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훼손하면서 까지 지켜야 하는 것

이혼을 마음먹기까지 나는 나를 너무 함부로 대했다.

by 뮤뮤

결혼한 지 벌써 13년 차가 되어 간다. 나와 남편은 대학 때 지인 소개로 만나 7년 연애를 끝으로 식을 올렸다. 그저 오래 만났고, 헤어질 수 없었고, 책임져야 하니까. 눈물 콧물 쏟는 프러포즈는 없었고, 불타는 사랑도 아니었다. 물론 멋들어진 프러포즈를 받았다 하여, 뜨거워 타 죽을 듯 서로가 아니면 안 될 지경의 황홀경에 휩싸인 열망이었다 하더라도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돌아서는 연인들도 숱하게 있으니 우리가 남들 보기 다소 미지근한 맹물 맛이라 할지라도 결혼도 못할 그런 사유까지는 아니지 않은가? 싸움 한번 없이 그저 무난하게 지내온 시간들이 안정적이라 생각했다. 나나, 남편도. 다만 나와 남편의 문제라 한다면 서로의 결혼관이 너무 달랐다. 나는 오글오글의 정점을 찍는 로맨틱 드라마에 쩌든 고등학생 소녀 같은 사람이었고, 남편은 사랑, 가정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을 무(無) 그 자체였다. 거기서부터 오는 차이가 처음엔 서운함으로 시작해 갈등의 기폭제가 되어 재앙으로, 서로의 영혼을 썩어 문 들게 했다.


지인들은 묻는다. 그 긴 연애기간 동안 어땠냐고. 그 말을 듣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상 내가 남편과 연애하는 동안 사랑의 충만함, 만족감을 느꼈던 기간은 고작 길어봐야 300일 정도였으니까. 그 이후엔 그저 무미건조하게, 때론 흉폭하기까지 한 그 긴 세월을 무자비하게 견디듯 관계를 꾸역꾸역 이어왔다. 어쩌면 그게 지금 결혼생활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방금 동네 도서관에 앉아 내 이혼 소장 초안을 작성해 변호사에게 보냈다. 이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내가 받은 피해를 극대화하고 상대를 최대한 악마화하여 세상 이런 호로잡놈이 없을 정도로 할퀴고 물고 뜯었다. 아주 나쁘게. 입 안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생살이 물컹물컹 씹히는 느낌이다.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우리의 결혼생활이 정말 이 정도로 썩어 문들어지는 지경에 이른 걸까. 글로 표현하고 보니 둘 다 너무 힘들었다.


나는 오늘 새벽까지도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다시 한번 합의이혼을 요구했다. 그래도 한때 마음을 나눴고 아이들 아빠이기도 하고 한 여자의 남편이기도 하니까. 예의를 갖추고 우아하게 정리되길 바랐다. 남편은 끝내 거절했다. 급기야 요즘 들어서는 남편의 귀가 소리만 들려도 공황이 밀려와 숨이 막히고 눈앞이 새까매진다. 질식감으로 바닥을 기며, 울며, 헐떡거리게 된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나를 정신이상자 취급한다. 그러니 이제 더는 같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본 로맨틱 드라마에서는 이런 장면은 없다. 아픈 여주인공. 그리고 물리적으로 몇 시간 만에 도저히 당도할 수 없을 말도 안 되는 먼 거리에 머무는 남자주인공. 그는 한달음에 아픈 그녀에게 달려와 준다. 그러나 내 현실의 남편은 못 본 체한다. 지척에 힘들다 울부짖는 아내를 두고도 말이다. 되려 아이들에게 엄마 옆으로는 가지 말라 한다. 이게 지금까지의 내 결혼생활을 설명하는 전부이자 끝이다.


나는 정말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다. 아이들도 전부 사랑으로 키워 낼 용기와 인내,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불신했고 나 대신 제 어머니를 믿고 의지하며 내 자리에 어머니를 세웠다. 그리곤 하나, 둘, 나의 역할을 제한했으며 강제하고 통제했다. 내 의사는 철저히 묵살되었고 그저 뭘 잘 모르는 멍청한 애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대항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되려 그럴수록 부모의 전쟁 같은 싸움 속 아이들만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계속 펼쳐졌다. 그래서 회유했다. 다음은 애원했고, 그다음은 통곡하고 절규했다. 그리고 결국엔 침묵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가정에서 뭔가?'라는 질문이 남게 됐다. 씨받이, 보모, 육아 돌보미, 부양자, 괜찮게 벌어오는 쓸모 있는 기계, 수라간 나인, 무수리, 노예 등등 그 안에 '아내'가 없음을 알아차리는 데에 무려 13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건강한 나로 살아가는 데에 상당한 지장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무려 13년이 걸렸다. 무려 13년.


남편은 모른다. 내가 나 스스로를 매우 자주, 빈번하게 해하려 한다는 것을.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옆 방에 두고 행하는 그 매정한 짓을. 내가 나에게.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젊고 사랑받기에 충분하며 그런 소생하는 에너지로 지금의 가족 형태가 아니라도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다. 그래서 용기 낸다. 다시 한번 태어나 아름답게 여자로 꽃 피우길 너무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나는 그동안 이토록 생생한 나를 무참히도 방치하여 메마르게 했다.

이것은 학대고 신이 주신 생(生)에 대한 모독이다.


나는 나로 다시 서겠다.


이제 마흔하나.


내가 나를 훼손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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