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성을 찾아 나선 사계
자연을 산책하는 것은 언제나 가슴 벅차다. 사계의 고유한 멋을 눈 속에 담아두는 것 또한 황홀하다. 더구나 내가 서있는 곳에서 올려다보는 하늘, 낯선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잔, 철 따라 피어나는 온갖 꽃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삶의 위안이자 행복이다. 나는 오늘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내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모든 것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타인을 흉내 내지 않는 삶 속에서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날 때, 나의 사계절은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봄날 저녁, 창가에 흐르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조용히 책을 덮고 낯익은 감상에 빠져본다. 창 너머 피어나는 물안개가 그리움처럼 다가온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레드 와인 잔을 들고 풍겨오는 매혹적인 향기에 마음을 빼앗기며 지난 시간의 그리움을 흔들어 본다. 와인은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감성을 지닌다고 하지 않는가? 풍부한 루비 레드 빛이 매혹적인 ‘35 사우스 레세르바 메를로’의 향기를 즐긴다. 잘 익은 자두 향과 토스티 한 바닐라 및 은은하게 느껴지는 스파이시함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어쩌면 봄의 감정을 마시는 것만 같은 풍미가 느껴진다.
시인 이장희는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고양이의 털에 어리 우는 봄의 향기’와 ‘고양이의 눈에 흐르는 미친 불길’, ‘고양이의 입술에 떠도는 봄 졸음’과 ‘고양이의 수염에 뛰노는 푸른 생기’를 서로 교차시키며 봄과 고양이를 효과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
그의 시에서 느끼는 것처럼, 손끝으로 느껴지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은 봄바람같이 포근하며 따스하다. 우리는 봄을 맞이하며 제각각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 다르겠지만, 이 부드러움을 통해 봄의 향기를 맡는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봄볕 따스한 뜨락에 다소곳이 누워 잠자는 고양이의 모습을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은 봄만이 가능한 선물 아닐까?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과 열대야, 번번이 기대를 저버리는 일기예보. 여름이 싫은 이유야 많겠지만 후덥지근한 공기며, 짙게 섞인 풀냄새와 벌레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고통, 때로는 더위에 녹아 버릴 것만 같은 고통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라고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를 대고 싶다.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여름은 정말 붙들고 싶지 않은 계절이지만, 그래도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여름 바다와 자유로움, 에너지 넘치는 푸르름, 밤새 울려 퍼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있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 본다.
지난여름의 어느 날인가,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보호수인 팽나무 아래서 잠시 휴식을 즐긴 적이 있다. 요란한 매미 소리조차도 자장가처럼 들리는 자연 속의 작은 휴식공간에 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부채 하나로 더위를 식혔다. 어디선가 불러오는 산들바람이 살포시 이마를 스쳐 가는 동안 나른해져 오는 기운을 이기지 못해 벤치에서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들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나는 짧은 오수(午睡)의 마법에 걸려 꿈속에서 한낮의 열기를 날리며 바다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검푸른 빛깔로 넘실대며 다가온다. 벌써 백사장엔 피서 인파로 시껄벅쩍 하다. 유난히 눈에 익은 한 여인의 뒷모습을 본다. 눈부신 자태를 뜨거운 햇살에 드러낸 채 바닷물로 뛰어드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왠지 낯이 익다. 해변에서 바라보는 비키니 여인의 잘 빠진 몸매에선 햇살보다 뜨거운 사랑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하다. 나는 멍하니 낯선 바다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생각 속에 빠져든다. 그때였다. 물속에서 더위를 박차고 나온 여인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한다. 햇살에 눈이 부셔 작은 눈을 뜨고 바라본 그 여인은 나의 그였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것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피서를 즐긴 달콤한 나의 꿈이었다. 그렇게 나의 오수(午睡)는 여름날의 일장춘몽으로 끝난 여행이자 휴식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머문다. 산비탈에 만든 작은 텃밭엔 온갖 푸성귀가 저마다의 몸짓을 뽐내며 익어가는 가을이다. 하늘 가를 맴도는 고추잠자리는 때 지어 가을의 찬가를 몸짓으로 부르는가 보다.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성화같이 들려온다. 밤새워 울어대는 소리는 누군가를 찾는 듯 먹먹해지는 가슴 한편에 남는 그리움인가. 스산한 바람이 어느새 넘실거리는 가슴을 가득 채워온다. 내가 만든 감미로운 고독 속에서 건져내는 노래처럼 가을은 어쩐지 슬프다. 그리고 외롭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며 주석을 달지 않더라도 하늘은 더없이 높고 청명하다. 가을엔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진다. 혼자서라도 작은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나서는 그 모습이 낭만처럼 다가온다. 가을은 수채화다. 자기만의 색깔을 자랑하며 잔치를 벌이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나의 색깔을 생각한다. 나는 과연 소박함과 겸손할 수 있는 마음의 색깔을 입고 있는지를.
