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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Dec 04. 2019

이 또한 지나가리라, 뭐든 하다 보면.

먹고 살기를 거부하는 아이와의 사투

언제부터 아이가 잘 먹지 않으려고 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난 6월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의 휴직 시작과 함께 새 어린이집과 치료실에 잘 적응했던 아이가 새삼스럽게 분리불안을 보이며 힘들어하기 시작하였다.

고비가 온  같으니 우리 같이 잘 넘겨보자 하면서 여름을 맞았다.

6월 말 둘이서 제주도에 다녀오며 일주일 정도 쉬고 나니 입맛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14kg 아이의 몸무게가 2kg 빠졌다가 다시 조금 먹으면서 13kg이 되었다.


원래도 잘 먹지 않던 아이는 갈수록 더 먹지 않으려고 버텼다.

한 끼 밥 양이 점점 줄어들었고, 반찬 편식이 시작되었다.

먹는 양이 적어지니 기운이 달리고,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었다.

등원하는 아침마다 통곡을 했고, 치료실에는 혼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날씨는 길게도 뜨거웠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싸움이 나날이 이어졌다.


지난한 여름을 보내며 나는 혼자서 얼마간의 타협을 했다.

1. 아침밥이 꼭 밥일 필요는 없다. 뽀로로 빵과 우유라도 먹고 등원하자.

2. 어린이집에서의 점심식사는 기대 말자. 하원하고 케이크 한 조각이라도 잘 먹으면 걱정을 멈췄다.

3. 수업을 다시 줄였다. 야심 차게 시작한 미술활동은 무기한 보류, 힘들어하는 감통은 일주일에 한 번만.


결국 어린이집에 가는 4일은 하루 한 번 저녁에만 밥을 먹었고,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금토일 3일은 하루 두 번 점심 저녁에 밥을 먹었다.

간식이라곤 하루에 케이크 한 조각도 먹을까 말까, 다른 건 일절 입에 대지 않는 아이이니

한창 크는 다섯 살 아이가 고거 먹어서 되겠냐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먹이는 일에 마음을 비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치료 수업을 줄이면서 굉장히 많이 망설였다. 

치료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한 휴직이었고,

이게 어떻게 만든 일정인데...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20분도 채 못하고 나오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길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제대로 놀지도 쉬지도 못하고 카시트에 갇혀 흘려보내고 있는 아이의 많은 날들이 너무 가여웠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그다지 없고

호불호 표현도 잘 없는 아이였다.

먹기는 싫었지만 거부하기도 귀찮아서 겨우겨우 먹어주던 걸 이제 강하게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 우리 아들 표현이 늘었구나.

좋게좋게 해석하며 나와 아이를 볶지 않는 게 우리가 함께 살 길이다.

엄마로서 너무 무책임한 걸까... 불안하고 자책도 됐다.

그래도 마음을 바꿔 먹으니 많지 않은 밥이라도 먹어주는 게 어디냐 싶었다.


이 정도면 너도 나도 조금씩 양보해서 잘하고 있는 거다 잠깐 방심한 사이,

다시 고비가 왔다.

추석명절을 쇠고 구내염을 앓으면서 다시 식사 거부가 시작됐다.

하루에 물 한 모금만 마시기도 하면서 닷새를 꼬박 굶더니 탈수가 오고 축 늘어져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며 팔을 덜덜 떨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수액이라도 맞히러 갈까 하면 하루 이틀 새 모이만큼 먹고 다시 사나흘 굶고를 한 달 넘게 반복하더니,

그 이상은 떨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의 체중은 10kg이 되었다.

세상에, 돌 때 몸무게로 돌아가다니.


그 와중에 어린이집은 구내염을 앓은 일주일을 빼곤 계속 나갔고 치료도 몇 번 쉬지 않았다.

아이는 떨어지기 싫다며 더 울고 떼를 썼지만

데리고 있은들 별 도리가 없었다.

소파 위에 축 늘어져 TV만 틀어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이를 억지로 등원시키고 나는 집에 돌아와 멍청하게 앉아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무언가 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이따금씩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생각이 들면

장을 봐와 소고기도 다져서 부치고 돼지고기를 두들겨 돈가스도 만들어보고 감자도 갈아서 부치고 새우도 튀기고 없는 솜씨를 총동원해서

야심차게 들이밀었다가 야멸차게 거부당하곤

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로 돌아왔다.


수액을 맞혀라.

한의원에 가봐라.

어린이집을 쉬어라.

여러 주문이 들어왔지만 그냥 하던 대로 했다.

먹고 싶지 않구나.

먹고 싶어 지면 그때 많이 먹자.

먹고 싶어 질 때까지 살아는 있자꾸나.


그러는 동안 끈질기던 더위가 옅어졌다.

찬바람 쐬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어두워지면 자전거에 태워 한두 시간씩 산책을 했다.

오후 바람이 선선해지면서 치료시간 사이 틈을 내 고인돌공원, 센트럴파크를 돌았다.

주말마다 차를 몰고 나가 소래포구, 안산, 안성, 아산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고 낯선 데서 잤다.

아이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안 먹어 살이 빠지는 것보다 더 안타까웠던 건

표정도 기운도 없이 축 늘어져 누워만 있는 거였다.

어차피 맛도 식감도 즐길 줄 모르는 아이이니

입맛을 살리는 건 포기하고,

바깥바람 쐬고 새로운 걸 보면서 활기라도 찾으면

좋은 기분에 먹어볼 생각도 들지 않을까 싶었다.


바람 쐬며 신나게 걸어야 기분 전환이 된다며 유모차를 두고 나오면

기운 없는 아이는 여지없이 안아 올리라며 손을 뻗었다.

아이를 안고 업고 다니다 보니

내가 먼저 죽겠다 소리가 나왔다.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나다니며 아이 아빠도 초죽음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케이크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녁 한 끼만 겨우겨우 밥을 어른 숟가락 한 술 정도 먹더니

빵과 케이크를 마다한 어느 날부터는 아침에도 조금씩 밥을 먹었다.

여전히 점심도 간식도 마다했지만 밥을 먹으면서 빠르게 기운을 차렸다.

안아달라는 날이 많았지만 걸으라고 하면 칭얼거리며 쫓아는 왔다.

살이 빠져 바지가 자꾸 내려가니 중간중간 추켜올리며 다니는 아이 모습에

그래도 웃음이 났다.

목숨 부지할 만큼 먹는 게 어디냐 싶어서.


어린이집에서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 계속 미루고 있던 영유아검진을 받았다.

키는 3프로, 몸무게는 1프로가 나왔다.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곰이가 작은 건 알았지만 피 뽑고 검사까지 해야 한다니 화가 났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나만 더 그런 것 같아서.

더 잘 먹고 갑자기 쑥쑥 클지 모른다며 두 달쯤 후로 여유 있게 예약을 잡아놓고,

아직 체력을 다 회복하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나는 제주로 떠났다.


그리고

15박 16일, 제주에서의 긴 여행을 마쳤다.

아이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다 먹고

한 끼 식사량이 1.5배쯤 늘어서 돌아왔다.

밥을 잘 먹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기쁜 건 아이에게 활기가 생겼다는 거다.

잘 걷고, 가끔 뛰기도 하고, 이상한 춤도 추고, 잘 논다.

전보다 박수도 많이 치고, 크게 웃고, 옹알이가 다채로워졌다.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본다.

산책, 여행, 휴식, 친구 아이들과의 시간...

굶주림인가...

그저 여름이 끝나서일까.

잘 모르겠다.

내가 잘 싸워서인지, 아이가 커서인지.

알 수 없으니 그냥

나는 나의 일을 한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또 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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