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분열

이혼으로 인해 붕괴되는 의식의 기록

by 뮤뮤

마음고생이 뭔지 매일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오늘이 제일 힘든 날이겠지 싶은데 눈 뜨면 어제보다 더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마음은 바다에 있는데, 발만 겨우 땅 위에 붙이고 서 있는 상태다. 자아가 수천 수백 개로 쪼개져 분열됐다 융합되기를 반복한다. 그만큼 이혼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본 게임 전부터 이러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가 잘 버틸 수 있을는지. 아오 내 팔자야.


휴직 전부터 독학으로 박 터지게 준비해 오던 시험이 있었다. 이혼 결심 후부터 책이 손에 안 잡힌다. 시험일까지 약 140여 일 남았다. 불안초조. 손을 너무 못살게 굴어 손톱마다 피가 철철이다.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까칠해진 입맛으로 몸무게는 결혼 전으로 돌아왔다. 살 빼고 싶은가? 이혼해라. 효과 직빵이다. 와중에 또 무슨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미술학원도 등록했었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었다. 그러다 현타가 왔다. 뭔 신선놀음이냐 싶어 며칠째 땡땡이다. 지금도 선생님 전화가 온다. 안 받는다. 해야 할 일은 모조리 뒤로 미루고 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게 있는가? 있긴 있다. 하지만 맨 다 위험한 것들이다. 하면 안 된다. 미친 거다. 내 불온한 머리를 몽창 불태워 버리고 싶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는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다. 회사에서 유료 MBTI 검사를 해줬었다. J(판단형, Judging)와 T(사고형, Thinking) 그래프가 꽉 찬 100% 로 나왔다. 그렇다. 나는 뭐든 마음먹었으면 계획한 대로 실행하고 설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야만 하는 인간이다. 말 그대로 직진 밖에 모르는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다이나믹듀오의 '고백' 가사 일부)인 것이다. 그런 내가 요즘,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막 사는 중이다. 정말 막 산다. 최근 들어 지갑만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 어느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잃어버린 지갑들과 함께 정신머리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모양이다. 눈물은 안 나는데 눈빛에서는 은은한 광기가 돈다.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란 게 참 기묘하다. 결심이 섰다 하여 시원하게 질러지지가 않는다. 상대에게 마지막 통지라며 재차 개선의지를 묻는다. 그러면 나는 '진정 이혼을 원치 않는가?' 할 수도 있다. 아니. 원한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다만 불도저 같이 밀고 가질 못하겠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다. 굳은 결심 따윈 무의미해지는 것. 그것이 이혼이다.


이제 서류 속 서로의 이름은 원고, 피고로 바뀌어 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심장이 한 번씩 수축한다. 핸드폰 속 변호사의 카톡 메시지가 뜨면 손끝이 떨린다. 나는 앞으로 변호사가 일러주는 법적 절차에 따라 증거를 수집하고, 누구의 귀책이 더 큰지 분간하여, 서로가 원하는 지점을 향해 치열하게 다투어야 한다. 모든 게 너무 냉정하고 잔인하다. 나는 그런 건 원치 않는다. 정중하고 깔끔한 이혼이란 없는 건가. 이렇게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가야 끝나는 것인가. 정녕. 이혼을 먼저 겪은 이들은 말한다. 끝나면 속 후련해질 거라고. 앞으로 날개 단 듯 행복해질 것이라고. 물론 그렇게야 되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새로운 길을 받아들이는 데에 또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시간은 결코 달콤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난 왜 이리 벌써부터 텅 빈 것 같은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정신분열. 내 안에 무엇이 산산조각 나 흩어지는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매일 조금씩 침몰하는 느낌이다.


어제는 꿈에 내가 모르는 사람의 시신을 울면서 닦고 있었다. 차갑게 굳은 살갗 위로 손끝이 스쳤다.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또 소름이 돋는다. 꿈 해몽을 찾아보니 죽은 이의 몸을 닦는 행위는 과거의 상처나 감정의 잔재를 정리하려는 무의식의 몸부림이라 했다.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 결혼 생활에서의 회한을 느끼며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미련을 닦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혼을 준비하며 매일 무너지는 마음의 시체를 내 손으로 씻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애들 교육에 등한시하는 아내, 신경질적인 아이들의 엄마, 뚱한 표정의 인사도 제대로 않는 며느리.


그 모든 역할을 벗겨내니 내게 남은 건 붉은 심장 대신 회색 먼지로 채워진 나 밖에 없다. 나는 그런 자신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나를 해체할 것이다. 해체된 과거의 잔해 위에서 나는 나를 다시 조립해야 할 것이다. 시체가 된 지난날의 나에게 기어코 숨을 불어넣어 다시 금 체온을 되찾게 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나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은 이혼을 준비하는 한 여자의 천천히 붕괴되고 있는 의식의 기록이다.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겠죠. 결과가 어찌 됐든 말이예요.

이 모든 것을 관철시킬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뜨거운 눈빛이 필요해요. 응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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