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의 회색도시, 런던
브리타니아 호텔에서 설레는 밤을 보낸 후 런던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침 일찍 서둘러 일어났다. 런던에서의 첫날이라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베이컨과 스크램블 에그, 요구르트와 과일로 간단하게 마쳤다. 9시 10분 출발에 앞서 간단한 주의사항이 전달되었다. 런던은 요즘 서머타임 주간이라, 원래는 우리나라와 9시간 차가 나지만 지금은 8시간 차가 난다고 하면서 시차 적응에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런던의 고색 찬연한 역사와 문화, 교통, 환경 등에 대한 견학을 통해 선진 도시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 가고 싶은 마음으로 기대와 호기심이 어우러져 몸과 마음은 새털같이 가벼워졌다.
우리는 런던의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향해 여행사가 제공하는 전용 버스에 올랐다. 차가 달리는 도로는 편도 1~2차선의 좁은 도로로 옛날 마차가 다니던 길을 그대로 포장만 해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자동차 사고가 거의 없는 나라라고 한다. 런던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런던의 명물인 빨간색 2층 버스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런던에서는 버스가 지하철보다 이용 요금이 상당히 저렴하기 때문에 더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런던의 날씨는 정말 우중충한 게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다.
런던의 상징, 타워 브리지
먼저 템스 강에 웅장하게 서 있는 타워 브리지로 향했다. 타워 브리지로 명명한 것은 런던탑(타워) 근처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886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1894년에 완성한 이 다리는 국회의사당의 빅벤과 함께 런던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축물로 오늘날에도 런던의 대표적인 상징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원래 템스 강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주요 무대여서 하루에 수백 척의 배가 템스 강을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6m 이상인 데다가 다리와 강 수면이 10cm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배들이 쉽게 통과하지 못했던 탓에 1894년 빅토리아 양식의 개폐식 다리인 타워 브리지가 완공되었다고 한다. 대형 선박이 지나갈 때마다 개폐형으로 만들어진 다리 가운데가 분리되어 양쪽으로 서서히 들리기 시작해 여덟 팔(八) 자 모양이 되었다가 거의 90도 가까이 세워지는 모습은 많은 관광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장관이지만 아쉽게도 다음 일정에 메여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었다. 다리가 들리게 되면 양 탑의 문이 닫히고 브리지 양쪽의 차선은 통제된다고 한다. 책에서만 보았던 타워 브리지는 다리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과 같다는 인상과 함께 우리나라 부산의 영도다리를 떠올려 본다.
비극의 역사를 품은 런던 성
타워 브리지 앞에서 멀리 보이는 회색 건물이 ‘런던 성(타워)’이라고 했다. 도시의 회색빛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보수적인 영국의 전형적인 색깔이 아닌가 싶다. 런던 성은 1078년 노르만의 정복왕 월리엄 공이 템스 강변에 세운 화이트 타워를 역대 왕들이 증, 개축을 거듭하여 중세의 모습은 사라지고 17세기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런던 성의 중심 건물인 화이트 타워는 처음 건축할 때는 흰색이 아니었지만, 헨리 3세가 흰색으로 외장을 꾸민 뒤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런던 성이 유명해진 이유는 권력과 왕좌를 둘러싼 ‘피의 역사’ 때문이다. 런던 성은 원래 왕궁이었으나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정치범의 투옥, 고문, 처형 등 감옥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비극의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흘러가는 템스강 물결을 바라보노라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형에 처해졌던 죄수들의 참수된 시체가 템스강에 버려졌다고 하는 피의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불멸의 런던을 상징하는 대화재 기념탑
타워브리지를 지나면서 가이드는 마주 보이는 높은 탑이 런던 대화재 기념탑’이라고 가리키며 탑을 세운 유래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666년 당시 런던 동쪽 시티 지역에서 대화재가 발생하여 가옥 13,000여 채가 불타 시티 지역 주민 대부분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는 재난을 당하는 대형참사가 있었다.
