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더 붙잡는다 한들 변할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함께 사는 동안 숨 한번 제대로 쉴 수 없었는데, 막상 정말 끝내려니 두렵다. 걱정된다. 이게 미련인지. 지난날에 대한 회한인지. 만약에, 정말 만에 하나, 내게 남은 일말의 애정 뭐 그런 거면 어쩐담. 정말 잘 모르겠다.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라는 이 사람은 이제 내게 나쁜 사람이 되는 건가. 때문에 이토록 긴 시간 함께한 이 사람을 이제는 몹쓸 사람이라 생각해야 맞는 건가. 함께 아이 낳아 키우고 버텨온 수많은 시간을 그저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나는 세상에 공포할 수 있을까.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괜찮을 수 있을까.
처음 고백받았던 날이 생생하다. 한 초밥집에서 만났고, 잔뜩 긴장한 탓에 먹히지도 않는 초밥 몇 점을 겨우 집어삼키고는 물만 들이켰다. 그런 내게 그는 왜 이리 먹지 못하냐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한강에선 불꽃놀이가 한창이었고 우린 그 많은 인파 속 형형색색의 불꽃보다 더 아름답고 찬란히 빛나는 청춘을 터트리고 있었다. 스치듯 살짝 닿았던 손등의 감촉, 두 뺨에 옅게 오르던 열감, 바람을 타고 느껴지던 청량한 내음, 웃을 때 나는 특유의 목소리. 예나 지금이나 한강 불꽃놀이는 장관이었다. 그에 걸맞게 사람도 정말 많았다. 우린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고 그러다 내가 도로 경계석에 다리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는 나를 바로 잡아 주었고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후로 계속 옆에 방호벽처럼 딱 붙어 있어 준 덕에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불꽃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편히 감상할 수 있었다. 그때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생각했다.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보다 이 많은 인파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던 든든함이 그를 운명이라 생각하게 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풋풋함이 그날 거기 스물둘, 스물셋 두 청춘에게 있었다. 우린 그렇게 만나 20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러니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나. 나는 절대 괜찮을 리 없다.
남편을 향한 미움과 원망이 치밀고 올라올 때면 나는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리곤 했다. 우리가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잊지 않으려고. 그래서 나의 어리석음으로 이 생활을 망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새근거리며 잠든 천사 같은 아이들 곁에서 베개에 얼굴 묻고 애꿎은 이불만 꼭꼭 움켜쥔 채 퉁퉁 붓도록 숨죽여 밤 새 울지언정 나를 이렇게나 외롭고 좌절케 하는 그를 저주하지 않으려 그렇게나 애썼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내가 결국 망친 거다.
첫 아이 육아휴직 중 있던 일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아이에게 젓을 물려 놓고 멍하니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검은 물체가 쑥 내려앉았고 곧장 땅을 울리는 낮고도 밀도 높은 소리가 들렸다. 쿵-.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떨어졌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이윽고 한 여자의 절규가 들려왔다. "너한테 한 소리가 아니야! 너 이러라고 한 소리가 아니야! 아니야!"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엠블런스 경광등의 빨간 불빛이 보였다. 당시 거주 중이던 집은 2층이다. 고개만 내밀어도 무슨 상황인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이미 들려오는 소리로, 빛으로, 공기로 다 알 수 있었으니까. 귀를 틀어막았다. 여자는 계속해 실신할 듯 흐느껴 울었고, 주위에선 고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를 수습하는 소리도 들렸다. 너무 무서웠다. 소름 돋게 끔찍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내가 대체 뭘 본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 여기 사람이 떨어진 것 같아. 아이 수유 중이었는데. 근데 내가 다 봤어. 나 너무 무서워 남편. 집으로 와줄 수 있어? 나 어떻게? 너무 무서워.
- 내가 지금 어떻게 바로 가. 그리고 애는? 엄마가 그러면 애한테 안 좋아. 좀 진정해.
핸드폰 너머로 남편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남편의 반응은, 나는, 지극히 정상적이라 할 수 있었을까. 남편 말처럼 내가 너무 감정적이게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히 방금 제 자식일지도 모를 이를 잃은 한 여자의 절규를 듣고도, 생이 중단되는 순간의 과정을 필요 이상으로 생생히 느끼고도 고요히 있을 수 있었다면, 그래서 평범하게 남편의 퇴근을 맞이하고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평온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내가 남편을 계속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어째서 남편은 내게 늘 그런 식의 말 밖에 할 수 없는 건지. 남편의 걱정과 위로는 왜 늘 나를 비켜가는 건지. 너는 내게 왜 이리 차가운 건지. 결혼생활 내내 이 사람에게 나는 그저 아이 키우는 도구, 수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방금 변호사가 파일 하나를 보내왔다. 법원에 제출될 소장이다. 다 읽지도 못하고 이내 구역감이 밀려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먹은 게 없어 물만 조금 나왔다. 나는 실패한 인생 같다는 좌절감이 짙게 밀고 들어왔다. 한편 그가 또 걱정이다. 법원에서 날아올 소장을 받아 들 그는 괜찮을까. 차라리 남편이 외도를 했다거나 내게 손찌검을 했다라면, 그랬다면 정말 통쾌하고 후련했을 텐데 싶다. 그가 내게 한 것이라곤 고작 아이들을 제대로 관리, 통제하지 않는다는 비난과 제 어머니와 가족 앞에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음 대한 거친 욕설과 악다구니 그리고 내가 그를 필요로 하는 순간 늘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는 고작 그뿐이라는 것이다. 고작. 그게 아니고 어느 누구라도 감당 못할 엄청난 죄악이었다면 내가 덜 힘들 텐데 그게 못내 아쉽다.
너도 울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나를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한 번쯤은 내가 그리워 울었으면 좋겠다. 내가 눈물로 지새운 지난 모든 날의 반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내 심정이 되어 흐느꼈으면 좋겠다. 통곡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너도 우리의 아름다웠던 젊은 날 불꽃들을 기억해 내면 좋겠다. 그때만큼은 옆에 있어 줬으니까. 날 붙잡아 줬으니까.
적어도 그때만큼은 내 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