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장맛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금요일 오후, 비에 흠뻑 젖은 길가 은행나무는 싱그러운 자태를 자랑이라도 하듯 연신 잎새를 흔들며 바람을 타고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동해 바닷가에 있는 전망 좋은 풀빌라를 빌려 즐거운 휴가를 다녀올까 생각했다. 그러나 장맛비도 내리고 '코로나 19'도 아직은 곳곳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어 근교에 있는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고 인근 식당에서 따뜻한 삼겹살이라도 구워 먹으며 조촐한 휴가로 대신하기로 했다.
삶도 이와 같이 언제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지금 한 선택과 결정이 처음 계획과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삶을 컨트롤하며 책임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니까. 어떤 이유로든 삶의 여정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 이유를 받아들이고 긍정의 힘을 믿으며 나를 내려놓을 때 분명 더 좋은 길이 보일 것이다.
누군가 내게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생떽쥐베리의 명언을 빌려 '삶의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싶을 뿐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너에게
변변히 대답조차 할 수 없는 나를 보며 침묵한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아니라
오히려 너의 질투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나누어도 불어나지 않는 이유는
가끔은 자랑과 허세가
진실의 무게를 까먹기 때문이며,
슬픔은 나누면 반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약점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때로는 오해와 약점이 될까
마음의 문을 닫았기 때문이리라.
삶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해야
그 느낌과 무게를 알 수 있듯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간절한 삶의 의미가 엿보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
참과 거짓,
사랑과 무관심(?),
부와 가난,
수많은 상반된 판단의 잣대가
마음속을 흩트려 놓더라도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변할 수 있는 것.
기쁨은 견디지 않아도 잠시 뿐이지만
고통과 시련이 가져다준 슬픔의 빛깔은
오래도록 남는 것.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주체할 수 없는 막막함으로 떨고 있을 때,
세상 가운데서 밀려나
어둠 속에 지쳐 서 있는 기분일 때,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의식하며
용기와 희망을 깨우기에 망설일 때,
숱한 그때가 가슴을 짓누르며 밀려와도
나는 소망한다.
지금 이 순간에 핀 꽃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당장 슬퍼할 이유는 억지로 만들지 말자고.
삶의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