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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Nov 21. 2021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걷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만난 김굉석의 삶과 노래 





 

가을이 나뭇잎 속에 꽃을 피우고 떨어지는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며 시선을 멈추게 하는 만추의 어느 날 오후, 충만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나도 모르게 무작정 길을 나섰다. 계절 때문인지 모르는 혼자만의 낭만을 느끼며 오랫동안 잊었던 추억 하나 마음에 넣고 지하철을 탔다.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내가 정하지만, 정처 없는 여행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오래전부터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그곳, 김광석을 그리워하면서 그린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지하철 안, 코로나19로 표시된 띄어 앉기를 지키며 조용히 좌석에 앉아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름대로 추측을 엮어내며 내 삶의 시간에 생각과 마주한다. 경대병원 역에서 하차하여 방천시장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곳곳에 그의 거리를 알리는 홍보물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가로수에서 떨어져 보도 위에 깔린 낙엽을 밟으며 몇 분이나 걸었나 싶었는데 몸은 벌써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입구에 와 있었다. 입구에서는 기타를 치며 ‘사랑했지만’을 부르는 김광석의 브론즈 조형물이 반겨 주듯 앉아 있다.  

    


골목길을 들어서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노래가 잔잔한 바람을 타고 귓가에 들려왔다. 골목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그의 명곡들이 한 곡씩 흘러나오기 때문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노래 한 곡을 온전히 듣는 것이 가능했다.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울음을 참듯이 떨리는 음색과 호소력 짙은 감정이 깔린 목소리는 벽면에 그려진 그의 비시시 웃는 웃음에 가린 채 살짝 보이는 외로움에 더 어울리는 듯했다.      


김광석길은 비단 김광석을 알고 그를 추모하는 이들만이 찾는 건 아니었다. 그가 ‘서른 즈음에’를 처음 불렀던 그때쯤 태어났을 법한 청춘들을 비롯하여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나처럼 혼자서 찾아온 사람들, 어린 학생들까지도 이곳을 찾아오는 것 같다. 어쩌면 김광석길은 방천시장 근처에서 태어난 김광석을 기리며 그의 생전의 모습과 그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벽화와 작품을 담고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길을 걸으며 시간이 멈춘 그곳에서 그를 만나고 그를 추억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정겨운 명소가 아닐까 한다.      



김광석길에는 청춘의 사랑이 넘쳐나는 듯 사랑의 흔적은 벽을 따라 여기저기에 있었다. 사랑의 자물쇠도 걸어놓고 그들만의 낙서로도 남겨놓았다.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이지만 애써 접어야 하는 그 사랑처럼, 비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를 알게 되더라도 그들의 사랑은 아마도 이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만 같다.      


골목길 벽면에는 그의 얼굴이 파노라마로 그려져 있다. 기타를 든 김광석, 오토바이를 탄 김광석이 흩날리는 꽃비 아래 특유의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다. 활짝 웃는 웃음을 거부하는 듯한 그의 표정은 언제나 그늘진 채 서른을 갓 넘기고 세상과 이별했듯이 대표곡 ‘서른 즈음에’를 통해 암시나 한 듯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는 떠났다. 그의 삶이 그래서 그토록 아프고 슬픈 사연들을 진주처럼 품고 있은 것은 아니었는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남은 이들은 아쉬움을 삼키며 그의 발자취를 아련히 기억할 따름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25년이지만 김광석이라는 별은 여전히 그 시절의 빛나던 모습으로 시간을 멈춘 채 우리를 비추고 있다.  

  


김광석을 추모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가객'이나 ‘노래하는 철학자’로 불리듯이 그의 노랫말 속엔 우리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마도 그것이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를 추억하며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유 없이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그랬구나', '다 잘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같은 말로라도 위로받으며 소주 한잔 나누고 싶은 날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삶에 외롭고 지쳐 누구와 얘기하고 싶을 때, 언제 어느 때고 찾아가도 빙그레 웃으며 내 얘기를 들어줄 것만 같은 편안한 사람.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진 김광석이라는 가수는 그런 존재 아닐까.     


슬픔은 슬픔으로 치유한다고 누가 말했나? 바로 김광석의 노래는 슬픔의 미학이다. 가끔은 인생에 슬픔이 가득할 때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은, 그의 노래가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대표작 <서른 즈음에>가 전해주는 애잔한 노랫말 속에 그가 선택한 서른 고개에서 만난 청춘, 사랑, 외로움, 이별을 함께 담은 그의 못다 한 삶이 더욱 슬퍼지는 것은 오늘따라 이 계절에 떨어지는 낙엽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날은 <리버보이>의 저자 '팀 보울러'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만큼은 세상을 향해 가장 환한 웃음을 보여주고 싶다.     


"인생이란,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용기를 배우는 것"      





서른 즈음에 / 김광석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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