숨 막힐 듯 답답해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유로운 삶을 원한다. 남을 여(餘), 넉넉할 유(裕).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넉넉해서 남아 있는 상태, 그래서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다고 해서 항상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넉넉하다’라는 생각은 사라진다. 그 순간 돈에 쫓기게 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시간에 쫓기게 된다.  


진정한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은 마음의 공간이 넓은 사람이다. 제 아무리 넓은 집을 가지고 있더라도 마음의 공간이 좁거나 사라져 버린 사람은 삶을 느긋하고 차분하게 살아갈 수 없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얻기 위해 지금 현재의 넉넉함을 만끽하지 못한다. 결국 여유는 마음의 공간이 좌우한다. 마음먹기 나름이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의 흐름을 끊으려고 해도 혼자서는 잘 되지 않을 때도 많다. 아무리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톨레의 책을 여러 번 읽고, 프리라이팅을 해도 마음의 공간을 발견하지 못할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다. 여행을 다녀온 후 꽉 막혀 풀리지 않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르곤 하는데, 일상을 떠난 새로운 경험이 강박적인 생각에 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쫓길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적인 무엇인가가 틈을 타고 피어오른 것이다.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방법이다. 지역에서 함께 모임을 하는 글동무들이 나에게 그런 사람들이다. 30대 동네 후배들인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글을 쓰고 나눈다. 글쓰기가 진전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제자리를 돌고 있을 때, 이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있는 것만으로 글의 실마리를 찾을 때가 많다. 


혼자서는 닫혀버린 마음을 열 수 없을 때, 이 친구들과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의 공간이 넓어진다. ‘창조적인 불꽃’ 같은 획기적인 결과물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꽉 막힌 상태에서 벗어나 한 발짝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힘이라도 얻게 된다. 이 친구들만 만나면 뭔가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어서 “내가 한 번 쏠게”라는 말을 자주 뱉는데, 그것도 그들이 열어준 마음의 공간, 여유 덕분이다. 


* 메인 이미지 출처 : Photo by Ian Stauff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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