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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0. 2018

부엌에 사는 엄마

열세 살 무렵부터 혼자 저녁 식사를 챙겨 먹었다. 국 냄비에 불을 올리고 냉장고를 열면 주황색 불빛 아래 그날 먹을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빨갛게 무친 진미채나 멸치볶음, 시금치나 콩나물무침, 배추김치 혹은 깍두기 같은 밑반찬들이 가장 잘 보이는 칸에 나를 위해 있었다. 밥상 위에는 들기름 발라 구운 김 한 통, 그 옆에 반찬들을 꺼내 놓았다. 전기밥솥을 열면 따뜻한 김이 나는 소복한 흰쌀밥과 마주했다. 출근을 서두르면서도 주걱으로 밥을 저어놓고 다급하게 나갔을 엄마의 뒷모습이 겹쳤다. 밥알을 떠서 그릇에 담고 따끈하게 데워진 국까지 퍼 담으면 저녁 밥상이 완성되었다. 엄마가 집에 없어도 나는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랐다.      


나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 십 년 동안 식당 주방장으로 일할 정도로 요리 실력이 뛰어난 것도 한몫할 테지만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기에 안정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다. 한 예로 고등학생이 되어 급식을 먹기 전까지 엄마가 만든 김치 외에 다른 집이나 식당의 것을 먹지 않았다. 집집마다 맛의 차이가 큰 음식인데다가 젓갈 냄새나 고춧가루 양에 따라 느낌이 달라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또 엄마는 ‘너무 달다, 시금치 무침에 마늘 들어간 건 싫다, 텁텁한 고추장 맛은 별로’라는 나의 음식 댓글에 ‘죠댕이만 살아갖고!’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다음번 요리를 할 때 대부분 반영했다. 내 입맛에 맞춘 음식들이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삼십대 중반에도 엄마표 음식을 먹는다


2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는 엄마의 음식을 먹고 산다. 게다가 나의 남편과 우리의 딸 아이까지 두 입이 늘었다. 결혼 후 3년간 나가서 살다가 다시 집에 들어와 산 지 만 8년째다. 엄마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부엌에 와서 밥을 안치고 어제 설거지해둔 마른 그릇들을 제자리에 정리한다. 아침을 먹지 않는 나와 남편은 출근하고 엄마는 씻고 나와서 딸의 딸을 깨운다. 아이에게 밥을 먹인 후 남은 밥과 반찬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곁들어 아침을 해결한다. 밥 두 공기를 퍼서 따로 먹으라 해도 어차피 남으면 당신이 먹어야 하는데 그게 그거라면서 설거지거리 하나라도 줄이는 게 더 낫단다.      


온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엄마는 떨어진 식재료를 사러 시장에 다녀오고 요리하기 쉽게 손질한다. 파 한 단을 사오면 다듬고 씻어서 통 길이에 맞춰 잘라 넣어두는 것까지가 밑작업의 끝이다. 저녁에 먹을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용도별로 소분해서 냉동, 냉장실에 넣는다. 때로는 고기를 양념에 재두거나 생선을 굽기 편하게 깨끗이 씻어서 통에 담아 둔다. 멸치 볶음을 하거나 나물을 무쳐 밑반찬을 만든다. 전날 내가 사둔 유기농 채소가 있다면 잎채소는 씻어두고 브로콜리는 살짝 데쳐서 통에 담아 둔다. 하루의 절반을 엄마는 부엌에서 산다.      


찬바람이 불자 엄마는 배와 도라지를 달여 청을 만들었다. “얘, 이거 얼마나 내가 정성들여서 끓이고 저어서 만든 건지 아니? 이런 게 진짜배기야. 돈 주고도 못 산다니까. 하루 한 스푼씩 떠서 먹으면 감기도 안 걸려.” 며칠 동안 내가 먹는 걸 한 번도 목격하지 못하자 “얘! 하루 한 번씩 먹으라니까 왜 그렇게 안 먹어. 말도 되게 안 들어 진짜! 쓴맛이 나길 해, 맛이 이상하길 해. 너 때문에 꿀도 요만큼밖에 안 넣었다고!” 하며 호통을 친다. 나는 그제서야 티스푼으로 조금 떠서 한입 꿀꺽 삼킨다. “맛있네”     


나는 점점 엄마의 음식이 무겁다. 청양고추 넣은 칼칼한 된장찌개는 가끔 슬프고 돼지고기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는 종종 뻑뻑하다. 엄마가 된 여성을 부엌에 묶어두려는 ‘엄마표 음식’ 타령에 질색을 하면서 나는 매일 엄마의 노동이 빚어낸 음식들을 먹으려니 국물조차 목에 걸린다. 불 앞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서 있었을 엄마가 그려지는 배도라지청이 더욱 반갑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는 사람이 직접 키운 무농약 도라지를 못 본 척 못하고 굳이 사와서는 일거리를 만드는 엄마다. 도라지를 까느라 젓느라 팔 아프고 다리 부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판을 벌이는지 못마땅하다. 사실은 일주일의 절반은 아이의 저녁까지 엄마에게 부탁하는 현실과 엄마표 음식을 강조하는 광고에 분개하는 나의 말 사이 그 어디쯤에서 앞뒤 다른 나를 보기가 가장 불편하다.     



