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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Dec 31. 2021

행복해지는 일들 ②

행복은 내 감정의 잔잔한 파동이다







# 책의 향기를 느껴보는 일     


무료한 시간 눈을 감고 책상 앞에 앉아 낯익은 고독에 잠겨본다. 고요한 침묵 속에 흐르는 적막감을 만끽하며 온갖 상념이 소용돌이치는 어둠 속을 헤매다가 문득 눈을 뜬다. 갑자기 눈앞에 서 있는 책장 속의 책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머릿속을 휘저으며 나를 향해 힐책의 눈빛을 보내는 것만 같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어느 날 묵은 서가와 오래된 책의 오묘한 냄새를 맡고 싶어 고서점을 찾았다. 어쩌면 지하 저장고에서 오래 숙성된 포도주 향기나 고목나무에 핀 꽃의 향기처럼 이성을 매혹하는 표현하기 어려운 냄새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백의 주인장은 책들로 둘러싸인 책상에서 졸고 있었고, 나를 반겨주는 것은 오래된 창가의 빛이 반사되며 보이는 먼지를 머금은 책들 뿐이었다.     



책들로 만들어진 정글 숲 같은 통로를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넋을 놓은 채 천천히 지나며 옛날 어린 시절에 살던 온돌방 같은 미묘한 편안함을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가슴에 담았다. 저마다의 책 속에는 기억 속에 묻힌 옛 주인의 손때가 아직 남아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나는 책에서 나오는 저마다의 향기를 좋아한다. 아주 오래된 고서의 퀴퀴한 냄새뿐만 아니라 신간으로 인쇄되어 나온 책에서 풍기는 냄새까지도 좋아한다. 책이 풍기는 향기는 왠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야릇한 마력이 있는 것만 같다. 더구나 책의 향기를 맡으면서 저자의 흥미로운 스토리에 몰입하여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순간,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과 함께 풍선처럼 부푸는 평화로운 기운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맞이하는 마음의 안식과 뿌듯한 성취감을 경험하는 행복감에 빠져든다.


누군가 말했던가. 책은 오래될수록 작가의 이야기와 함께 자신을 소유한 주인의 향기를 머금는다고. 오래된 서가의 통로를 따라 지나가며 옛 친구처럼 속삭이는 책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래된 향기 속에 전해오는 눅눅함은 차라리 반가운 악수처럼 따뜻함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 눈빛이 머문 곳에서 무심결에 책 한 권을 살며시 빼 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래된 책이었다. 책 표지에 묻은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나랑 같이 갈래?”         



 

# 혼자 훌쩍 떠나는 일     


어디론가 훌쩍 혼자서 떠나고 싶은 충동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탈출은 새로운 힘을 주기도 한다. 훌쩍 떠난다는 것. 그것을 나는 그동안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의 삶에서 홀로 떠나는 여행이란 것이 많이 낯설고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지만, 누구나 작은 소망으로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을 상상하곤 한다.     


혼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는 여행이 대안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 아닐까? 혼자 떠나는 여행이 주는 기쁨은 오롯이 자기만의 행복이다. 날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낯선 곳에서 포장된 선물상자 속의 행복한 상상을 하나씩 풀어가는 즐거움을 생각하듯 날마다 무겁게 짓누르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혼자 떠나는 여행만큼 값진 선물이 어디 있을까. 왜냐하면 혼자만의 시간으로 자신과 만나 대화하며 외로움을 다스리고, 자신의 내면에 숨겨온 속마음을 알게 되며, 자신만의 충족감과 행복한 추억을 함께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속담에서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지만 정작 멀리 가려면 혼자 또는 혼자라는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좋다. 혼자가 되어서 낯선 장소에 가면 마음 한구석은 한 곳에 머물러도 이미 너무 멀리 나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온전히 자신을 바라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그동안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시간과 공간을 넉넉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떠날 때는 평소에 생각하고 꿈꾸었던 곳으로 가보자. 꼭 그런 곳을 향해 가지 않더라도 가는 도중에 그런 곳이 보이면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무작정 혼자 떠나는 여행이 갖는 최고의 장점 아닐까? 너무 많은 준비도 하지 말자. 약간의 경비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고 떠나도 되지만, 노트 하나와 읽을 책 몇 권 그리고 약간의 옷가지만 챙겨 가방에 넣어도 준비는 충분하다. 왜냐면 여행은 떠나기 전에 벌써 흥분되고 설레고 행복해지는 감정을 마음에 담고 있을 테니까. 가져간 책은 꼭 읽지 않아도 되고 노트에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아도 좋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자.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의 자유로움을 위해서.




# 초콜릿의 달콤함을 음미하는 일     

 

“초원의 한 통나무집에서 자전거를 멈춘 소녀가 책을 읽고 있다. 잠시 후 불어오는 미풍에 소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순간, TV 앞에 앉아있던 소년들은‘헉’하고 숨이 멎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TV 속으로 뛰어들어 저 ‘고독마저 감미로워하는 소녀’의 곁으로 달려가고만 싶었다. ”     


서른이 넘은 세대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CF. 바로 긴 머리 소녀 채시라의 <가나 초콜릿>이다. 특히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 감미롭다’라는 카피는 십 대 소녀의 청순한 이미지로 그녀의 깊은 눈빛에 당시 무수한 소년들은 밤잠을 설쳐야 했던 그때의 행복한 기억과 함께 지금까지도 향수이자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초콜릿은 사람이 우울해질 때 마음을 위로해주는 가장 값싸고 뛰어난 상품이다. 나는 가끔 초콜릿을 사다가 주방 식탁 위에 놓아둔다. 가족 중 누가 먹어도 좋고 아니면 내가 한 번씩 먹던 가 하겠지만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입가를 맴도는 달콤함은 금방이라도 모든 슬픈 기억을 잊게 하는 신비한 마력으로 다가와 파도처럼 울렁이던 가슴을 가라앉게 한다. 어쩌면 초콜릿은 나의 내면의 깊은 공허 속에 그리움처럼 녹아드는 가벼운 포옹 같은 것이다.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초콜릿’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초콜릿은 특유의 달콤한 향기와 맛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한겨울의 추위를 잠시 덮어줄 만큼의 행복하고 따뜻한 감정을 선사해 준다. 그렇기에 나에게 다가온 행복은 차창 밖 풍경처럼 한순간 스치고 사라져 가지만, 그 잔상은 감명 깊은 명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박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는 것 아닐까? 마치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반해 계속 찾게 되는 ‘초콜릿’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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