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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Nov 25. 2020

여행의 회상(3) /파리 1일째

파리의 로망에 빠지다




# 1996년 10월 24일(목) 프랑스 파리    


우리는 모닝콜에 맞춰 둔 시간에 일어나 가볍게 샤워를 하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크로와상과 식빵, 모닝커피 한잔으로 프랑스 파리에서의 첫 번째 식사로 대신했다. 한국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먹는데 익숙해진 탓에 별다른 느낌은 갖지 않았다. 파리의 아침은 묘하게 런던과는 다른 설렘이 마음속을 흔드는 것만 같다. 하루의 여정이 시작된 파리의 하늘은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같다. 전용 버스로 시내로 나오니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가 거의 소형차다. 우리나라의 프라이드나 옛날의 포니 정도의 작은 차가 대부분이다. 자동차를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특히 파리에는 버스나 국영기업이 운영하는 지하철이 잘 발달되어 있어 교통에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파리 시내의 가로수는 플라타너스나 마로니에 나무 일색이다. 360여 개의 공원을 가진 숲의 도시로 일반주택은 없고 아파트만 있다고 한다. 그래도 파리는 우리가 꿈꾸는 그런 멋진 도시임에 틀림없다. 런던에는 없는 그런 매력을 품은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기억 속에 담으며 오늘도 긴 여정에 나섰다.


룩셈부르크 공원에서 자유와 휴식을 만나다

파리에서의 첫 행선지로 파리지엥들이 자주 찾는다는 ‘룩셈부르크 공원(프랑스어로는 뤽상부르 공원이라 함)’을 찾았다. 1612년 남편 앙리 4세를 잃은 마리 드 메디치 왕비의 외로움과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이탈리아 보볼리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된 공원이라고 한다. 공원 곁에는 과거 마리 드 메디치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는 룩셈부르크 궁전 건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프랑스 상원 의원의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룩셈부르크 공원과 국회 상원 의사당

공원 곳곳엔 앉아서 쉴 수 있는 수많은 의자들이 놓여 있어 저마다의 포즈와 저마다의 이유와 저마다의 자유로움으로 공원에서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공원 한편에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축소해 놓은 동상이 서 있었는데, 이것은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의 원래 모델이었다고 한다. 다만 조각상의 모습이 너무 낡아 보이는 것은 나만 느낀 것인가?  공원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늘 그랬듯이 각자의 취향대로 공원의 이곳 저것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마로니의 숲

우리처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추억에 남을 사진을 찍는데 바빴다. 공원에는 의자에 앉아 편안한 복장으로 책을 읽는 노부부 혹은 커플들과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산책 나온 듯한 어른들이 많았다. 특히 가을 정취를 듬뿍 안은 마로니에 숲은 저 멀리 상원 의사당을 향해 도열하듯이 서 있는 풍경으로 상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프랑스 위인들의 작은 국립묘지 팡테옹

룩셈부르크 공원과 인접해 있는 ‘팡테옹’으로 왔다. 웅장한 규모의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성당으로 사용되었으나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사후 안치된 후부터 루소, 에밀 졸라, 몽테스큐, 퀴리 부인과 그의 남편 등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작은 국립묘지로 사용하였다. 특히 팡테옹이 사랑받는 이유는 전망 탑에 올라가면 파리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팡테옹 입구에 새겨 놓은 글귀는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다'라고 번역해 주었지만, 아마도 조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자들에게 영광을 받친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프랑스 위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팡테옹

노트르담 대성당의 꼽추는 어디로 갔나

팡테옹을 나와 센 강변을 지나 예술의 다리 퐁네프 다리를 건너 시테섬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 파리의 발상지인 시테섬에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대성당의 웅장한 위엄을 볼 수 있었다. 역사 유적의 보고인 파리에서도 특히 귀중한 초기 고딕 양식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일 걸어지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성당으로 파리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그 역사의 유구함 뿐만 아니라 건축 분야에서도 기념비적으로 간주되는 비중 있는 건축물인 만큼, 수난도 많았고, 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수많은 왕의 대관식과 귀족들의 결혼식이 행해졌으며, 특히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이 바로 이곳에서 행해졌다. 이 대관식 장면은 다비드의 그림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미술관의 전시>에서 잘 재현되어 있다고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

