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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웅의 tellmewine Feb 22. 2019

6. 영국인의 와인 사랑과 포트와인, 그리고 꼬냑

@ 와인, 알고 마실까요? - 1부 전쟁과 와인

영국이 보르도 와인의 대체 생산지로 찾은 포르투갈의 포르투   ⓒ zh-min-nan, via wikipedia


백년전쟁에 진 영국, 보르드 와인 못 먹자 포르투갈로 눈 돌려 ‘포트 와인’ 탄생


“어? 이런…. 와인 맛이 왜 이래. 시큼 떨떨한 게 꼭 식초 같잖아.”   

  

프랑스가 와인 수출을 금지하면서 보르도 와인에 목말랐던 영국 귀족들이 와인을 입에 넣자마자 헛구역질을 하며 뱉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와인이 도착한다는 소식에 성찬까지 차려놓고 입맛을 다시고 있던 귀족들의 표정이 어땠을지 눈에 선하네요.     


‘포트 와인’에 대한 얘기입니다.    

  

프랑스와 길고 긴 백년전쟁을 벌인 끝에 패배한 영국은 더 이상 보르도 와인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프랑스가 얄미운 영국에 수출 금지령을 내렸겠지요. 

     

옛날부터 보르도 와인을 너무 사랑했던 영국인들은 더 이상 와인을 마실 수 없게 되자 프랑스를 대체할 곳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북부의 항구도시인 포르투(영국명 포트, 항구란 뜻의 port)를 보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너른 땅과 일조량, 강수량까지 보르도를 닮아 포도를 재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대서양을 접한 항구도시여서 입지가 최고라고 판단한 것이죠


그렇게 찾아낸 땅에서 정성껏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들어 영국으로 보냈는데 항해 거리가 너무 멀어 그만 배 안에서 와인이 모두 상해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밀폐력이 좋은 코르크를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고 유리병도 없었습니다. 그냥 오크통에 담아 촛농이나 올리브유 등을 위에 얹어 공기의 접촉을 막았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white(화이트), ruby(루비), tawny(황갈색), vintage(최고급) 포트 와인  ⓒ wikipedia 


포르투갈서 영국으로 운송 중 상하자 발효시켜 독하게 만든 와인, 바로 ‘포트 와인(port wine)’


“어떻게 하면 와인을 상하지 않고 운반할 수 있을까.”     


영국인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와인에 독한 브랜디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이면 상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영국인들은 포도를 으깨 와인을 발효시키는 도중에 77도짜리 브랜디를 쏟아부어 독한 와인을 만들게 됩니다. 브랜디를 일종의 방부제 역할로 사용하게 된 것이죠.

      

‘포트 와인’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영국인들의 집념이 탄생시킨 와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알코올 도수 20도 안팎의 와인을 주정강화 와인이라고 합니다. 이후 스페인에서도 ‘셰리’라고 불리는 주정강화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포트 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반 와인과 다르게 아주 단맛이 강합니다. 와인은 포도의 당분이 효모와 만나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기 전에 브랜디가 들어오면서 효모가 죽어 당분이 분해되지 않고 와인 속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는 지금도 당시와 똑같이 도루강 상류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이를 포르투 항구 근처로 가져와서 브랜디를 넣고 숙성시킵니다.  




코냑의 한 종류인 알마냑

    

보르도에 밀린 꼬냑과 알마냑 와인.. 안 팔려 쌓이자 증류해 만든 꼬냑이 명품 변신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은 포트 와인에 앞서 우리가 즐기는 향기로운 ‘꼬냑’의 탄생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백년전쟁이 시작되기 전 영국이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을 소유하고 있을 때 얘기입니다.

      

보르도 지역을 흐르며 대서양과 연결되는 지롱드강 근처에서는 질 좋은 포도가 많이 나왔습니다. 보르도의 와인도 정말 좋았지만 보르도에서 불과 100㎞ 위쪽에 위치한 꼬냑 지방과 아래쪽 알마냑 지방도 보르도 못지않은 와인 명산지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지인 보르도 지방의 와인을 관세 없이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데 굳이 관세까지 물어가며 꼬냑과 알마냑 지방의 와인을 먹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꼬냑은 알코올 도수 40~43도의 독주로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치면서 옅은 갈색이 됩니다.

      

보르도 못지않은 품질의 꼬냑과 알마냑 와인이 계속 재고로 쌓이게 됐습니다. 와인은 쌓이고 보관할 방법은 없어 고민하던 농부들이 와인을 증류해 보관하기로 했는데 이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와인을 증류한 새로운 술, ‘꼬냑’이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꼬냑 지방에서 증류한 술이 인기를 얻자 보르도의 아래쪽 지방인 알마냑에서도 와인을 증류하기 시작하면서 꼬냑이 확산됩니다.

      

꼬냑은 알코올 도수 40~43도 정도의 독주로 원래 증류 직후에는 색을 띠지 않지만 떡갈나무 오크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옅은 갈색을 띠게 됩니다. 

     

전쟁은 많은 사람에게 아픔을 주는 가장 잔인한 행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와 먹거리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코냑을 만들기 위한 와인 증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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