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은도끼 보다 램프요정 지니를 더 좋아했던 여자가 꿈꾼 결혼생활
우울감이 밀고 들어올 때면 디즈니, 픽사, 지브리 같은 애니메니션을 찾아보곤 한다. 주인공들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사랑하는 가족, 믿음직한 친구, 친절한 이웃과 함께 끝내 용기와 희망을 노래하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맑고 순수한 응원을 받는 느낌.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나는 아주아주 어릴 때부터 디즈니 만화를 접했다. 오죽하면 지금도 금도끼, 은도끼 보다 램프의 요정 지니가 더 익숙할 정도니 말이다(참고로 알라딘은 1992년 作).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나보다 6살 많은 사촌오빠가 바로 옆 동네 살았다. 정확히는 외삼촌댁. 맞벌이셨던 부모님은 연년생인 나와 내 여동생을 외숙모 손에 자주 맡겨놓곤 하셨는데, 그곳은 정말 없는 게 없었다. 각종 만화책부터 비디오테이프, 장난감, 오락기, 화려한 음향기기들까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테이프 전체가 분홍색이었던 디즈니클래식 비디오 시리즈였다. 맨 처음 봤던 게 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너무 재밌었다는 것. 백설공주, 피노키오, 덤보, 밤비 등등.
그래서였을까. 나는 좀, 너무 애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 지나치게 이상을 좇았다. 내가 사는 현실 속엔 만화 같은 왕자님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왕자님을 그렸고, 결혼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애당초 머릿속엔 없던 것이었다. 언제나, 늘, 항상, 'Happily Ever After.' 로 끝났던 만화들이었기에.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어린 시절 디즈니가 심어 놓은 환상의 씨앗 때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현실감각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가정해 본다. 내가 놓친 부분을, 보완할 부분을 찾아본다.
'만약 내게 결혼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나는 가장 먼저 나의 이 허무맹랑한 결혼관과 입체적이지 못한 배우자상을 다시 세울 것이다. 이상이 아닌 현실 위에 구체적으로 말이다.
이전의 나는 평화롭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침실 안으로 들이치는 햇살에 눈을 뜨고, 남편이 내려다 준 커피와 토스트를 아삭거리며 도란도란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나의 결혼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칠흑 같은 새벽 남편의 요란한 알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뜨고, 그를 위해 준비한 아침 요깃거리는 소화 불량을 이유로 식탁 위에 그대로 남겨진다. '앞으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무정히 일터로 향하는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결혼 생활 내내 나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늘 혼란스럽고 외로웠다. 저런 오글거리는 평화로운 아침은 없으며, 아내의 마음 씀에 고마워하고 표현할 줄 아는 남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게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할 대목인가. 물론 과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정말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또는 앞으로 내가 또 한 번의 결혼을 꿈꾸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는 다음의 세 가지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첫째. 서로에 대한 예의, 존중, 배려, 사랑, 감사 표현
비록 귀찮더라도, 아무리 화가 난다 하더라도 이것 만큼은 지켜져야 한다. 이것은 비단 부부사이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라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살아가는 공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 돌이켜보면 남편과 나는 서로를 찢고 할퀴고 해하는 말만 주고받았다. 누구라도 먼저 접어주거나 이해와 공감에 대한 표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아니 없었다. 그러니 건강했을 리도 만무하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오늘 어땠어요?” 짧은 말들이 쌓여 온도를 만들고 신뢰가 형성되며, 그러한 믿음 속에 영원을 그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둘째. 갈등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고 대화로 풀어 나가려는 노력
남편은 엄청난 외골수다. 본인이 고집하는 철옹성 같은 원칙을 세워두고 그에 반하는 주장이나 의견은 보려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그의 귀엔 개똥만도 못 한 소리가 되고 만다. 나는 남편과 월 1회 둘만의 시간을 갖길 원했다. 단 몇 시간 만이라도. 그러나 우리에겐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을 잠시 어머니댁에 맡겨 두는 방법을 제안했다. 어림없는 소리라 했다. 그럼 분기 1회, 그도 아니면 반기 1회라도 안 되겠느냐. 안된단다. 우리 때문에 어머니를 힘들게 할 수 없다는 그의 절대 불변의 원칙은 흔들림 없이 견고했다. 또한 어머님과의 트러블에 대해서는 무조건 일단 "네, 잘못했습니다."를 해야 한다 했다. 그게 있은 다음에라야 "그랬구나."를 해줄 수 있다 했다.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들으려하지 않는 막무가내라면, 일방적 요구만 있는 조건부 위안이라면, 양보하지 않는다면, 노력하지 않는다면, 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셋째.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서로는 서로에게 무조건 1순위인 자세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차선에 서 있는 사람들 같았다. 닿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끊임없이 가족의 중심은 부부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했다. 그러나 남편은 어머니와 본인 직계가족이 우선이었다. 심지어 내가 계속 본인의 '가족'을 흔들고 힘들게 한다면 나는 '남' 일 수밖에 없다고 까지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내가 남이라니.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늘 타인으로 분류되어 가족이 될 수 없었다. 이것을 결혼이라, 이런 사람을 배우자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가 이혼으로 점철될 내 지난날 흑역사를 토대로 이제야 써보는 결혼에 대한 나의 핵심 가치관이다. 다음화에서는 왕자님이 아닌 현실적 배우자상(외모, 성격, 지적 능력 등)에 대해 써 볼 예정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이혼만 잘하면 바로 연애 쌉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김칫국을 시원하게 드링킹하게 되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조금 씁쓸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