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야, 아들아.

3,000 만큼 사랑해.

by 뮤뮤

한참이나 글을 쓰지 못했다. 쓸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지지부진하던 법원 소장 접수가 드디어 완료됐다는 변호사 연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 법원의 보정권고장이 나왔다. 가장 먼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고 곧장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친정 아빠는 나만 보면 너는 딸이 없어 어쩌냐며 그리 안타워 하시지만 난 너무 좋다. 아들만 둘이 왜? 세상 든든하지 않은가. 참고로 나는 위대한 K-장녀로 내 아래 XX염색체 및 XY염색체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하찮지만 가끔 쓸모 있는 꼬붕 2명이 있다(사랑한다. 이 기회를 빌어 애정을 표해본다. 이 언니/누나에게 안부전화 좀 자주 해라 이것드라). 어쨌든 아빠 말씀에 따르면 자고로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딸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유인즉슨, 나이 들어 목욕탕에서 등 밀어 줄 신체 건강한 믿음직한 동성이자 전적으로 의지할만한 말동무로 딸만큼 좋은 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믿음직한 여자친구(나보다 어린)들이 많고 필요하다면 매주 이들을 불러내 등의 때도 빡빡 밀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매사 철두철미한 나는 그런 날을 대비하여 주변에 많은 여성 편력을 만들어 두었다. 내가 부른다면 그들은 열 일 제쳐두고 내게 와 줄 것이다. 아마도. 또 좋은 남친(기회가 된다면 남편)을 맞이하여 매일 그 옆에 딱 붙어 고막에 피 맺힐 때까지 떠들어 재낄 것이다. 어차피 진정한 소통은 죽을 때까지 불가능 할 것이며, 무릇 대화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는 배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저 묵묵히 '맞아. 그렇지. 너가 다 옳아.'를 앵무새처럼 읊으며 맞장구만 잘 쳐주면 될 일이다. 물론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관건이긴 하다. 심히 어려울 것 같지만 목마른 자는 우물을 매우 열심히 파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몹시 목이 마르다. 한편, 나의 아들들은 그런 새로 맞이한 세상 안에서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며 저들의 가정을 꾸리고 또 다른 행복을 이어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고로 아들은 장가와 동시에 엄마를 떠나보내야 온전히 저만의 가정을 세울 수 있음을 지금 내 13년 결혼생활로 체득한 진리 아니던가. 그럼에도 어쨌거나 부모의 이혼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아이들은... 어찌해야 하나.


온 우주의 자랑

조선에 다시없을 아들들

나의 떡두꺼비

내가 세상에 내놓은 가장 눈부신 존재

생각만으로 눈물이 차오르는 벅찬 기적과도 같은 내 아이들


흑요석을 품은 내 첫사랑

큰 아이는 최근 사춘기를 맞이했다. 36시간 진통에도 불구 충분한 산도 확보가 되지 않아 아이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제왕절개로 어렵게 품에 안아야 했다.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지. 하지만 우려와 달리 파란색 모자를 쓰고 내게 온 아이의 얼굴은 신생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갛고 이뻤다. 보통 신생아는 검붉거나, 회반죽을 뒤집어쓴 고구마상이 아니었던가(내가 그랬다). 그리고 잠깐의 눈 마주침 속 유난히 검게 빛나던 눈동자는 흑요석의 그것이었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순간이다.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춘기라니. 기특하다. 화가 부쩍 많아졌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또 원래 없던 말수는 더욱 줄어 최근 가지고 싶다는 자전거에 관한 주제 외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나 역시 그러한 때가 있었고 그 시기, 내면에선 누구보다 넓고 깊은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으리라. 엄마를 대신해 동생 머리를 감겨주는 의젓한 장남. 늘 놀아달라 보채는 동생의 요구에 맞춰 힘껏 놀아주는 다정한 형아. 지금은 비록 질풍노도라는 무거운 호수 안에 말을 잠시 던져 넣어 놓았지만 이게 내 첫 번째 보석의 진짜 모습인 것을 나는 잘 안다. 눈물 나게 이쁜 내 첫사랑. 부디 밤하늘 총총히 빛나는 별 빛 가득 품은 아름다운 네 짙은 검은 눈에 어울리는 너만의 비밀의 숲을 무럭무럭 건강히 키워나가길 바란다.


내 애착인형이자 우쭈쭈 귀염뽀짝 두찌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둘째는 형 보다 말이 늦어 걱정이 많았던 아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표현력이 풍부하다. 관찰력도 좋다. 어제는 통 기운이 없어 가만 누워만 있는 내게 오동통 뽀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이마를 짚더니 엄마는 지금 태양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뜨거우니 당장 체온을 재 봐야겠단다. 태양을 껴안고 있다니. 뉘 집 아들인지 참. 어찌나 똘똘한지. 미래가 촉망된다. 나는 기초체온이 높은 편이다. 그런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호다닥 서랍 안 체온계를 챙겨 와 내 귀에 꽂았다. 그 표정이 자못 진지해 웃음이 나왔다.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또 자주 침울해하는 나를 귀여운 편지로 위로할 줄 아는 따듯한 아이다. 커 갈수록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둘째에게 나는 사실 미안한 것이 많다. 큰 아이 낳고 생긴 산후우울증은 어느덧 만성우울증이 되었고 그 무렵 시작된 남편, 시댁과의 갈등은 이 사랑스러움으로 똘똘 뭉친 아이에게 결과적으로 엄마의 슬픔을 실시간 지속 대면해야 하는, 그래서 제 엄마의 건강과 감정을 계속 살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너무 미안하다. 엄마아빠의 알콩달콩한 모습 한번 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 형아에게 집중되는 관심으로 늘 홀로 방치 돼 있어야 했던 심심함이 익숙한 아이. 큰 아이만큼 책도 많이 읽어주지 못했고 동요도 많이 못 불러줬다. 그래서 말도 늦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운동신경만큼은 뛰어나 돌잔치 때 이미 걸을 줄 알았고 그래서 제 돌 떡도 직접 들고 날랐다. 또 4살부터 두 발 자전거를 탔다. 신통방통이다. 작은 반딧불이 같은 감성으로 주변을 살피고 직접 움직일 줄 아는 아이. 큰 아이가 깊은 호수 같은 아이라면 둘째는 대기를 감싸는 산소 같은 아이다. 나를 돌본다. 착하디 착한 내 아가. 너는 앞으로 그 넓은 가슴으로 만인을 품는 푸른 지구 같은 사람이 되어라. 고소한 내 사랑아.




언젠가 내가 쓴 이 글을 아이들도 볼 기회가 생길까.

그렇다면 이 엄마를 조금 이해해 주길.

누구보다 너희를 사랑했고 아끼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내 목숨보다 더 귀한 나의 대지야, 하늘아, 바람아, 구름아, 별아, 태양아, 달아, 호수야, 바다야, 우주야.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많이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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