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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Sep 27. 2020

추억을 되돌리며 사문진 한 바퀴

사문진의 시간과 흔적을 따라가며






불쑥 높아진 하늘과 머뭇거리며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가을이 우리 곁에서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추석을 며칠 앞둔 주말을 맞아 코로나로 지친 따분한 일상도 깨우고 드라이브도 즐길 겸 가까운 근교에 있는 사문진 나루터로 향했다.


나루터 강변엔 벌써 코스모스가 들꽃과 어울려 환한 가을빛을 뿜어내고 있다. 주막 주변에 자리한 잘 가꾸어진 화단에는 수많은 국화가 유난히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잔잔한 강물을 따라 나룻배가 떠다니고 인근 주막에는 사람들 몇몇이 앉아 추억을 섞어 만든 파전과 함께 동동주 잔을 기울이는 풍경이 옛날 우리들의 넉넉한 가을 풍경으로 다가온다. 사실 사문진 나루터는 어렸을 때 가족들과도 종종 들른 적이 있었던 화원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뒤로 초등학교 시절에도 화원유원지는 수성못, 동촌유원지와 함께 단골 소풍 장소였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찾을 일이 거의 없었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문진 나루터는


조선 시대 낙동강과 금호강을 연결하는 하천 교통의 요지로 낙동강 뱃길의 대구 관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세종 시대부터 정종 시대까지 대일 무역의 중심지로 일본 물품 창고인 왜 물고(倭物庫)가 세워질 정도로 낙동강 물자 수송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2013년 사문진 나루터의 주막촌이 새롭게 개장하면서 옛날 정취를 그대로 재현한 까닭에 마치 조선 시대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당시 서민들과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공간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의 무대로도 유명한 장소다. 사문진 나루터는 현재 유람선과 쾌속정을 운항하고 있다. 2014년 취항한 낙동강 최초 유람선 달성호는 사문진 나루터를 출발하여 달성습지와 디아크(The ARK)와 금호강이 마나는 두물 거리를 지나 강정보까지 왕복하는 뱃길로 약 1시간 정도 주변 풍광을 즐기며 유람할 수 있다고 한다. 최고 시속 70㎞의 쾌속정은 사문진 나루터를 출발, 강정보 디아크를 거쳐 옥포면 간경리 일원까지 운항·회항하는 코스로 운항시간은 20분이며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나려 버리는 데는 최고라고 한다. 뱃놀이 후엔 옛 나루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주막촌에서 보부상들이 즐겨 먹었을 주막 별미들로 ‘추억’을 맛볼 수 있다.



사문진 주막촌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란 팽나무다. 팽나무는 나뭇가지가 이어져 한 몸이 된 연리지로 소원을 빌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팽나무 옆으로 지하여장군과 천하대장군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한국에 최초로 피아노가 사문진 나루터로 들어온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자 장승의 이빨을 피아노 건반으로 조각해 놓은 익살스러운 ‘피아노 장승’의 아이디어가 새삼 돋보인다.

약 500여 년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팽나무 주변에는 ‘나루 깡’이라는 장이 열렸고, 팽나무는 사문진 나루터에 홍수가 났을 때 배를 묶어두는 선착장 역할도 했다고 하니 그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팽나무 둘레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울타리 새끼줄에는 하얀 종이들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다. 아마도 종이에는 가족의 건강을, 연인과의 사랑을, 취업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들이 적혀 있을 것이리라.

  

팽나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주막과 함께 조각 작품들이 세워진 아담한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에는 피아노를 형상화한 분수대에서 건반을 두드리는 듯 물줄기가 리듬을 타고 있었으며, 분수대 옆에는


‘귀신 통 납시오.’


라는 문구가 새겨진 피아노 모형 조각상이 멋스럽게 놓여 있었다.

건반을 누르면 금방이라도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질 건만 같았다. 이는 1900년 3월 미국 선교사 ‘사이드 보탬’ 부부가 부산에서 낙동강을 이용해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곳이 사문진 나루터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난생처음 본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자 그 안에 귀신이 들어 있다고 여겼고, 이를 ‘귀신 통’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100대 피아노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으나 지금껏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공원 이곳저곳을 돌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 배가 출출해서 주막으로 향했다. 주막에서는 소고기국밥과 잔치국수, 부추전, 손두부, 오징어 무침회, 메밀전병, 동동주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시껄 벅적한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보니 과거의 주막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옛 나루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주막촌에서 옛날 보부상들이 즐겨 먹었을 동동주와 부추전 한 접시로  ‘추억’을 맛보았다. 서민의 애환을 맛본 후, 얼큰한 소고기국밥 한 그릇 마저 뚝딱 비우고 난 후 강변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문진 주막촌 카페 옆길로 내려가다 보니 낙동강 변을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펼쳐졌다. 산책로는 유람선이 운영되는 사문진 선착장을 지나 화원동산 건너편 강변길을 따라 화원 체육공원과 운동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드문드문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낚고 있는 모습이 삶의 여유로 다가온다. 운동장을 끼고돌아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빠져나오니 주막촌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강물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노을은 나루터와 어울려 한층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사문진의 노을빛은 정말 장관이라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사문진은 막걸리 한잔에 시간을 담고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며 먹거리와 볼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추억 속을 걷는 힐링 산책코스' 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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