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외면한 대가
- 남편, 비 너무 많이 오는데 역 앞으로 마중 나와줄 수 있어?
- 애들 자. 그냥 편의점에서 우산 사서 쓰고 와.
- 남편, 지하철 운행 시간 끊겼는데 oo역까지만 와주라. 나 술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 택시 있잖아. 택시 잡아 타.
생각해 보면 나는 결혼생활 내내 남편에게 따듯한 지지나 위로를 받아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남편에게 뭔가 요구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기대하지 말아야지.'라고 매번 되뇌었었다. 한 번은 회식자리에서 후임이 소주 3잔을 놓고 게임을 제안했다. 각자 배우자나 애인에게 문자를 보내 제일 늦게 연락 오는 사람이 벌주로 마시자는 것이다. 늦게 연락받는 것도 서러운데 벌주라니. 하기 싫었다. 신혼을 제외한 기혼자들은 일찌감치 포기한 눈치들이었다. 꼴찌만을 면하고 싶었다. 설상가상 미션 문자는 '사랑해.' 으... 사랑해라니. 이런 개연성 없는 문장이라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너무 하기 싫었다.
- 에라이! 내가 그냥 마신다! 소주 이리 내놔!
- 아이, 차장님! 한번 해봐요! 혹시 알아요? 제일 먼저 연락받으실지?
- 으아아 재밌겠다. 차장님, 한번 해봐요!
회식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카운트 소리에 맞춰 꾸역꾸역 문자를 보냈다. 반전은 없었다. 참고로 나는 알쓰다. 알코올쓰레기. 술을 잘 못한다. 소주 3잔을 연거푸 마시니 곧바로 수 분 내 하늘이 팽팽 돌았다. 그날 남편은 끝내 답이 없었다. 너무 뻔한 결과다. 이런 게임은 대체 왜 하자는 거야.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월미도 디스코팡팡 같은 택시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결혼생활을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걸까. 책임감 때문인가. 아이 때문인가. 체면 아니면 언젠가 그도 나를 사랑해 주리라, 이해해 주리라, 하는 미련한 희망 때문인가. 그러다 구토감이 밀려왔다. 택시를 세웠다. 올림픽대로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가슴 한 켠이 허전했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아 주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때 처음 이혼이란 단어를 머리에 떠올렸던 것 같다.
남편에게 내 외로움은 관심 밖이고 나는 나의 외로움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마음의 벽돌을 조용하고 착실하게 쌓아 올렸다. 말하지 않기로. 기대하지 않기로. 외로움을 숨기기로. 그게 이 가정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말해도 남편에게 사랑이란 제 부모와 아이들에게 줄 몫 밖에 없었으니까. 13년 동안 결혼기념일 한 번을 축하해 본 적이 없다. 단 둘이 데이트도 한 적이 없다. 내 생일도 시어머니 생신과 겹쳐 늘 나중으로 미루거나 간단히 늦은 저녁에 케이크 초나 부는 것으로 끝내곤 했다.
나의 결혼생활이 일반 가정과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도 보고 듣는 것이 있으니까 모를 수 없다. 남편이 주말에 자꾸 혼자만 동호회를 나가 자기만 애를 봐야하는 게 불만인 여직원. 제 남편이 시어머니 앞에서 자꾸 본인 편을 들어서 눈치 보여 죽겠다는 동기. 피곤해 죽겠는데 남편이 자꾸 잠자리를 보채서 싫다는 동료. 나는 주말부부이기 때문에 늘 독박이고, 시어머니는 절대복종의 대상이며, 잠자리는 아이를 갖기 위한 목적 외엔 손에 꼽았기 때문에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니 모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일 뿐 결국 남들과 같아지리라 믿었다. 헛된 믿음이었지만 말이다.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괜찮은 척. 아무 문제없는 척. 서로를 향한 시선을 거둔 지도 오래였으면서 애써 외면했다. 남편의 무심함은 일상이고 나의 체념은 습관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쓸 때 없이 인심이 좋은 나는 매일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을 치우며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하루를 꾸려갔다.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그게 아내의 역할이니까. 남편은 어땠을까. 이런 생활이 괜찮았을까. 이런 건 사랑이 아니다. 애정 없는 노동이고 관성일 뿐이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해내고, 그 어떤 감사나 인정 같은 감정 따위 없는, 그야말로 그냥 생활일 뿐인 것이다.
오랜만에 결혼반지를 꺼내 봤다. 여전히 반짝이고 이쁘다. 하지만 그 반짝임은 이번 결혼생활에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내 것이 아니다.
그때 그 게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혼결심을 조금은 더 늦출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왜 그런 게임을 하자해서는.
산들바람맞으며 달콤한 솜사탕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