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연 박물관, 우포늪
원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천연의 습지인 '우포늪'을 향해 차를 몰았다. 직장 퇴직 후 모처럼 만난 친구와 함께 그동안 쌓인 이야기도 할 겸 장거리 여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 19로 아무 곳이나 무작정 떠나기엔 망설여지는 때인 만큼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면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언택트 여행지를 생각하다 찾은 곳이 우포늪이었다. 대구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명소지만 평소에 쉽게 찾아가는 장소는 아니다. 우리는 우포늪 세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변 경관에 시선을 멈춘다. 우포늪은 문명에서 벗어난 듯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생태계의 고문서' 다운 품격을 지닌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숙연해짐을 느꼈다.
우포늪은 온갖 동식물이 죽고 태어나고 다시 죽음을 거듭하는 생명 순환과 함께 또 다른 생명이 수만 번이라도 다시 태어날 것만 같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우포늪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원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포늪은 인간의 손길을 마다하고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자연 늪이다. 천연의 늪이 거의 사라진 오늘날 늪이야말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연의 자궁’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궁 깊숙이 수생식물이 자라고, 온갖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수생곤충들이 애벌레를 키우며 생산과 번식의 순환을 이어가는 우포늪은 가히 늪 문화의 메카라 고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포늪은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자연습지로 이름나 있다. 300만 평의 습지에 수생식물과 늪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의 고유한 풍광을 보지 않고서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할 지경이다. 우포늪은 1억 4000만 년의 신비를 간직하고 원시적 저층 늪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우포늪의 둘레길은 주변을 빙 둘러 '우포늪 생명 길'과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생명 길을 걷기도 하고 탐방로를 따라가기도 한다. 둘레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파른 경사가 없어 평지나 다름없다. 우리는 큰 부담 없이 우포늪의 참모습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우포늪 생명 길' 코스를 택해 탐방해 보기로 했다.
출발장소는 '우포늪 생태관'이 자리 잡고 있는 생태관광안내소 입구였다. 우포늪의 경우 생명 길이든 탐방로든 대부분 구간이 외부와 연결되어있어 주차장을 비롯한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우리는 출발에 앞서 시간도 넉넉하게 있고 하여 우포늪의 전반적인 현황을 먼저 듣고자 생태관으로 향했다. 생태관의 입장료는 성인 1명당 2천 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로나 19 때문에 임시 휴관 중이었다. 올해 새로 단장한 우포늪 생태관을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생태관 주변에는 우포늪에서 자라는 수생식물과 물레방아, 소달구지 등과 작은 연못에는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모습 등 토속적인 조형물로 꾸며져 있는 볼거리로 위안을 삼았다.
생태관을 빠져나와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거대한 우포늪이 눈앞에 펼쳐졌다. 늪 건너편에는 우항산이라는 소를 닮은 산이 있는데, 산의 모양이 마치 소가 늪의 물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보여 '우포'가 됐다고 한다.
사실 우포늪이라고 부르지만, 우포늪은 제방을 경계로 자연습지인 우포늪을 비롯하여 사지포, 목포, 쪽지벌 등 4개의 늪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포늪 둘레길은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상관없지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잠시 후 ‘대대제방’으로 올라섰다. 길고 곧게 뻗은 제방길에는 자전거도 함께 다닐 수 있다. 왼쪽은 우포늪, 오른쪽은 대대마을의 들녘이다. 대대제방에서 바라보는 우포늪과 들판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멀리 보이는 낮은 산들로 두러 싸인 우포늪은 푸른 하늘과 초록빛이 감도는 수면이 닿아 멋진 자연의 어울림을 보여주고 있다.