부엌에 사는 엄마를 보는 일


나는 끼니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우선일 뿐이고, 엄마는 먹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을 뿐, 나는 엄마에게 노동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합리화해봐도 더 찜찜하기만 하다. 나의 우선순위대로 살아도 제때에 밥 먹으며 불편함 없이 생활이 유지되는 건 엄마가 종종걸음 치며 부엌을 왔다갔다 한 덕택일지도 모르니까 내 말에 자신이 없다. 세 식구 여행경비는 일단 쓰고 생각하자면서도 엄마에게 드리는 돈이 매번 제자리인 걸 보면 용돈이라도 넉넉하게 드리고 싶다는 마음도 죄책감을 면하려는 수준인 것 같다. 딸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은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은 사서 손에 쥐어줘도 엄마가 먹고 싶다던 팥칼국수는 ‘다음 언젠가’로 미루다가 잊어버린다.           


얼마 전 제철 맞은 꼬막이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다음 날 먹을 수 있음에도 나는 망설였다. 해감하고 데쳐서 껍질을 하나하나 분리할 엄마의 수고로움이 먼저 올라와서다. 주말에 직접 해 먹든가 정 안 되면 꼬막무침 가게에 가서 포장해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냉장고 안에서 유리통에 한가득 담긴 말끔한 꼬막을 보았다. 식사 때도 아니었지만 보자마자 한 접시 가득 덜어서 엄마가 만든 양념간장에 콕콕 찍어 먹었다. 외출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엄마 꼬막 진짜 맛있어. 나 접시에 덜어서 이만큼을 먹었다니까” 하며 호들갑을 떨자 “잘했어, 잘했어. 먹고 싶을 때 뭐든 많이 먹어. 아프지만 마” 한다. ‘아프지만 마’라는 흔한 말에 목구멍이 울먹거렸다.     


엄마는 자꾸만 당신의 삶을 나에게 양보하려 한다. 엄마는 6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주사를 맞고 와서도 유산한 나를 위해 죽을 끓였고, 2년 전 당신과 똑같은 암 진단을 받은 내게는 잘 먹고 잘 쉬는 게 첫 번째 할 일이라면서 자신은 네 식구의 부엌살림을 당연하게 떠안았다. 찐 밤을 먹으면서도 “넌 이쁜 거 먹어” “왜” “너도 네 딸한테 제일 좋은 거 주잖아” 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먹을 밥은 알아서 해먹을 수 있고 박서방도 알아서 챙겨먹을 수 있으니 무리해서 밥하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는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냉동실에 있는 황태채를 꺼내 북엇국이라도 끓여놓고 가리라는 것을, 그리고 허겁지겁 끓인 뽀얀 국을 내가 먹게 되리라는 걸 말이다.






'엄마표 음식'에 거품 무는 나와 아닌 척 받아먹는 나


엄마가 동창들과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7시에 일어나 거실에 나왔는데도 엄마가 없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일찍 나선 모양이다. 식탁 위에는 차가버섯을 끓인 물 네 병과 딸 아이가 먹을 따뜻한 밥 한그릇이 놓여있다. 인덕션 위에는 오늘 저녁을 위한 김치찌개와 내일을 위한 얼큰한 오징어국이 한 냄비 놓였다. 김치냉장고에는 깨끗하게 씻긴 임연수 서너 토막과 김장 김치가 들었다. 엄마는 3박 4일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김장 김치통은 김치냉장고 앞쪽에 있으니 먹던 김치를 다 먹으면 여기서 꺼내 먹고, 뒤쪽 통에는 밤이 들었으니 딱 먹을 만큼만 쪄서 바로 먹어치우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버스 잘 탔다고 짤막하게 답하고는 “거기 냉장고에 있잖아. 스탠에 두부 있는 거 부쳐서 선우 먹이고 남으면 물도 갈아주고 해. 안 그럼 두부 쉰다”는 말을 긴급하게 전한다. 이제 여행 모드로 전환도 됐으련만 냉장고에 두고 온 두부 걱정이라니. 엄마표 음식 타령 좀 그만하라고 계속 외치고 싶은데 부엌을 등에 짊어진 채 여행길에 오른 엄마를 생각하니 자꾸만 그 말도 목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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