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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 Aug 02. 2018

엄마의 이름, LEE SOONHEE

영어를 배우지 못한 엄마 덕에 영어를 배운 딸

엄마의 동창회에서 환갑기념 베트남 여행을 추진 중이었을 때다. 엄마는 언제나 해외여행은 필요 없다고 했다. 좁은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도 싫고 체력도 좋지 않으니 단체로 우르르 일정 맞춰 돌아다니는 여행은 피곤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좋은 데 많으니까 국내 여행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동창회 단톡방에서 여행지로 결정된 베트남 다낭의 풍경 사진과 숙소 사진이 자꾸 올라오니 마음이 동했나 보다. “친구가 자꾸 사진을 올리니까 가보고 싶기도 하네” 하며 사진을 보여준다. “다녀와, 엄마. 나가보면 해외여행만의 재미도 느껴볼 수 있잖아. 좋으면 우리랑 또 가자” 


여권 사진을 찍고 온 엄마는 내일 구청에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나 혼자 가도 돼?”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한 걸 왜 묻나 싶어서 잠깐 어리둥절하고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같이 가자는 말인가 싶어 내일 시간이 되는지 일정을 따져보는데 “근데 왜 내 친구는 딸이랑 같이 갔지?”라고 엄마가 혼잣말을 했다. “그냥 쓰면 돼?”라고 엄마는 다시 물었다. 그제서야 여권 신청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영어 이름……” 엄마는 내 말을 듣자마자 말했다. “야, 네가 같이 가야겠다. 내가 어떻게 쓰냐” 




○○초등학교’, 엄마의 유일한 출신학교다. 그마저도 쉽지 않은 학창시절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아픈 외할머니를 대신해 밥을 하러 산 너머 집에 다녀와야 했다. 중학교는 꿈도 못 꾸었다면서 교복 입고 학교가는 친구들을 숨어서 바라보았다는 이야기도 어렴풋이 했었다. 외할아버지는 오남매 중 막내딸인 엄마를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며 일을 시켰다. 그때 일을 회상할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일도 일도 그렇게 많이 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여권신청서는 간단했다. 윗줄에 ‘LEE’, 아랫줄에 ‘SOONHEE’라고 적고, 비상연락망란에는 내 번호를 적었다. 엄마에게 다 작성한 여권신청서를 건넸다. 엄마는 마치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신비로운 풍경을 목격한 사람처럼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LEE’를 가리키며 “이게 내 이름이야?”라고 물었다. 나는 ‘LEE’를 가리키며 “이건, 이”, ‘SOONHEE’를 가리키며 “이건, 순희”라고 엄마의 이름을 엄마에게 읽어주었다.  


구청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성시경의 ‘잇츠 비기닝 투 룩 어 랏 라이크 크리스마스(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라는 캐롤을 틀어놓고 신나게 따라하며 운전을 했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든 반짝이는 도시를 상상하며 일찌감치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만끽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영어를 배우지 못한 탓에 딸과 동행해야만 했던 엄마 옆에서 언어의 자유로움을 누린 게 미안했다. 나는 좋아하는 노래의 영어 가사를 찾아서 따라 부를 수 있고 모르는 영어 단어나 문장은 사전이나 번역기를 이용해 이해할 수 있다. 영어를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어를 배우지 못한 엄마가 마련해준 기회 덕분이었다. 엄마는 혼자 벌어 나와 두 살 터울인 오빠를 키웠다. 내가 열한 살 때, 아빠는 전세금을 빼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월세 한번 가져오지 않고 집을 나갔으니 월세와 생활비는 오로지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하루 열두 시간씩, 이주에 한번씩만 쉬며 십년 동안 식당일을 했다.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상업고등학교와 인문계고등학교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 인문계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입학의 꿈을 꾸고 싶었다. 내가 엄마의 고된 노동을 외면하면서까지 인문계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예상과 달리 선뜻 가고 싶은 학교에 가라고 했다. 반드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잘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지도 않았다.  


매달 학원에 다니는 것은 어려웠지만 엄마는 내가 공부를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다. 옷은 다음에 사주겠다고 미뤄도 책은 말하는 즉시 돈을 내주었다. 불어를 좋아했던 내가 여름방학 동안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자 종로에 있는 어학원의 두 달치 학원비도 마련해주었다. 매달 독서실비와 밥값은 달라는 대로 주었다. 처음으로 학비를 못 대주겠다고 한 건 이년제 대학을 졸업할 즈음, 편입 의사를 비췄을 때다. 엄마는 더 이상은 힘들다고 했고 정 가고 싶으면 벌어서 가라고 했다. 혼자 벌어 두 남매의 이년제 대학 학비까지 댄 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사력을 다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엄마의 경제적 한계가 미웠다.  




지금 역시 나의 배움은 엄마에게 빚져 있다. 육년 전 월급을 받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끝낸 엄마에게 나와 남편 그리고 딸 아이와 같이 산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가사 노동의 대부분을 떠넘겼다. 게다가 내가 해야 할 여섯 살 딸 아이의 유치원 등원까지 엄마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얻은 시간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어 공부도 한다. 여행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위해 딸을 부탁하면 “또? 언제?” 하며 뾰족해지지만, 강의 들으러 간다, 도서관에 간다, 서점에 간다 하면 흔쾌히 “응, 다녀와” 한다. 어떤 때는 친구와의 약속도 미루며 시간을 내주기에 부탁할 때는 더 공손해진다. 꼭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일인가 한번 더 고민하기도 한다.  


엄마가 영어를 통해 낯선 나라 베트남과 또 다른 세상과도 다정하게 연결되어 엄마가 느끼는 즐거움의 폭이 넓어졌으면 했다. 노동으로 점철된 엄마의 삶에 배움이라는 기쁨의 영역이 알파벳을 발판 삼아 점점 확장되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 전에 꼭 필요한 단어는 알려드리려고 산 알파벳 책은 딸 아이의 스케치북으로 쓰였고, 하루 이틀 그렇게 흘려보내다가 끝내 아무것도 가르쳐드리지 못했다. ‘영어를 뭘 배우냐’ 했던 엄마는 다행히 영어와 아무 상관없이 신나게 잘 다녀오셨다. 가방에서 초콜릿과 과자를 꺼내 손녀에게 안겨주시고는 핸드폰 속 다낭 사진을 넘기며 닷새간의 베트남 여행기를 들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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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기록소 소장. ‘넘(어진) 데(서) 또 넘(어지지 말자)’ 태도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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