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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Aug 29. 2021

마음속의 정원, <월든>을 그리다

정원에 대한 희망사항





  

지금도 내게는 이름다운 정원에 대한 소박한 꿈이 살아있다. 지금까지 가진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꼭 가지고 싶은 정원에 대한 희망은 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오래전 유럽 여행에서 만난 웅장하고 아름다운 공원에 대한 환상과 갈망이 지금도 내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에는 어디서나 그의 품격에 어울리는 공원이 있었다. 그리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 파리의‘베르사유 정원’과 ‘마로니에 공원’ 등에서 만난 나무와 숲, 커다란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에 경탄을 금치 못한 기억들이 있다.      


하이드 파크




정원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가 헤르만 헤세다. 헤세는 쉰넷의 나이에 베를린대학 시절부터 열렬한 '헤세 팔로워'였던 서른하나의 예술사가 니논 돌빈과 결혼 후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에 있는 친구의 저택에 살면서 둘만의 추억을 쌓을 새로운 공간으로 집 앞에 정원을 꾸몄고 손수 꽃과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면 꽃이 피고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정원에서 자연을 벗 삼아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동방 순례' 같은 작품을 썼다고 한다.     


정원을 가꾸면서 창조의 기쁨과 우월감을 느낀다. 한 뼘 땅을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가꾸고,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과 색과 향기를 창조해 낼 수 있다. 작은 화단, 헐벗은 한 뼘 땅을 갖가지 색채가 넘쳐흐르게 바꾸어 놓고, 눈이 위로받는 천국의 정원을 만든다.     

- 헤르만 헤세의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중에서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야외 활동시간보다 집에서 소일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몇 달 전에 구입해 놓고 읽지 못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대표작 <월든>'을 한 달여 만에 겨우 다 읽었다. 작가 소로우는 하버드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일찍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임을 깨닫고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로 숲을 통해 자연을 예찬하며 문명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통해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그는 숲 속에서 도시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시시각각 변하는 꽃들의 표정과 나무의 빛깔, 숲 속에 사는 온갖 동식물의 모습을 생생한 필치로 그리며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자연을 통해 희망이 살아있음을 몸소 체험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에게는 숲은 정원이었으며 숲에서의 고독한 생활을 통해 자연에 대한 경탄과 인내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자유로운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 나서는 그의 용기에 경의를 보내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긴 경이로운 문장에서 큰 감명과 함께 정신적인 위안을 받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월든




지금까지 나는 마당이 넓은 전원주택에서 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다. 결혼하면서는 전셋집을 거쳐 작은 아파트로 이사할 때까지 정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힘겹게 조금 큰 아파트로 옮겼지만, 정원에 대한 갈망을 충족하기에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정원에 대한 애착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꾸미고 온 마음을 다해 정성껏 꽃과 나무를 가꾸었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키우는 아기자기한 몇몇 식물로는 나의 욕망을 채울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내겐 정원에 대한 꿈이 살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와 꽃을 가꾸며 차 한잔 나누러 들리는 이웃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정원 텃밭에서 딴 과일을 원목 벤치에 앉아 함께 먹으며 행복한 일상을 즐기고 싶다. 그것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에 마음속에 언제나 못다 한 숙제처럼 남아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마당 한평 없이 어떻게 정원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부터 인가 정원에 대한 열망과 꿈을 실현하는 엉뚱한 방법으로 나는 아름다운 정원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직접 조경하고 가꾸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도심의 공원을 부지런히 찾아 나서는 것이 스스로 정원을 가꾸는 기쁨 못지않은 즐거움과 행복을 줄 것이라는 희망이 불쑥 마음속에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좋다. 나는 근교에 있는 공원을 찾아 마음속의 <월든>을 상상하며 혼자서 즐기는 휴식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내가 찾은 공원은 언제나 신비함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으며, 삶에 지친 마음에 여유와 행복감을 일깨워 주었다. 달빛을 품은 호수와 산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월광수변공원에서 밤이면 화려한 율동미를 자랑하는 음악분수 쇼와 도원지의 맑고 푸른 물빛에 하늘대는 산빛을 바라보며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향토식물자원 보전 및 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기지로 제공하고 있는 수목원을 철 따라 찾아가 사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옥연지 송해 공원에서 호수의 물빛과 어우러진 산빛의 찬란함을 감상하고,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서 다듬어진 도심의 숲길을 산책하며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보기도 했다. 소로우처럼 대자연의 숲 속에 오두막을 지을 수는 없어도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내 마음속의 정원에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꽃과 나무들로 채워 넣어 숲의 향기가 잠들지 않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꿈꿀 것이다.   


월광수변공원


오늘도 베란다 창가에 정돈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작은 나무를 탐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죽은 줄만 알았던 작은 가지에서 움트는 새싹의 신비로움과 시간이 오면 매번 피워내는 앙증맞은 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그들이 보내는 시간의 기다림과 놓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순수한 마음으로 읽는다. 식물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살길을 찾아내는 유연하고 강인한 진화를 거듭하며 살아남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나 또한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이지 않는 작은 진화라도 멈추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가까운 도심의 공원을 찾아 그 속에서 자라는 나무와 꽃과 숲에서, 가끔은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 파란 하늘이 내린 물빛을 감상하며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난 공원이 내가 소유한 공원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속의 <월든>을 가꾸며 조용히 밀려오는 삶의 여유와 휴식을 즐기며 오늘도 행복한 일상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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