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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Oct 18. 2021

금호강변로를 걸어 디아크에 서다

디아크에서 색채의 마법에 빨려 들다






   

가을이 우리 곁에 살포시 다가오는 것 같은 어느 날 오후 조금 늦은 시간, 산책을 겸해서 세천교를 출발해 짧지 않은 거리에 있는 강정보 디아크까지 걸어갈 욕심으로 걷기에 나섰다. 자연과 더불어 혼자 걷는 것은 내 삶이 이동하는 소박한 즐거움과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자유를 재발견할 수 있기에. 세천교 아래에 서서 금호강 변을 바라보니 확 트인 길 따라 서있는 나무와 이름 모를 풀숲이 궁산 줄기와 맞닿은 금호강과 한데 아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강변로 옆에는 외곽 순환도로가 연말 개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금호강변로 옆 강둑에는 아직 만개하지 못한 갈대가 환한 모습을 뽐내며 군데군데 피어있다. 코로나 시대 때문인지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지나가는 것 같다. 아마도 금호강변로의 잘 정비된 라이딩 코스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산과 강의 시원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달리기에 부담이 가지 않는 코스이기 때문이리라. 걷다 보니 어느새 가슴이 확 트여오는 상쾌함에,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움을 느낀다. 왼쪽에 보이는 궁산과 맞닿아 있는 금호강은 물빛조차 산색과 닮아있는 듯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젠 자주 보는 풍광에 제법 익숙해져 자주 만나는 친구처럼 우정마저 느낀다. 아직은 설익은 가을이라 그런지 산색이 짙은 녹색을 품어내고 있다. 지나가는 곳곳에 설치된 파크골프장엔 골프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보다 경제적인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체력적인 부담도 적어 어르신들에게 최적의 스포츠인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삼삼오오 짝지어 골프를 즐기는 동호인들의 모습에서 삶의 즐거움을 엿본다.


궁산과 금호강 전경


물빛을 따라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듯한 나무와 강변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갈대를 본다. 이제는 내가 자연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산빛과 물빛, 꽃과 나무의 향기가 먼저 내 몸속으로 들어와 앉는 것 같다. 손목에 찬 애플 워치를 힐끔 쳐다보며 걸은 거리와 시간, 소모된 칼로리를 체크한다. 2년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어 그 이후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주 5일은 매일 저녁 헬스장에서 근력운동과 러닝머신으로 예전의 건강한 몸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수시로 걸으면서 심폐기능을 단련하고 하체에 근력을 보태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한 발 더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은 당연한 삶의 이치지만 죽음을 행복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일은 탄생의 기쁨보다 더 중요한 기쁨 아니겠냐는 생각이다. 생각의 고리를 이어가며 자연과 더불어 침묵의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강창교의 두꺼운 교각이 버티고 서 있다. 햇살은 조금씩 숨을 죽이고 파크골프를 즐기는 동호인들도 하나둘씩 돌아갈 채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강창교를 지나면 산책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왼쪽 제방에 피어있는 갈대숲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재잘대고, 오른쪽 방향에 일자형으로 뻗어 있는 대나무 숲길은 마치 어둠처럼 짙은 녹색의 침묵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대나무 숲길 입구에는 ‘죽곡 댓잎 소리길’이라고 대나무로 만든 듯한 문과 붓글씨로 쓰인 간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팻말을 눈으로 보는데 소리길로 흐르던 바람 소리가 귀를 흔들며 지나간다. 소리 길에 들어서면 갈림길이 없는 외길이라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아무런 생각 없이 걷기만 해도 즐겁다. 키가 높은 대나무 숲은 산책로 양쪽에서 서로 맞물려 하늘을 덮고 있어 아직 낮 시간인데도 어둠이 드리울 정도로 그늘이 짙다. 바람이 불 때면 머리 위로 훌쩍 자라 있는 댓잎들이 흔들리며 내는 ‘사그락’ 소리가 발걸음에 맞춰내는 음악처럼 들리며, 짙은 어둠 속에 갇힌 듯 시간조차 잊히는 것만 같다. 대나무 숲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면 순환도로가 끝나는 고수부지에서 우측으로 난 오르막길에 올라서니 디아크로 가는 길과 이어져 있다. 걸어서 디아크까지 간 일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새로운 길에서 만나는 풍경 하나하나가 다 행복한 기분을 안겨주는 것만 같다.     


죽곡 댓잎 소리길


오르막을 올라 외곽 순환도로가 지나는 금호대교 아래를 거쳐 직선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멀리 디아크의 형상과 Kwater 낙동강보 관리단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정보는 4대 강 사업으로 금호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눈앞에 전개되는 낙동강을 바라보면 확 튄 정경과 함께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너무 좋다. 강정고령보 문화관과 전망대가 있는 낙동강보 관리단 건물을 올라가 본다. 코로나로 전망대와 문화관은 폐쇄되었지만, 옥상에서 바라보니 강정고령보와 우륵교가 한눈에 보인다. 광장으로 내려서자 디아크의 웅장하고도 멋진 모습이 요람처럼 포근한 곡선의 미를 연출하며 앉아있다. 4대 강 사업을 통해 조성된 조형물로 세계적인 건축설계자인 하니 라시드(Hani Rashid)가 강과 물, 자연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는 문화관의 디자인은 하늘과 맞닿아 멀리서도 잘 보인다. 특히 디아크는 강 밖으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형상화해 지어졌으며, 독특한 외관 덕분에 2014년 한국 건축문화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물과 빛이 조화를 이룬 자연환경으로 사진작가들의 촬영 명소로도 잘 알려졌지만, 지난 2015년 3월 SBS 인기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 나오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장소이기도 하다. 디아크(The ARC) 문화관은 강과 사람의 공감이라는 주제를 담아 지어진 전시 공간으로, 문화관 안으로 들어가면 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볼 수 있으며 미지의 탐험을 연상케 하는 내부 인테리어는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디아크의 7가지 색상의 조명 불빛


해가 넘어가는 일몰시간에 맞추어 디아크에 조명이 들어왔다. 마치 현란한 색채의 마술을 연출하듯 디아크를 둘러싼 아름다운 조명 불빛이 시시각각 변하며 표현하는 색채의 유희가 축제처럼 현기증을 일으킨다. 7가지 무지개의 색채 조명이 한 번씩 디아크에 비칠 때마다 황홀경이 펼쳐지는 것 같은 아름다움 속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디아크는 무대 위 배우처럼 제멋을 한껏 펼치면서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신비로움과 우아한 품격의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강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예술품인 디아크 앞에 서서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강정보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디아크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금호강변 때문은 아닌지? 디아크가 품어내는 예술의 향기가 있어 금호강변이 더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쓸데없는 질문과 답변을 혼자 음미하며 어둠이 내린 강변로를 따라 행복한 기분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는다는 것은 멈추어있는 나에게 자유를 즐기게 하는 또 다른 휴식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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