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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웅의 tellmewine Mar 07. 2019

8. 세계대전이 빚은 와인, 보졸레 누보

@와인, 알고 마실까요? - 1부 전쟁과 와인

혀를 감싸는 부드러운 질감에 입속을 타고 올라오는 향긋한 과실 향….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0시에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목젖을 동시에 적시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는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으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어찌 보면 가장 프랑스다운 와인이기도 합니다.    


보졸레 누보는 그해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숙성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두 달 만에 꺼내 마시는 와인


그 해 9월 중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숙성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두 달 만에 와인을 꺼내 마시는 것은 프랑스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와인을 주스처럼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하고, 레드 와인인데도 화이트 와인처럼 차갑게 해서 마신다니…. 와인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보졸레 지방에서 나는 보졸레 누보라면 이 모든 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상식을 뒤집는 와인인 보졸레 누보에 대해 많은 프랑스 사람들은 “싸구려 와인”이라거나 심지어는 “와인이 아니라 주스”라고 폄훼하기도 합니다.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 wikipedia

 

1945년 5월 초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동남부 보졸레 지방의 주민들이 그 해 어렵게 농사지은 포도로 정성껏 와인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도 안돼 서둘러 와인 숙성고를 열어젖히고 가족과 친구, 동네 사람들과 그간의 회포를 푸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장장 6년에 걸친 전쟁에 와인을 제대로 먹지 못한 프랑스 사람들의 눈에선 아마도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보졸레 누보는 역설적이게도 와인 없이는 못 사는 프랑스인을 가장 많이 닮은 와인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보졸레 주민들 2차대전 직후 기쁨과 감격의 눈물… 갖 담근 와인으로 회포 푸는 축제 열어


보졸레 누보는 일반적인 와인과 다르게 만들어집니다. 수확한 포도를 그대로 커다란 밀폐 탱크에  넣고 탄산가스를 가득 채워 강제로 발효를 진행합니다. 통상적으로 와인을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6개월이 넘게 걸리지만 탄산가스를 채워 숙성기간을 6주 정도로 앞당긴 것이죠. 전쟁에 지친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와인을 빨리 먹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부르고뉴(Burgundy)의 남쪽과 론 골짜기 (Rhone Valley)의 북쪽에 위치한 프랑스 와인 지역인 보졸레 (Beaujolais). ⓒGeoff Wong


    

사실 보졸레 누보는 엄밀히 따지면 프랑스 와인법에 위배되는 와인입니다. 프랑스는 1937년 와인법을 통해 그 해 생산된 와인은 12월 15일 이전에는 출시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1951년 11월 13일부터 보졸레 누보에 대해서만 보졸레 지방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일정 기준을 통과한 와인에 대해 예외를 허용해주고 있습니다.      


보졸레 누보 축제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이후 1970년 11월 15일에 바꿔 개최되면서 프랑스 전국 축제로 발돋움하고 198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축제일을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바꾸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9년에 처음으로 수입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졸레 누보는 현지 가격이 한 병에 7유로(1만 원) 안팎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와인 메이커에게 포도 수확과 동시에 현금을 바로 안겨주는 효자상품입니다.  


보졸레 누보 와인의 재료가 되는 가메 포도

   

보졸레 누보는 출하된 지 1~2개월 후 크리스마스, 새해에 주로 마시는데 그때 가장 맛있어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 지역에서 나는 가메(Gamay)라는 품종으로 만들어집니다. 가메는 껍질이 얇아 타닌이 적으며 산도가 높습니다. 질감이 가볍지만 과실 향이 상당히 강하며 압착하면 맑은 적색을 띠는 게 특징입니다. 맛이나 향이나 질감 등으로 볼 때 보졸레 누보는 색깔만 레드 와인이지 실제로는 화이트 와인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차갑게 마셔도 맛과 풍미가 더 살아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보졸레 누보는 그 해 수확을 끝내고 와인을 만들어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 새해에 주로 마십니다. 가끔 부활절 때도 마시기는 하지만 출하된 지 1~2개월에 가장 많이 소비됩니다. 또 그때가 가장 맛있습니다. 와인의 수명은 6개월 정도이고 9개월만 지나도 맛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혹시 집에 아직까지도 보졸레 누보가 남아있나요. 그렇다면 아끼지 말고 빨리 드시거나 아니면 친구나 가족들에게 선물해 점수를 따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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