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방식대로 한다.
이혼은 단순히 관계를 정리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면을 처참히 조각내는 갈등과 번뇌, 견딜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을 동반한 인생의 중대 결정이다. 게다가 이 지독한 유교문화 속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안주거리 삼기 좋아하는 사회에서 심장을 태우는 심정으로 어렵게 한 선택조차 손쉽게 희화화된다는 점에서 더없이 힘겨운 문제라 하겠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고저...? 흥! 아무리 회유하고 무서운 말로 겁을 줘도 아닌 것은 아닌 거다. 이번만큼은 정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쫑을 내야 한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결혼해라. 좋은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쁜 아내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그도 어쩌지 못한 결혼생활. 철학의 아버지도, 논리의 달인도, 사유의 거장도 결국 아내 크산티페 앞에서는 그냥 "네, 여보..." 하는 인간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철학자가 되어가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책임이란 이름으로 어디까지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해 내야 하는가. 사랑은 감정인가, 습관인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모욕하고 파괴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까지가 상식적인가.' 같은 고대 그리스급 질문을 매일 던지며 살고 있다. 비정한 욕지거리가 날아와 가슴에 꽂히면 상처에 둔감해지는 법을 배우고, 경멸의 눈초리가 온몸을 차갑게 스칠 때면 자존의 온도를 조절한다. 나의 결혼생활은 실전 철학 수련의 장인 셈이다. 소크라테스도 결국 독배를 들었다. 난이도 최상급 인생 난제 앞에 한점 먼지 같은 나는 그저 선임한 변호사가 제대로 실력 발휘 해주길 바랄 뿐이다.
남편은 이혼을 절대 쉽게 안 해 줄 거다. 최악의 경우, 잘하겠다고 뉘우치며 강력하게 혼인 유지 의사를 밝힐 것이다. 나는 그를 잘 안다. 원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철시켜 반드시 얻어내는 사람. 그러니 내게 대책도 없이 멍청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거다. 결국 지리한 소송으로 가는 장기전이 예상된다. 변호사는 약 1년 6개월을 말했다. 이 싸움에서 내가 맞닥뜨릴 현실은 달콤한 양보나 호락호락한 결말 따위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피가 마를까. 체력을 키워야 한다.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양질의 음식을 넣어야 한다. 애저녁에 떨어진 입맛이다. 조금만 먹을라 치면 바로 체기가 올라와 식탁 앞에서조차 숨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먹는다. 끝까지 버텨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내게 어느 것 하나 내어줄 수 없다는 남다른 각오의 남편. 무얼 하는지 매일 컴퓨터 앞에서 바쁘다. 의지력만큼은 인정이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게임의 승자는 결국 내가 될 거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각자 갈 길 갔으면 한다. 그 대단한 의지력을 제발 나 없는 곳에서 멋지게 펼쳐나가길 바란다.
이별이나 이혼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대개 처음에는 현실 부정에서 분노, 슬픔, 후회, 수용으로 이어지는 애도반응(grief process)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 기복, 우울감, 수면 문제, 식욕 변화,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도 동반된다 한다.
우울, 수면장애, 식욕부진 등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나는 어떠한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다. 슬픔과 후회 사이 그 어디쯤. 후회야 어차피 이혼을 해도 안 해도 똑같을 것이니 패스한다 치자. 그렇다면 남는 것은 슬픔. 남편에 대한 미련은 1도 없으니 이 슬픔의 정체는 당연히 아이들과 부모님을 향한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잘 해낼 수 있다. 대체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이번 이혼 소송으로 얻게 될 유·무형의 자산,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실력 있는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 살림솜씨 끝내주는 야무짐, 다재다능한 재능과 말주변,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젊고 싱그러운 건강한 육체가 있으니 이만하면 인생 2막의 시작치고 꽤 괜찮은 조건 아닌가. 나는 어느덧 수용의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느낄 수 있다. 이혼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의 영혼은 더욱 건강해지고 강인해지고 있음을.
소크라테스도 풀지 못한 난제를 나는 독주가 아닌 이혼으로 해결해보려 한다. 비록 그는 독배를 들었지만 나는 이혼 소장을 든다. 이 얼마나 실용적 철학의 완성이란 말인가!
나는 벌써부터 내일의 내가 궁금하다.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유쾌하고, 자유로운 내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결혼을 무덤으로 택했지만 나는 이혼으로 날아오를 거다!
실전에 있어서는 내가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