성당 내부에는 약 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당이 있고, 프랑스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은 물론 중앙에 있는 <장미의 창>이라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압권이었다. 대성당 남쪽 탑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영화화하면서 세계적인 배우로 등장한 알랭 드롱과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큰 종이 있다고 한다.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 건축물답게 로마 가톨릭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구조체로 하늘에서 보면 기다란 십자가의 모양으로 그리스 정교나 유대교에서 사용하는 십자가와 그 모양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어떤 모양인지 궁금했다.      


노트르담 성당 정문 앞 광장에 '포인트 제로(POINT ZERO)'가 있었다. 팔각형 안에 있는 별 모양의 표시로 파리 지역의 모든 건물의 거리 측정의 기준점이 되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서서 보니 지적 관측을 위한 일보다는 이곳을 밟고 한 바퀴 돌면 파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해서 나도 파리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제로 포인트를 밟고 한 바퀴 돌아봤다.    

POINT ZERO

퐁네프 다리에는 '퐁네프의 연인들'은 없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돌아 나와 퐁네프 다리로 향했다. 퐁네프 다리는 시테섬의 북서쪽 끝에서 센강의 좌우를 연결하는 다리 중의 하나다.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퐁네프는 노숙 남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여자의 운명적 사랑을 그린 레오 카락스의 명화 ‘퐁네프의 연인들’ 때문에 전 세계에 알려졌다. 강 주변에는 시테섬을 비롯하여 루브르 박물관, 베르갈랑 광장, 노트르담 성당 등 수많은 관광 및 역사 명소들이 밀집해 있었다. 시테섬은 파리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파리의 역사라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파리란 이름도 이 섬의 부족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퐁네프 다리

파리 센강 위의 다리들, 퐁네프, 미라보, 생 미셸, 퐁 세자르 등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들은 파리의 역사나 예술과 궤적을 같이 해온 탓에 다리만 걸어도 파리의 근, 현대사와 흔적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퐁네프 다리 위에는 아직도 두 연인이 아픈 사랑의 상처를 쓰다듬고 있을 것 같은 환상이 떠올랐지만 다리의 모습은 생각보다는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퐁네프 다리’는 파리의 센강을 가로지르는 많은 다리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네프(neuf)라는 말은 ‘새로운’이라는 뜻으로 ‘퐁 네프’는 ‘새로 만든 다리’를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였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우리가 영화로 잘 알고 있는 퐁네프다리 등 총 37개의 다리가 있다지만, 일정 상 퐁네프 다리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특히 미라보 다리를 볼 수 없어 미련이 남았지만 그냥 돌아섰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가 옛 추억을 일깨우며 떠올랐지만, 센강 위에 뿌리고 마음만 남겨둔 체 파리 시내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향해 버스의 방향을 돌렸다.

     


몽마르트르 언덕과 샤크레 쾨르 성당

‘몽마르트르 언덕’은 피카소 등 옛 화가들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었다. 어디에서든 높은 곳을 바라보면 몽마르트르 언덕이 보인다고 하며, 평평한 분지인 파리에서 나름대로 고지대라 할 수 있는 몽마르트르는 해발 130미터 밖에 안 되는 그야말로 언덕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파리 시내 전경을 조감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몽마르트르 일대는 마네, 모네, 고흐, 로트레크, 드뷔시, 피카소, 위트릴로, 에릭 사티 등 많은 예술가들이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해서 당시 이들의 일화들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의 전설을 기억하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 현장을 찾기 위하여 일 년 내내 이 언덕을 허덕거리면서 오르내리고 있으며 지금도 그런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도 몽마르트르의 유명세를 아는지라 예술혼을 찾아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자마자 하늘을 찌를 듯이 세 개의 커다란 둥근 돔이 인상적인 백색의 웅장한 성당 건물이 ‘샤크레 쾨르 성당(Sacre Coeur)’이 나타났다. 기존 파리의 다른 성당과는 전혀 다른 로마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사크레 쾨르라는 말은 ‘성스 로운 심장’이라는 의미로, 우리식으로 말하면 <성심 성당>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성당은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러시아에 참패함에 따라 프랑스인들의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몽마르트르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너무 많은 사람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성당 안은 쵤영이 금지되어 있어 주변의 풍경만 눈에 담았다.  