지난 주말에는 금호강변을 걷다가 곳곳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만났다. 가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 중의 하나가 코스모스다. 그래서 더욱 친근한 꽃이기도 하다.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듯한 가냘픈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신이 인간 세상에 제일 처음 준 꽃이 코스모스라고 한다. 향기는 없지만 꽃잎이 아름다운 코스모스의 이름의 유래는 원래 그리스어로 '우주의 질서'라는 의미를 지닌 코스모스(Cosmos)에서 따왔다고 한다.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가을 정취에 취하다 보니, 가수 김상희의 노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이 생각난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그때는 가을이면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리던 국민가요였는데.
이 가을엔 나는 그동안 멀어진 이들에게 짧은 편지라도 써야겠다. 그와 가장 좋았던 때를 되새기면서 앞으로 우리 사이에 새로운 아름다움이 피어날 수 있도록 생각하면서. 그리고 지나간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나를 점검하며 내일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볼 것이다.
겨울은 눈이 많다. 겨울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눈 쌓인 오솔길을 걸으며 문득 눈빛처럼 하얗게 빛나는 먼 옛날의 그리움을 떠 올린다.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버린 이런 날이면, 어린 시절의 혹독한 겨울이 생각난다. 덜컹거리던 문풍지가 울던 날 코끝이 시려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자던 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 연탄불에 물을 데워 먼저 씻겠다고 싸우던 그 모습이, 수돗물이 얼어붙을까 계량기를 헌 옷으로 감싸던 그 시절의 긴 겨울밤이 지금은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내 마음을 녹인다.
바람이 자면 숲 속은 침묵 속에 빠져든다. 간간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가 산의 적막을 깨운다. 새도, 풀 벌레도 기척이 없는 산은 그렇게 찬란한 봄을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는 침묵의 계절이다. 마치 숨죽이며 기다리는 교향악의 첫 악장처럼, 이제 곧 세상에 태어날 새 생명을 기다리는 긴장된 산실의 분위기처럼 겨울은 봄에 피워낼 생명의 씨앗을 품고 침묵하는 것이리라.
겨울은 누군가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어느 누구에게는 따뜻한 벽난로가 설치된 별장과 함께 신나는 스키장의 낭만이 기다릴 것이고, 어느 누군가에겐 추위를 이겨낼 한 장의 연탄이 필요할 것이다. 겨울이 오면 모두에게 평등할 수는 없는 세상이기에 겨울은 누군가에겐 때론 잔인하고 외로운 계절이다.
그래서 겨울엔 눈이 더 그리워지는 계절인가 보다. 눈은 세상의 어지러운 모든 것들을 덮어 준다. 밖은 춥지만 눈 속은 따스하다. 우리 모두 눈처럼 모든 이의 허물을 덮어 주고 겨울의 잔인함과 마주하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포근함과 따스함을 전해주는 겨울을 소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