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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Sep 03. 2024

로컬과 에세이가 만나면

에세이가 로컬을 구원할 수 있을까?

5년 전 특별한 출판기념회에 초청받은 적이 있다. 주민들이 함께 쓴 ‘마을에세이’ 출간을 자축하는 날이었다.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자체적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태안 해변가 인근 펜션 마당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마을잔치에서나 맛볼 수 있는 시골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숯을 피워 돼지고기를 구워 날랐다. 펜션을 운영하는 분도 에세이 한 편을 쓰셨는데, 선뜻 장소를 제공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손수 음식을 준비하고, 출판을 도와준 손님들을 모셨다.  식탁에 놓인 꽃바구니에는 자녀들이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의 출판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대부분 50대~70대의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이분들에게 글쓰기는 평생 목말랐던 갈증을 해소하는 샘물 같은 것이었다. 


"저는 국민학교 밖에 안 나왔어요. 그래도 내 인생 이야기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이번에 받은 교육 수료증은 내가 죽으면 관에 넣어줘." 


배움보다 배고픔이 더 절실한 시절을 살았다. 배우지 못해 맺힌 한은, 자식들 교육으로 대신 풀었다.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배움보다는 늘 생계가 우선이었다. 결혼해서 장성한 자식들, 손자, 손녀까지 본 늦은 나이에 비로소 자신의 삶을 글로 풀어냈다. 농사일, 바다일, 마을일, 펜션일……. 생업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같은 인생이지만 맨날 입으로만 하던 신세한탄과 글쓰기는 달랐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스스로 의미를 찾는다. 한 주민은 마을에세이 후기에 이렇게 썼다. 


“(마을에세이는) 귀향생활을 돌아보면서 마을에서 나의 가치를 느끼고 위로와 치유를 받는 과정이었다.”


식탁 위에 접시가 비어갈 때쯤 갈 길 바쁜 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났지만, 글을 쓴 주민들은 모두 남아 2부 행사를 이어갔다. 각자 마을에세이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자신의 글을 펼쳤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민들은 서로의 글을 낭독하며 각자의 인생 스토리에 박수를 보내고 때로는 눈물을 훔쳤다. 


5주간의 마을에세이 강의에 자신의 삶을 주제로 처음 글을 써보는 주민들이 많았다. 피드백을 할 때마다 주민들의 글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강의 때 설명했던 내용을 얼마나 꼼꼼히 듣고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는지 원고를 교열교정하면서 알게 됐다.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자신의 아픈 역사까지 드러냈다. 메시지 정하기, 글감 찾기, 구성 짜기, 묘사, 대화체, 재고와 퇴고, 제목 달기까지 여러 가지 글쓰기 방법을 가르쳤지만, 에세이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진정성을 넘어설 묘법은 없다. 


그렇게 배운 글쓰기로 태안의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났다. 갯벌과 바다를 낀 어촌 마을의 전형이 복원됐다. 새악시금, 수억말, 감길, 갬밭 등 지역 고유의 단어에서 짭짤한 갯냄새가 났다. 학교까지 가는 길이 멀어 해안가를 따라 등하교하던 추억도 되살아났다. 글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태안 주민들의 기억 속에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추억도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며 겪은 갈등과 고민도 가감 없이 담겼다. 로컬을 이웃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낙원처럼 이상화하는 시선이 존재하지만, 로컬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갈등하고 반목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서로 상처 주고, 때로는 위로받는 관계가 이웃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글 말미에 희망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몇십 년 살아온 내 고향이고, 제2의 인생을 위해 찾은 터전이다. 태안에서 태어난 토박이든, 도시에서 태어나 태안으로 이사 온 귀농·귀촌인이든,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이든 마을살이가 더욱 행복해지기를 기원했다.


에세이를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한다. 보잘것없는 인생인 줄 알았는데, 스스로 쓴 글이 책에 실리고 나니 나름 빛나는 인생이다. 쓰기 전에는 알지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일상에 대한 애정이 로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내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며 함께 마을신문과 지역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드는 이유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한 마을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글을 쓰고 함께 나눈다면 그 마을은 어떻게 변화할까? 


에세이는 ‘나’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 나를 오롯이 들여다봐야 에세이를 쓸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넘어서야 내가 제대로 보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내가 어떻게 관계 맺는 지를 살펴봐야 글이 더욱 깊어진다. 환경은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 즉 로컬이다. 나와 너의 작은 조각들이 콜라주처럼 만나 로컬을 이룬다. 이웃이 쓴 에세이를 읽는 것은 나와 관계 맺는 ‘너’를 이해하는 일이다. 로컬은 에세이의 무대다. 상대 배역을 이해해야 무대 위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다.  ‘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로컬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로컬리티'가 생성된다. 매스컴을 타면 홍보도 되고 관광객도 많이 와서 지역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문과 방송에서 만들어낸 로컬리티는 제삼자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그것이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로컬에서의 삶일 수 없다. 외부인의 시선에 의해 때로는 왜곡되고 과장된다. 일상을 기반으로 주민 스스로 쓰는 글에서는, 로컬을 소비자와 관광객을 위해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타인을 의식하며 나를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도 괜찮다.  그런 모습을 스스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불안한 마음은 잦아들고 평온이 찾아온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나와 로컬을 행복하게 가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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