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로컬' 이미지 검색 결과 캡처 #로컬크리에이터 #로컬콘텐츠 #로컬브랜딩 #로컬비즈니스 #로컬푸드 #로컬여행...
구글에서 '로컬'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다양한 키워드가 노출된다. 최근들어 '로컬'이라는 접두어를 붙인 각종 신조어가 생성되고 있다. 그중 하나의 단어를 선택해 다시 검색해 보면, 지역 곳곳에서 로컬을 앞세운 정책과 사업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로컬크리에이터 아이디어 챌린지, 로컬콘텐츠 페스타, 로컬브랜딩 마스터플랜... 로컬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로컬은 '힙해지고 핫해졌다'.
한편에서는 지방이 소멸한다며 아우성이지만, 로컬은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착각이다. 로컬이 어떤 방식으로 '힙'해지고, 누구에게 '핫'해지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이런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로컬은 소비자가 보기에 '힙'해졌고 외부 관광객에게만 '핫'해졌다. 결국 비즈니스와 브랜딩 효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서울, 대도시, 수도권보다 후진적인 '지방'으로 불리기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로컬'로 호명되는 것은 분명 더 나은 일이다. 하지만 일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름 불리고 이에 응답하면서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내재화한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로컬'로 부르는 사회적 현상 뒤에는 거대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로컬이라는 단어와 접붙인 단어만 봐도 그렇다. 크리에이터, 콘텐츠, 브랜딩, 비즈니스 등등. 비즈니스과 문화산업의 담론들이 로컬을 장악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로컬'을 호명하고 지역은 여기에 호응한다. 더 이상 시장을 확장할 수 없는 자본이 '로컬'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서 소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로컬이 '핫'해지는 동안, 과연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은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얼마 전 어느 지역의 도시재생지원센터로부터 시민기자단을 로컬크리에이터로 양성하는 강의를 의뢰받았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시민기자단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장소, 사람, 활동을 스스로 기록해 왔다. 이 분들이 로컬크리에이터 또는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역량을 높여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동안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기자단, 시민기자단을 양성하는 강의를 주로 해왔지만 로컬크리에이터에 대한 강의는 전문 분야가 아니라 망설이자,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이 지역에서 창업도 하시고 강의도 하고 계시잖아요. 그 경험을 전해주시기만 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하지만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말이 거슬렸다. '지역을 뜻하는 로컬(local)과 콘텐츠 제작하는 사람을 뜻하는 크리에이터(Creator) 합성어'로서 로컬크리에이터는 단순하게 지역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 의미화되지 않는다. 네이버 국어오픈사전에는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나 자원 등에 혁신적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지역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 특성을 소재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사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업가'라고 규정한다. '로컬크리에이터 = 창업가'라는 등식을 세워버린 것이다.
요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지만, 사실 창업으로 성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성장, 불황시대에 창업은 무모한 도전이다.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을 창업으로 내모는 것 역시 무책임한 일이다. 대부분 중년인 시민기자단이 글쓰기, 사진, 영상제작 등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배워서 지역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대단한데, 창업까지 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역 주민들이 요즘 흔히 말하는 로컬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시민기자단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차원에서 기획 의도는 좋으나, 강의의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담당자에게 말했다. 그 역시 지역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분들도 저마다 생업이 따로 있으신 분들이라, 새롭게 창업을 하는 것은 저도 힘들다고 생각해요. 강의를 마치고 새로운 로컬콘텐츠 제작이나 강의 수행계획서 정도만 나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로컬크리에이터? 로컬강사!
일단 기대 수준을 낮추니, 새로운 강의를 기획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제목을 '시민기자단의 새로운 도전과 변신'으로 정하고 부제로 '로컬크리에이터와 로컬강사'라고 덧붙였다. 먼저 로컬크리에이터를 주민들이 접근가능한 수준으로 새롭게 정의해야 했다.
시민기자단이 지역에 일어난 일, 현상, 장소를 단순히 기록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로컬크리에이터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지역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콘텐츠로 담아내는 역할로 차별화했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활동을 있는 그대로 담는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그 지역에서 살아오면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을 재해석한다면 차별화된 자신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활동을 통해 로컬의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다면 마땅히 로컬크리에이터라고 불릴 수 있겠다.
50대 이상 중년으로 구성된 소규모 강의였다. 1:1로 피드백하며 이 분들이 가진 가치를 탐색했다. 지역에서 글쓰기 모임, 책모임 등의 활동을 하기도 하고 지역아카이빙, 사진작가, 노래강사, 영상제작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분들이었다. 정부가 말하는 '창업가'는 아니지만, 이미 스스로 활동을 통해 로컬콘텐츠를 생성하고 있는 지역활동가들이었다.
5강으로 구성된 강의에서 '로컬크리에이터' 보다는 '로컬강사'에 집중했다. 로컬강사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강의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면 넓은 의미에서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역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로컬강사를 두 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활동하면서 쌓은 경험과 그 지역의 이해를 바탕으로, 로컬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2단계는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로컬 주민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사람'으로 로컬강사를 정의했다. 로컬강사로서 1단계 경험을 충분히 쌓고, 자신의 전문역량을 갖춘다면 2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강의 수행계획서를 작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강의자료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도시재생센터는 대학생을 모집해 지역의 기록하는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시민기자단 분들에게 대학생들의 사전교육을 맡겨 실제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마지막 강의에서 시민기자단 분들은 실제 강사처럼 강단에 서서 15분간 요약 강의를 진행하고 피드백했다. 노래강사이자 지역 가수로 활동하는 분은 지역문화 콘텐츠가 도시재생에서 왜 중요한 지를 자신의 경험으로 바탕으로 강의를 준비했고, 지역아카이빙 활동을 해온 분은 여러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한 경험을 담아 취재, 글쓰기 방법 등을 강의자료에 담았다. 지역 노인 활동을 꾸준히 영상으로 기록해 온 한 시민기자는 대학생이 지역 어르신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시민기자단의 발표를 지켜본 이 지역 도시재생센터장은 "저마다의 경험으로 색다른 강의가 인상적이었다"며 "시민기자단이 알려주는 도시재생 이야기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 교육에 참석한 시민기자단들도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강의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해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준비했지만, 교육에 참석한 시민기자단의 발표를 들으며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소회도 있었다.
로컬크리에이터이자 로컬강사는 주민 스스로 자신의 지역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거창한 경제적 가치나 창업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소비자와 관광객이 주체가 되고 주민들은 객체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주인공이 된다면, 요즘 핫한 로컬에서 실제 일상 자체가 행복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