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은 또 다른 자존심이다
누구나 특정 음식에 관한 편견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육류에 대해선 별다른 거부감 없이 대체로 좋아하지만, 비린내 나는 생선이나 해산물은 싫어하는 편이다. 단순히 입맛에 안 맞는 것도 있겠지만 비린 냄새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육류를 좋아하여,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등을 즐겨 먹는 편이다. 이런 식성은 타고난 체질도 있겠지만 살면서 마주하는 환경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기도 하고 편식으로 고착되기도 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음식과 관련하여 겪은 어떤 특별한 사고가 있었다면 아마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식성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오래된 얘기지만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지금처럼 학교급식이 아니라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먹었다. 그 당시 엄마는 아침마다 도시락 반찬 만드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큰 일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도시락을 싸다 보면 무슨 반찬을 해야 할지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학교 교정에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날. 오전 수업이 끝나고 엄마가 싸준 색이 바랜 알루미늄 도시락을 책상 위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순간 쌀과 보리가 섞인 혼합 밥 위에 양념장을 뒤집어쓴 새우가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는 순간 입맛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져 갔다. 새우 조림에서 흘러나온 국물이 도시락을 타고 밖으로 흘러내렸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던 손엔 새우 국물 자국이 번져 그림을 그렸고, 풍겨 나온 냄새는 교실 안을 회오리치며 진동했다. 친구들은 손사래를 치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들고 싶은 창피함으로 얼굴조차 들지 못한 채 허급지급 도시락 뚜껑을 닫고 신문지로 말았다.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온갖 수모를 겪으며 자존심이 바닥을 친 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심통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정성껏 도시락을 사준 엄마의 마음도 무시한 채 짜증을 냈다.
“엄마, 오늘 새우 조림 때문에 밥도 먹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창피만 당했어. 새우의 ‘새’ 자도 보기 싫으니 앞으로 도시락 반찬으로 새우는 절대 하지 마”
엄마는 서운한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날 이후 새우에 대한 좋은 않은 기억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 때문인진 몰라도 새우는 물론이고 해산물과 생선에 대해선 자연스레 식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 겪은 특정 음식에 대한 쇼크가 아직도 유효한가 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는 식성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릴 적부터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자라 온 가족들은 식성이 비슷하지만,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식성이 제각각이다. 직장인들은 팀원이나 부서원들과 함께 식사할 경우, 누군가 제안한 메뉴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따로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유별나게 보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요즘은 직장 상사와 둘만이 식사를 하는 경우라도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식성에 맞는 음식을 선택하지만, 옛날에는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보다는 상사가 좋아하는 음식에 초점을 맞춰 내키지 않아도 상사가 좋아하는 메뉴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 식사 시간이 곤혹스러움을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왠지 밥을 먹고 나도 속이 거북하고 찝찝한 기분이 지속되어 오후 일과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속담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만큼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 아닐까?
인간 생활의 기본적 요소 중 하나인 먹는 것의 소중함이야 누구나 다 알겠지만 ‘음식은 비슷한 입맛을 가진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평소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직원들은 ‘오늘은 뭘 먹지?’하면서 상대방 얼굴을 쳐다보며 메뉴 선택에 협조를 구한다. 한 끼 밥 먹는 게 참으로 어렵다. 아예 메뉴를 정해놓고 먹자는 의견도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엔 문제가 있다. 매일 사람이 바뀌고 별난 메뉴를 원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요즘 경쟁적으로 방영하는 방송 매체의 다양한 ‘먹 방 프로그램’을 보면 확실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메뉴가 탄생한다. 요즘은 집에서도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다. 배달 음식의 장점은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켜 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가족 간에도 각자의 기호나 미각에 맞는 메뉴를 선택하여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자기 식성에 맞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자 행복이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독립된 기호와 미각에 의해 음식의 맛을 판단한다. 더 매운맛을 찾아 맛집 기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친 짓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나라마다 음식의 고유한 특색이 있고, 지역마다 음식의 맛이 다른 것처럼. 집에서 먹는 음식과 밖에서 먹는 음식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집밥이 최고라고 하지만 외식은 언제나 즐겁다. 분위기 있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에 느끼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것도 일종의 음식에 대한 기막힌 편견은 아닌지. 행여 어디서 무엇을 먹느냐의 차이가 삶의 이정표도 바꿔놓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존 메 퀘이드는 저서 <미각의 비밀>에서 ‘미각이 시각이나 청각 혹은 심지어 섹스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삶을 즐겁게 하는 독특한 미각을 지닌 음식에 대한 로망은,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와 이 맛 대박이다. 죽이네!”
식성에 맞는 음식을 만나 맛의 퀄리티에 반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