대대제방이 끝나자 비가 많이 오면 통행이 제한된다는 조그만 하천(토평천)을 가로질러 다시 ‘사지포제방’으로 올라섰다. 제방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사지포 늪이다. 우포늪을 형성하고 있는 4개의 늪 모두가 모래나 펄이 있지만 사지포 늪은 특히 모래가 많다고 한다. 오른쪽의 사지 마을을 지나면 숲 탐방로 2길로 들어섰다. ‘주매제방’ 뚝 길은 아카시아 나무가 터널을 이루며 경관을 자랑하고 있고, 중간중간에 ‘주매 정’‘소목정’ ‘목포 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담한 정자가 방문객에게 잠시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있다.
주매제방을 지나 ‘소목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소를 닮은 우항산의 목 부분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소목마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특히 소목마을의 소목 나루터는 쪽배와 어우러진 우포늪의 일출과 풍경 사진을 찍는 유명한 포토존이라고 한다. 숲 탐방로 3길을 따라 우항산에 접어들었다. 64m에 불과한 낮은 산이었지만 오랜 풍상을 겪은 느티나무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산을 가로질러 ‘목포 제방’으로 향했다. 제방길을 따라 걷다 아래로 내려가니 조그만 개울이 나왔다. 징검다리 돌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물굽이가 음악처럼 들린다. 잠시 눈을 감고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해 본다. 징검다리 건너 사초군락지는 평소에는 육지이지만 홍수 때는 물에 잠기는 초원 습지로 버드나무 숲과 함께 갈대와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걷다 보면 또 다른 우포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고 한다. 물억새가 어른 키만큼 자란 사초 군락지를 지나 ‘부엉덤’에 닿으니 평탄한 자전거길과 연결되었다. 부엉덤에서 자전거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가니 '따오기복원센터'가 눈앞에 보였다. 따오기복원센터도 우포생태관과 함께 코로나 19가 개선될 때까지 임시 휴관이라고 해서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따오기는 동요에도 등장할 만큼 친근한 새였지만 1979년 비무장지대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되었으나, 2008년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중국에서 총 4마리를 들여와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증식 복원에 성공하여 총 384마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천년기념물 제198호로 지정된 따오기는 지난해 5월 40년 만에 따오기 복원 성공을 기념해 40마리를 자연에 방사해 관찰한 결과, 25마리는 낙동강과 우포늪 일대에서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따오기의 야생성을 회복하고 건강한 생존을 기원하는 마음 만을 남겨두고 따오기복원센터에서 나와 삼거리에서 우측 산길로 들어 전망대로 향했다. 입구에서 100m 길이의 목재 데크 계단을 올라가야 전망대에 오를 수 있었다. 조금은 힘이 드는 코스였지만 전망대에서는 우포늪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다. 망원경으로는 철새의 비행하는 모습까지 관찰하며 나만의 정취에 푹 빠져들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우포늪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거대한 두 그루의 왕버들 나무가 상반되는 형태로 서 있었다. 한 그루는 바로 서 있고 다른 한 그루는 넘어진 모습이라 대조가 된다. 우포늪 가장자리인 사초군락이 끝나는 지점이자 징검다리 건너에 보이는 왕버들 군락은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으로 전국의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라고 한다. 일반적인 버드나무와 선버들 등과는 다른 크기의 웅장함과 멋있게 늘어진 가지들이 보는 이들에게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아직은 제철이 아닌 억새와 갈대가 늘어선 우포늪 둘레길에 밀려드는 물안개를 본다. 우포는 정말로 때 묻지 않은 원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생명의 쉼터인 것 같다. 아스라한 물빛에 젖어오는 그리움처럼 피어나는 물안개의 환상이 신비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청청하게 늘어져 생명의 향기를 품어내는 왕버들과 미루나무,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숲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지금 나는 새들의 낙원이자 원시의 땅에 다가갈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큰 기러기와 청둥오리, 쇠오리 등이 ‘앉았다 날았다’를 반복하며 풍덩거리는 우포늪은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각인된다. 백로는 흐린 하늘을 밝히며 떼를 지어 훨훨 나르며 늪의 물을 마시고 있다는 우항산 기슭을 오르내린다. 둘레길의 마지막 코스로 접어들며 나는 우포늪이 '생태계 보호지역'과 '람사 조약'에 의한 '국제보호습지'로 지정된 것에 대한 안도와 함께 우리 모두가 생태오염이나 파괴로부터 원시의 우포늪을 지키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겨둔다.
