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야 할 시간

할 말이 없습니다.

by 뮤뮤

그런 순간을 느껴본 적 있을거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해 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상황을 그려낼 적당한 단어와 표현을 고르는 데에 한계를 느낄 때면 나는 내가 가진 언어의 비루함에 슬퍼진다. 언어의 한계가 아닌 나의 한계. 몇 개의 짧은 단어만으로도 모두를 담아내는 시인들이 그래서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단어를 검색해 보는 습관이 있다. 치기 어린 시절에는 나를 더 멋지게 설명하고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사랑에 빠졌을 때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감정의 온도와 얼마나 가까운지 가늠해 보기 위함이었으며, 사회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일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달랠 수 있을까.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지금 내 마음을 완벽히 닮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찾을 수가 없다. 쓸 수가 없다.


언어의 벽 앞에서 멈춰 선 지금. 그래서 더 답답한 것 같다. 내가 나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 많던 어휘들은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입 안에서 흩어진다. 사라진다. 결국 누구 하나 설득해 내지 못하고 뻥끗 대다 이렇게 끝나고 마는 오늘이 나는 너무 싫다.


이별은 언제나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다. 헤어짐을 수백 번 연습하고 머릿속으로 수천 번 시뮬레이션해 봐도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모든 언어가 입 밖에서 녹아내린다. 미리 준비해 둔 문장들은 현실의 공기 앞에서 힘을 잃고 남는 건 그저 공허한 침묵뿐이다.


아마 그래서일 거다. 나는 오늘의 나를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한다. '슬프다'는 말은 너무 얕고, '후련하다'는 말은 거짓 같다. 이혼이라는 단어는 법적 절차를 말해줄 뿐 그 안에 담긴 아픔까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우리의 지난날이 비록 갈라짐으로 끝맺는다 할지라도 함께 쌓았던 시간만큼은 분명 존재한다. 그 시간들은 이제 아무 효용도 없는 문장처럼 흩어졌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가정'이라 불렸던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다. 그 안에서 다투고, 버티며 살아내고자 애썼던 나의 언어들이 지금은 마치 타인의 대화처럼 하염없이 낯설게 느껴진다. 허무하다. 그러나 이 표현조차 꼭 들어맞지 않음을 안다.


끝내 나는 오늘도 나 하나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커서만 깜빡대며 썼다 지웠다만 반복한다. 할 말이 없다. 정말로. 말로는 도달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침묵 속에서 배운다.


설렘, 떨림, 벅참, 희열, 흥분, 환희, 기쁨, 행복, 감동, 감격, 황홀, 전율, 열망, 도취, 그리움, 애달픔, 미안함, 서운함, 서글픔, 후회, 자책, 안타까움, 죄책감, 비애, 먹먹함, 공허함, 쓸쓸함, 아련함, 그리고 사랑...


남편에게 느꼈던 이 모든 단어들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다.


오늘은 정말 더는 쓸 말이 없다.



*이미지 출처 : 마음건강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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