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월과 한림에서 보낸 탐나는 하루 여행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부터 누적된 일상의 피로감을 조금이나마 떨치고자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제주 여행에 나섰다. 행선지는 하루 여행을 위해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애월로 정했다. 휴가와 방학이 겹쳐 시도한 하루 여행이지만 어디론가 떠남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컸다. 대구공항에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 탑승을 위해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쪽 하늘에서 붉은빛을 쏟아내는 해돋이가 신비함과 색다른 감성을 자극하며 눈 속으로 들어왔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생각지 않은 해돋이 풍경은 또 하나의 탄성을 자아내는 기쁜 선물 같았다.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을 마치고 6시 15분 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은 여행객들로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다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자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연인끼리 떠나는 여행일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생각을 거두었다.
얼마 후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예약한 렌터카를 타고 미리 생각해 둔 몇몇 행선지를 향해 여행을 시작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나온 탓인지 모두가 배고픔을 느끼며 첫 번째 코스로 검색해둔 맛집을 찾아 해변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애월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해오반’ 한식당 앞에 차를 주차하고 식당이 오픈하기를 기다리며 잠시 바다향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고느적한 한옥 풍의 일자형 기와지붕을 한 해오반의 전경은 마당에 펼쳐진 잔디 조경과 함께 바다를 끼고 있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파란 물빛이 그림처럼 다가오는 해변의 풍경은 오랜만에 제주를 찾은 여행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QR체크인과 체온을 잰 후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주인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훑어봤다. 평소에 먹지 못한 생소한 메뉴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 먹을까?” 우리는 이름도 생소한 ‘제주 보말죽(보말은 ’ 고둥‘의 제주도 방언)과 전복 뚝배기, 딱새우 회, 옥돔구이’를 주문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여행객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밑반찬과 함께 주문한 음식이 하나둘씩 탁자 위에 놓였다. 눈앞에 펼쳐진 해산물의 향연이었지만 나는 썩 내키지 않는 식성 탓에 잠시 머뭇거렸다. 원래가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 탓도 있겠지만 아침부터 평소에 즐겨 먹지 않던 음식을 마주한다는 것이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만은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의 풍미를 체험하기 위해서라도 종류별로 맛을 음미하며 아침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수저에 함께 담았다. 제주가 뿜어내는 독특한 향기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온몸 가득 담으면서 소중한 하루의 감성을 따라가는 멋진 시간을 기대하면서.
아침 식사를 해결한 후 우리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했던 애월 카페거리로 향했다. 애월 바다 바로 앞에 자리한 '카페 봄날'은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빨강, 노랑, 파란색 조가 어울린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이국적 감성을 풍기며 마치 동화 같은 친근한 정감을 안겨 주었다. 바다는 내륙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멈출 수 없는 살아있는 풍경이다. 카페 ‘봄날’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문으로 환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바로 앞바다에는 투명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더위를 즐기는 듯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커피를 마신 후 아쉽지만 짧은 휴식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카페와 이어진 ‘한담 해안 산책로’를 잠시 걸었다. 그러나 한여름의 열기를 품어내는 산책로를 걷는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서 바다를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마치 추억 속에 잠시 머물다 온 것만 같은 카페를 떠나 우리는 국내 최대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인 ‘아르떼 뮤지엄’으로 향했다. 전시관 입장료는 예상보다 좀 비싼 것 같았다. 뮤지엄은 안으로 들어가는 길부터 어둠으로 깔려 마치 흑백 티브이에 갇힌 듯한 색감에 신비함을 느꼈다. 현란한 빛의 움직임이 다채로운 영상과 함께 연속되어 변화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모든 곳에 다 거울이 있어서 어디가 통로인지 헷갈렸다. 관람 동선에 따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바뀌는 갑작스러운 색감을 마주하며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뮤지엄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신비로운 분위기에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꽃들의 공간‘FLOWER’
폭포의 웅장함을 더해주는 ‘WATER FALL’
정글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미디어‘JUNGLE’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공간‘WORMHOLE’
파도와 오로라가 주는 오묘한 공간‘BEACH’
수백 개의 조명 속에 갇힌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STAR’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WAVE’
너도나도 그림에 참여하는 ‘NIGHT SAFARI’
비눗방울에 둘러싸인 달 속의 토끼‘MOON’
제주를 담은 빛의 정원과 명화를 담은 ‘GARDEN’
을 이리저리 관람하며 새로운 세계에라도 온 듯한 착각 속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밖으로 나와 제주 감귤주스로 가슴과 머릿속을 정리한 후 우리는 제주의 또 하나의 유명 카페인 '울트라 마린'으로 네비를 찍었다.
