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2)

다정하고, 다정하고, 또 다정한 사람

by 뮤뮤

나는 현재 이혼 소송을 앞두고 있는 41살 위기의 주부다. 미련하게 공부만 하며 사람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공대 "걔" 아름이는 22살에 만난 사람과 7년 연애를 끝으로 결혼했다. 구체적 결혼관도, 현실적 배우자상도 아무것도 없던 백지에서 출발한 결혼이었으니 시작부터 파열음이 잦았다. 나는 너무 순진했고, 남편은 너무 삭막했다. 이슬 한 점 머물 수 없는 그 건조한 사막 위 나의 눈물은 매번 떨어지기 무섭게 증발 돼 아무런 생명력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13년을 메말라갔다. 늘 무거운 우울을 그득 껴안고도 괜찮다 자위하며 버티기만 한 시간들. 정말 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웃는 날보다 무표정이 익숙하고, 눈 맞춤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대화는 청문회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대체 나랑 왜 결혼했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내게 그나마 남아 있던 한 줌 공기마저 앗아갔다.


"사실 난 누구라도 상관없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헤아려봐도 적당히 내놓을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사람과 13년을 보냈다. 내 영혼이 말라비틀어져 금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그 긴 세월을 허공에 날렸다. “미안하다.” 이 한 마디 듣는 게 소원인 삶이라니. 부부가 되어선 안 될 사람들이 만나 모든 게 고통이었다. 곧 이혼 소장이 남편 앞에 도착한다. 점잖게, 품위 있게 굴어줬으면... 내 마지막 바람이다.


'만약 내게 결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은지에 대해 정확히 해 두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첫째도 다정함. 둘째도 다정함. 셋째도 다정함이라 하고 싶다. 그만큼 간절히 바라는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다정함'이다.

남편은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책임감은 강할지 몰라도 정말 다정함 만큼은 찾아보기 어렵다. 밖에서 아무리 억울한 일을 겪고 와도 오직 나만을 위한 다정한 내 편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모든 설움을 씻어냄을 남편은 알지 못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 나와주는, 귀가가 늦은 날 늦게까지 기다려주는, 어딜 가든 아내 손을 잡고 발맞춰 걸어가 줄 줄 아는 그런 다정함 말이다. 나는 그런 다정함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두 번째, '건강한 정신과 신체'다. 남편은 IQ가 165다. 머리만큼은 의심할 나위 없는 고지능자란 말씀. 그러나 지능과 정신은 엄연히 다르다. 지능이란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하고, 추론, 기억하는 등 인지적 능력을 말하는 반면 정신은 감정, 의식과 무의식, 사고, 성격 등 보다 복합적이고 주관적인 내면세계를 말한다. 남편은 어머니와 분리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어머니에 저항하는 나의 모든 말은 자신의 상처를 공격하는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소년은 독립된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채 제 옆에 어머니를 세우고 아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건강하지 못한 정신인 것이다. 그리고 자주 아프다. 늘 골골거린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타이레놀, 종합감기약을 늘 달고 산다. 그러면서도 하루 네댓 갑의 담배를 태운다. 매년 회사에서 날아오는 건강검진 결과지는 한해를 거듭할수록 장수를 더해간다. 어쩔 수 없는 노화를 반영한 수치라 하더라도 너무 심하다. 나는 잘생긴 사람이 좋다. 피지컬? 당연히 좋아야 한다. 운동신경? 그거까지 좋으면 뻑이 간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신체라면 제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That's no no 란 말씀이다. 난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진 사람과 죽을 때까지 즐겁고 격정적인 성생활을 누리며 백년해로하고 싶다. 13년 결혼생활 동안 갖은 잠자리 횟수가 고작 열손가락 안 밖에 되지 않는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여자가 가장 강하게 성에 눈 뜬다는 40대다. 이제라도 즐겨야 한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세 번째,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다. 돈, 돈 거리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갈 최소한의 책임감과 현실 감각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만으로는 전기세도, 아이가 원하는 교육도, 서로의 노후도 지탱할 수 없다. 현실을 외면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때론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제때 납부되는 공과금 영수증이 더 큰 안도감을 주는 순간이 있다. 그걸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속물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현실일 뿐이니까.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 위에 사랑도, 가정도 지킬 수 있다. 일정 수입이 주는 안정감은 정말 큰 힘이 된다. 참고로 나는 일 좋아하는 ENTJ 다. 여차하면 내가 벌어다 먹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한 공간에 돌아와 손, 발 주무르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그런 시간도 있는 삶이 인생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마지막 번째. '삶을 사유하고 즐길 줄 아는 여유'다. 꺼질 줄 모르는 용광로처럼 오늘을 태워 보장되지 않을 미래에 올인하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1 더하기 1은 반드시 2여야 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 왜 봐야 하느냐 따져 묻는 사람. 우리는 모두 바쁘게 살아간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시간은 늘 모자라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내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지고 깊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의 끝에 창밖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조용히 감탄할 줄 알고, 빗소리를 들으며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라내는 감성을 지닌 사람. 그런 사람 곁이라면 어떠한 꾸밈도, 숨김도 없는 내 모두를 보여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시 숨 쉴 수 있을 것 같다. 여유란 삶을 느리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사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것이다. 같이 웃고, 슬퍼하고, 때론 아무 말 없이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만약 내게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 준다면, 나는 내 남은 생을 걸어볼 용기가 생길 것 같다. 그런 삶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다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나는 바로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온기 가득한 생기 넘치는 매일인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 이혼 중이거나 이미 홀로서기를 한 사람, 또 한 번의 생을 원하는 사람 모두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

사람은 매 순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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