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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웅의 tellmewine Feb 20. 2019

5.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와인 전쟁’

@ 와인, 알고 마실까요? - 1부 전쟁과 와인

1330년대 100년 전쟁 직전 프랑스. 분홍색이 Gascony(가스코뉴) 지방  ⓒWikipedia


백년전쟁은 영국이 지배하던 가스코뉴 지방을 차지하기 위한 ‘와인 전쟁’


1337년 가을 영국을 출발한 코그선이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장궁(긴 활)으로 무장한 보병과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백년전쟁의 서막입니다.


1328년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죽자 그의 사촌인 필리프 백작이 프랑스 왕위에 올라 필리프 6세가 됩니다. 당시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은 샤를 4세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이었으므로 자신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프랑스와의 갈등이 시작됐고 이것이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백년전쟁은 프랑스가 자신들의 영토에 있지만 영국이 소유하던 가스코뉴 지방의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한 ‘와인 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명품 와인. 왼쪽부터 샤토 마고, 샤토 라뚜르, 샤토 라피트 로췰드, 샤토 오브리옹, 샤토무통 로췰드.



프랑스 남서부에 자리 잡은 가스코뉴 지방은 유럽 최대의 와인 산지인 보르도가 속해 있는 곳으로 유럽 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와인 무역으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당시 프랑스 내 다른 지역을 합친 세금보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핵심인 가스코뉴 지방의 소유권이 영국에 있어 그곳에서 나오는 막대한 세금이 영국으로 다 빠져나가니 프랑스로서는 속이 편할리 없었습니다. 

     

영국이 ‘결혼’으로 얻은 최고급 보르도 와인 생산지


유독 보르도 와인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좋은 와인이 나니 세금 한 푼 물지 않고 저렴한 가격에 맘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영국 왕실도 해마다 최고급 보르도 와인을 진상받으니 더없이 좋았습니다.   

   

가스코뉴 지방은 백년전쟁이 일어나기 187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 소유는 아니었습니다. 1152년 프랑스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던 아키텐 공국의 공주이자 프랑스 왕인 루이 7세의 왕후인 엘리아노르가 루이 7세와 불화 끝에 결혼 15년 만에 이혼하면서 전쟁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엘리아노르는 이때 나이가 서른 살이었지만 이혼하면서 결혼 때 가져갔던 아키텐 공국의 땅을 모두 돌려받았으므로 유럽 귀족들로부터 최고의 신붓감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아노르가 선택한 새로운 배우자는 9살 연하의 노르망디 공국 공작이자 앙주의 백작인 쁠랑타네주(영국명 플랜태저닛)였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쁠랑타네주가 2년 뒤인 1154년 영국 왕에 올라 헨리 2세가 되면서 프랑스의 아키텐 지방이 영국 소유가 된 것이죠.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포도밭과 와인 제조 및 저장시설을 갖춘 '샤토(대저택)'의 모습  ⓒmichael clarke, via Wikipedia


프랑스는 프랑스령인데도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던 가스코뉴 지방의 소유권을 어떻게 가져올까 고민하다 북부의 플랑드르 지방을 무력으로 점령하며 영국을 자극합니다.


플랑드르는 지금의 벨기에로 오래전부터 모직물 산업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프랑스 왕실에 속한 봉국이었지만 영국에서 양모를 수입해 모직물을 만들다 보니 상업적으로 영국과 더 친했고 주민들도 자신들이 영국의 지배를 받기를 원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에 진 영국인의 보르도 와인 사랑이 코냑 탄생의 기원


영국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플랑드르가 봉쇄당했어도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꾹 참았습니다. 혹시나 프랑스가 가스코뉴 지방에 쳐들어 와 그 지역을 점령할까 염려했던 것이죠. 당시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인구나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 데다 스코틀랜드와 분쟁이 잦아 전쟁을 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1337년 필리프 6세가 가스코뉴 지역까지 강제로 몰수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를 침공함으로써 백년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두나라에서 5명의 왕이 대를 이어 벌인 이 전쟁은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이 연전연승하며 승리의 추가 기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1429년 프랑스의 성녀 잔다르크가 등장하면서 반전이 일어나며 1453년 프랑스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이를 통해 가스코뉴 지방 소유권도 300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가스코뉴 지방이 프랑스로 다시 돌아오면서 유럽의 와인산업도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영국인들의 보르도 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코냑 탄생의 계기가 됐습니다. 동시에 포르투갈 포트 와인의 탄생의 기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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