울트라 마린은 인스타그램에서도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유명인들도 방문하는 곳이라서 제주 서쪽을 여행하는 여행객에게는 필수 코스라고 한다. 카페와 인접한 에메랄드 빛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라고 하니 더욱 빨리 가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카페 앞에 주차를 한 후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카페는 건물 외부가 인더스트 리얼한 디자인으로 된 2층 건물로, 노출 콘크리트와 현무암으로 된 회색톤의 인테리어로 디자인한 내부 모습이 안정감을 주었으며 널찍한 사각형의 우드 테이블은 빈티지한 느낌을 더해 주며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에서 깊은 운치를 느끼며 여행의 여유로움과 휴식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울트라 마린에서 여행의 여독을 달랜 후 일정 상 시간의 여유가 있어 생각지도 않은 한림공원’으로 향했다. 한림공원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바닷길을 따라 드라이브도 할 수 있어 좋았다. 근처에는 협재해수욕장과 금능 해변이 있어 제주 서쪽 여행을 할 때 들리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한림공원은 총 9개의 다양한 존으로 나누어져 있는 테마파크인데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빠트리는 곳 없이 전부 다 구경을 할 수 있다. 입장 후 높이자란 아열대 식물을 감상하며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이정표가 알려주는 다음 테마로 향하는 모든 길이 조경이 잘되어 있어, 한여름이지만 산책을 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공원 전체가 실외 관광지이기에 여름철에 찾아가기란 힘들 수도 있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자연 그늘을 만들어줬고 가까이 있는 해수욕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제주 한림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협제와 쌍룡 동굴이 아닌가 싶다. 이 동굴은 250만 년 전 한라산 일대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흘러내려 형성된 검은색의 용암동굴이 스며드는 석회수로 인하여 황금빛 석회 동굴로 변해가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쌍용 동굴은 그 형태가 마치 두 마리의 용이 빠져나온 모양을 하고 있어서 쌍용 동굴이라 부르고 있으며, 1981년에 공원에 매몰되어 있던 협재 동굴과 쌍용 동굴을 연결해서 1983년부터 개장이 되었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욱 의미가 있었는데 어둡고 습한 공간이었지만 바깥과는 차원이 다른 꿀맛 같았던 시원함을 즐기고 나올 수 있었다.
동굴을 빠져나와 조금 걷다 보면 실제 초가집을 이전해놓은 민속촌이 나온다. 민속촌에는 그 당시에 이용하던 실제 물건들로 비치를 해뒀는데 상태가 매우 우수했고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옛 조상들의 지혜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조류를 구경할 수 있는 존으로 화려한 색감을 가진 공작새는 산책로 곳곳에서 긴 날개를 다듬고 있었으며,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타조도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제주 한림공원은 생각보다 많은 여러 가지 구경거리가 풍부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감상할 수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그 어떤 일행끼리 가더라도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곳일 것 같았다.
제주 한림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애월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마무리하며 배도 출출하여 흑돼지 맛집 ‘코시롱’에 들렸다. 유니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코시롱 주변에는 커다란 야자수 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안겨 주고 특이한 구조로 꾸며진 대형 식당이라서 그런지 한층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코시롱은 애월 해안도로에 접해 있어서 오션뷰가 끝내주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코시롱’에서 만난 흑돼지는 참나무 향이 그윽하게 베인 두툼하게 썰어진 목살과 오겹살이 내 품는 선명한 색과 마블링이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했다. 탱글탱글 윤기 있게 구워진 흑돼지가 침샘을 자극하며 육즙도 풍부해 촉촉한 맛이 입맛을 행복하게 채워 주었다. 한 가지 더한다면 매주 수요일 빼고는 라이브 공연도 한다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이 안타깝게도 수요일이라니.
저녁 8시 50분에 출발하는 탑승 시간에 맞춰 렌터카를 반납하고 제주공항으로 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볍게 떠난 하루 여행이었지만 코로나로 지친 가족 모두에게 몸과 마음을 달래준 알차고 값진 여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더 행복해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 생텍쥐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