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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Aug 15. 2020

또 다른 슬픈 이별에 대하여

'하니'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초코’가 슬개골 탈구로 수술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 경남 진영에 살고 있는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삼일에 한 번씩 하는 전화지만 오늘은 목소리가 착 깔아진 게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며칠 전 산책을 나갔다가 ‘초코’가 왼쪽 뒷다리를 들고뛰는 모습이 너무 이상해서 집 근처의 동물병원엘 갔단다. 수의사가 이리저리 만져보고 엑스레이를 통해 검진한 결과 뒷다리 관절이 자꾸 빠지는 증세가 있는 게 아마도 슬개골 탈구증이 있는 것 같단다. 애완견에게 자주 발생하는 병으로, 특히 푸들 종류같이 뼈대가 약한 강아지에게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 조만간 수술하는 게 좋을 것이란 답변만 듣고 왔다고 한다.     


갑자기 닥친 어이없는 일에 수술을 해야 할지 어떨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슬개골 탈구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열었더니 생각보다 많은 애완견들이 이런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수술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지만 여러 자료를 통해 종합해 본 결과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으로 혼자 결정하고 시간을 두고 지켜볼 생각이란다.    




벌써 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지만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강아지 ‘하니’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해 겨울 어느 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집들이 차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두서없이 강아지 이야기가 나왔다. 인근 모 종택(宗宅)에 살며 진돗개를 기르고 있다는 친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 집에 키우는 진돗개 자랑에 침을 튀겼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주인이 오는 줄 알고 지으며 꼬리 치는 모습이며... 등등.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아내가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면 빠진 털이 날아다닐 테고 벽면이나 옷, 가구 등에 붙기도 하며 음식에도 들어갈 수 있는 등' 비위생적인 면을 강조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생각을 접었었다. 그런데 이날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진돗개 자랑을 하는 바람에 은근히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워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작고 예쁜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보면 어떨까요?”   

  

그전까지만 해도 강아지 이야기가 나오면 펄쩍 뛰던 아내가 오늘은 조용히 있는 것이 무언의 예스 표시를 한 것은 아닌가 싶어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꺼냈다.     


“털 빠지는 것이 문제라면 털 많이 안 빠지는 미니 푸들 한 마리 키워보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요?”    


아내는 한참을 생각하다 강아지 관리에 대한 약속은 꼭 지키라는 말과 함께 단호한 반대에서 한발 물러섰다. 나는 곧바로 친구에게 애견센터에 들릴일 있을 때 건강한 미니 푸들 한 마리 사 오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튿날 저녁 무렵 친구는 윗도리 양복 주머니에 강아지 한 마리를 넣어가지고 나타났다. 미니 푸들 암컷이란다. 애견 집에서 혈통 좋은 견이라고 해서 30만 원에 사 가지고 왔다고 한다. 하얀 털을 가진 작은 푸들을 보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름도 ‘하니’하고 붙였다. 달리는 하니가 생각나서 붙인 이름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미혼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던 관계로 나와 아들은 출근하고 집에는 아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너무 적적할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내의 적적함을 달래 줄 귀여운 강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내에 대한 내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처음에는 대소변조차 잘 가리지 못해 자주 꾸중을 들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모습은 언제나 내게 기쁨으로 다가왔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맨발로 맨 먼저 반기는 것은 언제나 ‘하니’였으며,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자고 꼬리를 치며 잉잉대며 조르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하니’는 윤기가 흐르는 하얀 털을 가진 허리와 다리가 긴 푸들 종류로 애교가 많고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강아지였다.     


‘하니’와의 만남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레 가족이 되었고 퇴근해오면 가장 먼저 데리고 밖으로 나가 산책이나 운동을 시켜 주는 일이 일상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현관 앞에서 기다리며 칭얼대던  ‘하니’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아내가 데리고 나갔나 생각하다가 혹시나 싶어 소파 밑을 바라보니 '하니'가 얼굴에 주름을 가득 채운 체 인상을 쓰며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손으로 만지려 하자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이 조금은 겁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장갑을 끼고 억지로 ‘하니’를 꺼내 살펴보니 뒷다리에 아무런 힘이 없이 그냥 주저앉은 체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 해도 다리에는 아주 작은 힘도 느낄 수가 없었다. 손으로 주무르고 혹시나 소파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졌나 싶어 만져보아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스스로 통증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하니’의 처지 앞에서 나는 가슴만 쓸어내렸다.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하니'와 같은 증상을 잘 치료한다는 동물 종합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동물병원에는 여러 종류의 강아지들이 작은 철창 속에 갇혀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다 어딘가 아파서 입원한 모양이라 생각하며 애처로운 마음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의사가 ‘하니’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검사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등등.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수의사가 엑스레이 사진과 검사 결과를 보여주면서 척추의 디스크 증상으로 생긴 하지 파열이라고 설명한다. 약물치료 후 수술을 해야 한다며 일단 입원을 시키란다. 나와 아내는 하는 수 없이 ‘하니’를 병원에 두고 돌아와야만 했다. ‘하니’의 눈엔 이슬이 맺힌 듯했고 돌아가는 우리에게 자기도 함께 데려가 달라는 애절함이 눈가에 서려 있는 듯이 보였다.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이 썰렁하게 느껴졌다. 가족이란 것은 그 대상이 강아지라 해도 저마다 함께 부대끼며 살다가 없어지면 한 동안은 삶에 균형이 뒤틀려 버린 듯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이튿날 새벽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침부터 무슨 전화인가 싶어 전화기를 들자마자 동물병원이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젯밤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하니’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병원에 두고 돌아설 때 애절하게 바라보던 눈망울이 자꾸만 생각나 얼마나 마음이 아려왔는지 모른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더니, 어젯밤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더니 아마도 밤중에 죽은 모양이란다. 허탈감과 그리움이 갑자기 밀물처럼 밀려들며 가슴 한가운데를 횅하게 뚫고 지나간다.     




‘하니’를 떠나보내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하니’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잊혀 갔다. 슬개골 탈구로 아프다던 ‘초코’는’다행히도 약물치료 후 요즘에는 밥도 잘 먹고,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많이 건강해져서 잘 뛰어다닌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다음 주말엔 ‘초코’를 만나러 가야겠다.


우유와 치즈


그 후 ‘초코’는 다른 이유로 서울 이모네 집으로 입양되어 좋은 환경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지금은 재롱둥이 반려견인 말티즈 소형견 ‘우유’와 ‘치즈’를 오래전에 새로운 식구로 맞아 녀석들 덕분에 날마다 웃으며 즐겁게 살고 있다.


“귀염둥이 우유 & 치즈, 오래도록 건강하게 함께 살자.”  그리고 “하니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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