사크레 쾨르 성당

사크레 쾨르 성당 바로 옆에는 테르트르 광장이 있는데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분비는 이곳은 수십 명의 화가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앉아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파리 곳곳의 풍경화들을 그려 판매하고 있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 소요되는데 가격은 30$에서 50$ 정도라 한다.     

몽마르트르 거리의 화가들

몽마르트르는 사크레 쾨르 성당과 수녀원, 무명 화가들이 관광객을 유혹하는 테르트르 광장, 곳곳에 있는 가파른 돌계단 및 좁다란 길을 따라 여기저기 남아 있는 화가들의 옛 아뜰리에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독특한 정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언덕의 꼭대기를 의미하는 테르트르 광장은 예술 중심지로서의 몽마르트르의 옛 전통을 이어받아 많은 초상 화가들과 무명 화가들이 관광객을 유혹하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심장부라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맑은 날보다는 어둠침침하게 흐린 날이나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는 오후에 이곳에서 살다 간 화가들을 생각하며 걷는 것도 좋다. 성당을 오르려면 지나가야 하는 좁은 길 양쪽엔 거의 가 옷감 도매상들이다. 사람 구경만도 심심치 않았다. 기웃거리며 오르기엔 아주 괜찮은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선문에 잠든 나폴레옹의 지키지 못한 약속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와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는데, 그 높이와 너비는 2배 크기이다. 프랑수아 뤼드가 전면에 조각으로 장식해놓은 '1792년 용사들의 출정'이 많은 으미를 전해 주었다. 개선문의 안쪽 벽에는 각 전투에 참가했던 600여 명의 장군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안의 자그마한 미술실에는 개선문의 역사를 말해주는 그림·사진·모형들이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개선문

전망대로 올라가면 앞으로는 콩코르드 광장·루브르 궁이 보이고, 뒤로는 라 데팡스가 보인다고 하지만 올라가지는 못했다. 개선문의 바닥에는 1차 세계대전 때 숨진 무명용사 묘가 설치되어 '영원한 불길'이 언제나 타오르고 있으며 추모의 꽃다발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개선문은 파리의 상징적인 건축물의 하나로 12개의 거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뻗어 있어 이 광장을 ‘별의 광장 또는 에투알 광장’이라고도 불렀다. 

무명용사의 추모장

파리에는 여러 개의 개선문이 있지만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이 제일 유명하여 보통 파리 개선문이라면 이 개선문을 말한다고 한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승전 기념으로 세우기 시작했는데 높이는 50m이고 30여 년이나 걸려서 완공되었기에 전투에 참가한 부대원들에게 개선문을 통해 귀향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나폴레옹 자신도 죽은 후에야 이 개선문 아래를 지날 수 있었다고 했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에투알 개선문 내부는 관광객들에게 떠밀려 다니느라고 집중이 어려워 사진만 몇 장 찍고 에펠 탑으로 향했다.      


에펠 탑은 공학이 만든 최고의 건축물이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에펠 탑의 아름다운 풍경은 항상 우리에게 여행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1889년 파리 마르스 광장에 지어진 에펠 타워는 매년 수백만 명의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장소로, 디자인을 한 구스타브 에펠의 이름에서 명칭을 얻어온 에펠 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세계 박람회의 출입 관문으로 건축됐다고 한다. 높이는 81층 높이의 건물과 비슷한 324미터라고 한다. 건립 당시 철골을 그대로 드러낸 외관이 도시 풍경과 전혀 맞지 않고 거리 미관도 해친다는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콘트라스트와 우아한 실루엣으로 파리의 상징이 되고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이 파리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말이 있었지만 올라가진 못했다.                    

