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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Nov 06. 2021

소크라테스의 그노티 세아우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쉬운 말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말이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진 글귀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너 자신의 알라’라는 말이 고대 그리스의 격언이었다는 사실을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의 익스프레스>를 읽으면서 궁금해서 찾은 자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흔히 분수도 모르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경구처럼 말하는 것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 어원과 깊은 의미를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너 자신을 알라 ‘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바로 자신의 무지함을 전제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가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는 이 말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 쉽게 표현하면 나 본래의 모습을 알라는 뜻인데,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도 아니고, 남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도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말은? 그것은 나의 진정한 실상, 나의 거짓 없는 본래의 자기의 모습, 나의 나다운 모습을 바로 아는 것이 아닐까?     


너 자신을 알라 daum image


소크라테스가 즐겨 사용했던 명언인 이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진의를 파악해 보려고 노력했거나 이 말의 정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본위로 살아왔기 때문에 오직 나의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만을 바라보고 비판하여 왔을 뿐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도 관대하게 평가하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정확히 자기를 안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사람마다 타고난 지혜가 다르기 때문인데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보니 행동하고 대처하는 방법 또한 각자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을 묻지 않으면, 우린 자꾸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 질문의 본질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 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을 해야 하며, 그 질문을 한 다음에는 그 대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자신을 향해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모색하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이 꿈꾸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살면서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찾는 것이 행복일까? 그렇다면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이 자기만족이나 기쁨은 아닐까? 행복이란 우리가 추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이나 슬픔, 사랑, 질투, 우울, 분노, 후회, 희망, 명예, 수치심 같은 모든 감정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많은 감정들을 지금 다 움켜쥐고 있는가? 아니면 어디로 다 사라지고 없는가? 그 정답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모두 다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한순간의 일들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하찮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명제를 가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한다. 상대는 화가 나고 짜증스러우며, 때로는 당혹스럽기까지 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 사람들은 정신이 마비되는 듯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누구라도 그와 얽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을 안다. 대화 중에도 자기 말이 무조건 맞는 말이니 무지한 너는 토를 달지 말며 입 닥치라며 우기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막무가내식의 자유로운 언행을 통해 인간 본연의 자유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아테네 거리의 잔소리꾼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기이한 외모와 독특한 성격으로 그를 다른 행성 같은 곳에서 온 사람처럼 여겼으며, 오로지 대화를 위해 나타난 사람 같았다고 했다. 그는 철학자인가? 아닌가? 그가 만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지혜를 통해 깨달음을 주기 위해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그들의 삶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성가신 질문을 반복함으로써 듣는 사람들은 그가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하였지만, 정작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집요할 정도로 귀찮게 한 데에는 분명 좋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지만 그의 내면을 모르면서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와 문답 daum image


기분이 어떤가? 우울합니다. 우울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침울하다는 것입니다. 침울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그래도 낫네. 자네는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은 소크라테스와 트라쉬 마코스의 대화의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짧은 문답을 통해서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말꼬리를 잡고 이어지는 질문에 끝까지 답변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던져진 문제의 답을 찾으려고 끙끙대다 보면 스스로 귀찮고 짜증 나는 감정에 밀려 결국 모른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아마도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무지의 답을 얻어내기 위해 질문을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들은 대답하기 힘든 것들이 더 많다. ‘나는 이 일을 정말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진실로 꿈꾸는 삶은 무엇인가? 같은 원초적인 질문들이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 우주과학에 관한 질문 등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지?”와 같은 질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을’‘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지?’와 같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였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까지도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고 하니 그만의 철학적 신념에 감탄할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한마디로 ‘대화와 문답’이었다. 그리고 모든 철학은 궁금해하는 데서 시작되며, 그것은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 철학의 목적이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라며, 삶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명쾌한 답은 주지 않는다. 어쩌면 당신 스스로 무지를 자각하고 지혜와 진리를 깨달아 인생을 바르고 아름답고 보람 있게 살아가라는 것을 교화하고 다닌 것이리라. 인생을 살면서 누구와 만나도,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말로서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을 직감하고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기도 하니까.      


지난해 추석 명절이었던가? 가수 나훈아는 소크라테스에게 '테스 형'이라 부르며 자신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흐르는 시간과 세월에 대한 고민을 물었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라고 물어봤더니 테스 형도 모르는지 아무 말이 없다고 했다. 다만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냐며 불확실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내용의 노랫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누구며, 내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깊어가는 가을밤 그윽한 가로등 아래 비치는 울긋불긋한 나뭇잎을 눈 속에 담아내며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명제인 '너 자신을 알라'를 새삼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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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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