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현재도 진행 중
- 합의이혼으로 하자. 대답 좀 해줘.
- 곧 집 근처 도착 예정이야. 장소 정해 톡 주면 갈게.
9월의 마지막주 금요일. 나와 남편은 집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았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 녹음기능을 켜 테이블 위에 뒤집어 올려두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런 거지. 나는 합의이혼을 위한 조건들을 이야기했다. 양육권, 양육비, 재산분할, 면접교섭주기 등. 예상대로 남편은 전부 거부했다. 그럼 조정이혼이라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합의이혼 보다 절차적으로 좀 더 복잡할 수는 있으나 깔끔하다. 그것은 어떠하냐 물었다. 그도 싫다 했다. 그럼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물었다. 알 것 없다 했다. 알아서 하라 했다. 짜증이 빡 올라왔지만 꾸역꾸역 참으며, 그럼 소송을 하자는 거냐 되물었다. 그 역시도 알아서 하라 했다. 나를 아내로도, 가족으로도 대우할 생각은 없다면서 이혼은 안 해주겠다 하니 한숨이 나왔다. 그러면서 '다 이러고 사는거다.' 라고 했다.
정말 그러할까.
세상 모든 부부들이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지 않는데, 인정하지 않는데, 이러고 산다고? 정말 일까.
그렇지 않다. 내가 보고 자란 가정은 결단코 그러하지 않다. 나의 부모님 또한 매일 크고 작은 일로 투닥거리시며 사신다. 마냥 행복한 잉꼬부부는 아니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두 분 사이엔 신뢰와 애정이 있고, 지금도 서로를 향한 따듯한 존중과 배려가 흐른다. 나는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가정의 가장 기본적 요소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다 이러고 사는 것.' 은 절대 아닐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자라며, 생생하게 경험한 보통의 삶을 살아 내시는 증거들이 지금 내 눈앞에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실제하고 있다. 그러니 그 말은 거짓이다. 잘못 알고 있는 거다. 때론 시큼한 냄새가, 때론 탄내가, 아주 가끔 달달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이 보통의 가정이다. 한편으론 남편이 안쓰럽다. 이런 다채로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 아직도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해 울고 있는 소년이 보이는 듯해서. 그 절규가 들리는 듯해서. 나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애처로움이, 이타심이 그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사실은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제발 단 한 번이라도 나를 믿어봐 달라고. 그러나 남편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하다. 나는 그의 구원자가 되어줄 수 없음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기대를 버리면 편할까. 체념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까. 홀로 곱씹고, 되새기고, 반문하며 지낸 수많은 밤들이 있었다. 정말 그런 걸까. 정말 다들 사랑 없이 말 없는 식탁 위에서 서로의 부재에 익숙해지는 것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는 걸까. 그렇게 살면서도 괜찮다 스스로 설득하는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안다. 나는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함께 머물기만 하는 시간을, 무의미함을, 헛됨을, 침묵을, 그런 삶은 정말 원치 않는다. 온전히 다 쏟아부어 뜨겁게 살아내도 애석하고 서글픈 게 인간의 삶이다. 허투루 지내선 안 되는 소중한 인생이란 말이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부모님이 몸소 보여주셨고, 내 아이들이 그 시간들의 유산이 될 것이다.
비록 조금 늦었지만 잃어버린 지난날을 보상받으려면 나는 누구보다 더 진실로 이 생을 살아내야 한다.
나의 시계는 오늘도 열심히 짹깍짹깍 돌아간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대들의 시간은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