에펠 탑

센 강변에 위치한 에펠 탑은 파리의 상징물로 특히 밤에 조명을 받은 에펠 탑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에펠 탑에 정신을 다 빼앗기며 파리에 정감에 흠뻑 취해 있다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었다. 오래간 만에 유럽풍의 빵과 고기 등을 떠나 한식점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우리 음식을 보니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만 같은 따뜻한 정감이 흘렀다. 오랜만에 김치와 함께 가져온 참치, 고추장 등을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니 입맛이 개운한 게 정말 좋았다. 간단하게 소주도 한잔 곁들이니 새로운 기운과 함께 관광의 흥미를 북돋워 주었다. 

  



센 강 유람선 관광에서 만나는 역사의 파노라마

식사를 마친 후 센강을 일주하는 유람선 관광을 하기로 했다. 오후 7시, 에펠 탑 바로 밑에 있는 센강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하였다. 선상에서 벌어지는 ‘크레이지 쇼’ 관람까지 합해서 요금은 1인당 190$이었다.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무희들의 춤과 현란한 몸동작과 잘 조화된 조명 기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행자에게 권할 만한 상품은 아니었다. 에펠 탑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여의도와 같은 곳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나 유턴하여 에펠 탑을 다시 지나 출발지인 선착장에 닿은 약 한 시간 가량의 관광이다. 우리는 선착장으로 들어가 유람선에 승선하였다. 날씨가 구름이 끼어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출발을 했다. 함께 승선한 중국인들이 시끄럽고 부산하게 관광하는 것을 보니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광 수준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조소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센강의 야경

파리의 센강은 강변에 프랑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서 깊은 건축물과 현대에 지어진 다양하고 독특한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파리의 관광코스로 센강 유람이 필수이다시피 하고 있었다. 파리의 센강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루브르 미술관에서 에펠 탑까지, 콩코드 광장에서 그랑팔레와 프티 팔레까지 파리의 발전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종합 관광의 대명사라고 했다. 우리는 유람선 관광을 하면서 베르사유 궁전, 샹젤리제 거리, 앙발리드, 오르세 박물관, 국립 미술학교, 콩코르드 광장, 개선문, 에펠 탑의 야경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건물의 아름다움과 함께 유서 깊은 역사적 예술품을 한 번에 다 볼 수 있다는 것에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에펠 탑 야경 daum inage

센강에 일몰이 가까워지자 비구름이 잔뜩 드리우며 시야를 빼앗아간다. 그동안 영국의 템즈 강변과 마찬가지로 센강도 파리시 중심가를 관통하면서 파리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센강 유람선 역시 탁월한 관광 옵션이라는 생각아 들었다. 센강 야경 유람선에 오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이 실감이 가듯 황홀경에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바로 시구로 들려온다. 센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에펠 탑 야경은 특히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밤에 보는 파리, 센강의 유람선을 타고 강 양쪽으로 세워져 있는 중세의 건물들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에펠 탑이 쏘아대는 레저 빔이 비출 때마다 번쩍번쩍 빛나는 건물과 센강의 다리들, 그 다리 위의 조각상들은 꿈을 꾸는 듯 황홀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아름답다, 예쁘다, 화려하다는 등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형용사들을 다 동원해 가면서 탄성을 지르며 밤의 파리를 구경했다.     


파리는 곳곳에는 막연히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향기가 있다. 도시에서 느껴지는 그런 정서가 파리만큼 자유롭고 향기로운 곳이 또 있을까 싶다. 파리는 아름다운 도시인 것만은 틀림없다. 파리 거리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각별한 즐거움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에 헐렁한 재킷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배낭을 메면 그것으로 세계 최고의 멋쟁이가 되는 파리지엥들을 바라보는 즐거움 말이다. 파리 시내에 중심가에 몰려 있는 에펠 탑이나 개선문, 몽마르트르 언덕 같은 곳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난생처음 보는 것이어도 마치 우리 이웃 도시에 있던 것처럼 낯익은 이름들이니까. 센강을 끼고 파리의 도심을 이곳저곳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파리의 로망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한눈에 담으며 센강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숙소인 ‘Hotel Clarine’로 돌아왔다.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침대 위에 눕혔다. 모두들 굿밤!   





유럽 여행 3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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