생각보다 먼길이었지만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신에 대한 뿌듯함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것만 같다. 생태관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여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친구와 나는 서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악수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본다. 정말 오랜만에 함께 걸어 본 3시간의 둘레길 산행을 통해 산뜻한 힐링을 한 것 같다. 더불어 우포늪 둘레길 탐방에서 만난 온갖 경이로운 원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며, 따오기와 함께 나만의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어 본다.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 우포늪(생태공원) *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이다. ‘늪’이라고 하면 가장 규모가 큰 우포늪뿐만 아니라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네 개의 늪을 모두 아우른다. 이 늪지대는 경남 창녕군의 유어·이방·대합면 등 3개 면에 걸쳐 있는데, 둘레는 7.5㎞에 전체면적은 2,314,060m²에 이른다. 이곳에 늪지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억 4,0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공룡시대였던 중생기 백악기 당시에 해수면(海水面)이 급격히 상승하고 낙동강 유역의 지반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이 일대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던 물이 고이게 되면서 곳곳에 늪지와 자연 호수가 생겨났고, 새로 생긴 호수와 늪은 당시 지구의 주인이던 공룡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현재 우포늪 인근의 유어면 세진리에는 그 당시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남아있다. 우포늪은 아무리 깊어도 사람의 온몸이 잠기는 데가 거의 없다. 장마철에는 수심이 5m에 이르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1~2m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늪의 바닥에는 수천만 년 전부터 숱한 생명체들이 생멸(生滅)을 거듭한 끝에 쌓인 부식층(腐植層)이 두터워서 개펄처럼 발이 푹푹 빠지지도 않는다. 억겁을 세월을 간직한 이 부식층이 있기에 우포늪은 '생태계의 고문서', 또는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우포늪 주변에는 가항늪·팔락늪·학암 벌 등 10개의 늪이 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과 농경지의 잠식으로 인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포늪도 한때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었다. 지난 1960년대 초에 백조도래지(천연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됐다가 급격한 개발로 인해, 백조 수가 급감하자 천연기념물 지정이 취소된 것이다. 그 뒤 이곳에 개발의 광풍이 거세게 불기도 했다. 다행히도 오늘날의 우포늪은 나날이 안정을 되찾고 있다. 특히 ‘생태계 보호지역’(1997년)과 ‘람사 조약’에 의한 국제보호습지(1998년)로 지정된 이후로는 예전의 생태계가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 생태계의 보고, 우포늪의 생태계 * 우포늪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자연환경보전법 적용을 받고 있어 낚시, 논우렁 채취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 시에는 처벌을 받게 된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우포늪을 지키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현재 우포늪 일대에는 43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한다. 우리나라 전체 식물 종류의 10%에 해당된다. 그중에서 수생식물의 종류는 우리나라 전체의 50~60%를 차지한다. 이곳의 수생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표이다. 이곳에서 가장 흔한 수생식물은 생이가래·마름·자라풀·개구리밥·가시연꽃 등이다. 이 식물들은 그 자체로도 귀한 생명체이지만, 늪의 수질을 정화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포늪의 물빛이 의외로 맑고 깨끗한 것은 이 식물들 덕택이다. 조류는 쇠물닭, 논병아리 등 텃새와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 저어새, 큰고니를 비롯하여 청둥오리, 쇠오리, 기러기 등 62종이 있으며 겨울 철새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어류는 붕어, 잉어, 가물치, 피라미 등 28종이 서식하고 있으나 최근 황소개구리, 배스, 블루길 등 외래어종이 증가하여 자연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 외 논우렁, 말조개, 잠자리, 소금쟁이 등의 패각종 및 수서곤충이 서식하고 있다.
참고문헌 http://www.cng.go.kr/tour/upo.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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