화재는 처음 빵 가게에서 실화로 발생하였는데 때 마침 불어온 강풍으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 사되었지만, 화재가 발생한 장소가 목조 가옥이 밀집된 서민 동네였던 데다 당시 소방기술이 열악하여 조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없어서 화재는 나흘간 런던 시티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고 한다. 화재 후 런던 시티 지역에서는 목조로 가옥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모든 가옥은 석재 혹은 벽돌로만 건축되도록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기념탑은 빵 가게에서 일어난 불이 런던 시내로 번진 대화재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로 런던의 아픈 역사라고 한다. 이 기념탑은 높이 62미터로 기둥 기단부 둘레에 새겨진 부조는 도시를 재건하는 찰스 2세를 보여 주고 있으며, 311개의 계단을 올라 기념탑 전망대에 서면 런던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고 했지만 그기까진 올라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세계 역사 유물의 전시장, 대영박물관
대화재 기념탑을 지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대영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했다. 세계 3대 박물관이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대영박물관의 외관을 보는 순간 또 한 번 경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멋진 건물이었다. 대영박물관은 영국의 런던 블룸즈베리에 위치해 있는 영국 최대의 국립 공공박물관으로 과거 영국이 제국주의 시대부터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수집한 방대한 유물들을 소장 및 전시하고 있다. 영국 자체의 예술품보다는 이집트, 그리스, 인도, 중국 등 세계 문명의 기념비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이나 이집트 상형문자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였던 로제타 스톤이 대표적인 전시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초기의 대영박물관은 몬테규 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1816년에는 지금도 논란이 큰 그리스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유물들이 수집되었으며, 이것은 대영박물관의 가장 우수한 전시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대영박물관은 개관 당시부터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박물관 내에 보관되어있는 유물 중 영국 유물의 비율이 3% 정도밖에 되지 않아 영국법에 명시된 요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각종 유물 등 문화재는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특히 그리스 관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가 바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들을 전시한 파르테논관이다. 아테네에 있던 신전을 부분별로 통째로 뜯어다가 영국으로 옮겼다고 한다. 네레이드 제전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실제로 가져온 거대한 신전으로 바다의 요정 네레이드를 조각해 놓은 센토스 지방의 옛 지도자의 무덤이라고 한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할 문화재가 약탈의 현장에 와 있는 것을 생각하며 씁쓸한 감회에 젖어본다. 5천 년 전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된 진저 미라, 그리스 센토스 신전, 파르테논 신전, 헤라클레스, 포세이돈, 신들의 잔치 등. 각종 신들의 목을 자르고 팔을 꺾고 성기를 잘라놓은 것은 국력 쇠약 및 씨를 말린다는 의미와 신의 콧대를 꺾고 기세를 높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 박물관의 웅장한 규모와 고대국가의 유물을 보면서 처음에는 대단하다고 감탄하였지만, 남의 나라에서 전쟁의 전리품이라는 명목으로 약탈해 오고 심지어 떼어다 놓은 전시품들을 보면서 역사의 비극이 남긴 교훈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마치 우리나라의 유물이 일본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는 기분처럼.
런던의 대표 정원, 하이드 파크
런던 도심지에 있는 하이드 파크는 어마어마한 면적을 자랑하는 왕실 공원으로 유럽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영국식 정원의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한다. 하이드파크 공원 은 넓기도 하지만, 원시 그대로의 자연이 보존된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간 것을 느낄 수 있다. 원래 하이드 파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영지로 1,536년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수도원을 파괴할 당시 몰수하여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했다고 한다. 공원은 온통 낙엽으로 깔려 있고 햇빛을 그리는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이드 파크는 원시의 자연을 누리는 듯한 풍경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푸근하게 해주는 매력을 가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킹엄 궁전과 근위병 교대식
우리는 다음 방문지인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버킹엄 궁전은 영국을 대표하는 궁전으로 현재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버킹엄 궁전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바로 궁전 중앙 입구에서 거행되는 ‘근위병 교대식’이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모여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었다. 근위병 교대식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매일, 가을부터 봄까지는 격일제로 실시한다고 한다. 마침 오늘은 교대식 행사가 있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람들 틈에 끼여 본다는 것이 여간 곤욕스럽지 않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버킹엄 궁전에서 도보로 십여 분이면 많은 공원과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버킹엄 궁전 뒤편에는 버킹엄 펠리스 가든이 있고 좌측에는 그린공원이 있고, 맞은편에는 세인트 제임스 공원이 펼쳐져 있어 런던 시민의 중요한 휴식처이며 가장 경치가 좋은 공원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영드 셜록 촬영지, 해리 포드 촬영지, 내셔널 갤러리, 핸리 하비 록 장군 동상, 조지 4세의 기마상과 사자상 등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마치 예술의 전시장 같은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좋은 날이니 산책하듯 런던을 마음대로 느끼고 걸으면서 영국 정치의 중심지로 알려진 다우닝가 10번지 국회의사당과 빅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빨간 전화부스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빨간 전화부스는 특색 없는 다른 나라의 전화부스와 달리 영국의 빨간 전화부스에 들어가면 왠지 판타지 영화 속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빨간색 이층 버스들도 흔하게 지나다닌다. 런던을 여행하는 초보자라면 이층 버스를 타고 런던 한 바퀴를 여유 있게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민주주의의 상징, 국회의사당
영국 정치의 중심지여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철문 주위를 기웃거린다. 다우닝가 10번지에 위치한 총리 관저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어서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총리 관저뿐 아니라 영국의 정치 중심지인 만큼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는 곳이었다. 총리 관저부터 재무성, 외무성 등 영국의 주요 건물들이 있는 이곳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날카로운 눈빛의 경찰들이 찬바람이 느껴지는 포스로 서 있는 모습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영국의 국기는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4개의 국가가 합쳐진 연방국가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지역감정이 심하다고 한다.
국회의사당은 빅토리아 왕조 최초의 대규모 건축물로 웨스트민스터 궁전이었다고 한다. 18세기 화재로 인해 궁전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16세기부터 이곳에서 의회가 열렸다고 한다. 템스강 변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고 있으며 총면적 32,000㎡의 부지 위에 1,000개가 넘는 방과 총길이가 3.2km나 되는 신고딕 양식으로 요크셔 석회석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이다. 건물 남쪽에는 국회의사당에서 가장 높은 100m 높이의 빅토리아 타워가 세워져 있으며 의회가 개회 중일 때는 유니언 잭(영국 국기)이 게양된다고 한다.
런던의 랜드마크 빅벤
빅벤은 영국 국회의사당의 동쪽 끝에 있는 대형 시계탑이다. 1834년 10월 영국 국회의사당이 큰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자, 1859년 전통적인 고딕 양식에 따라 건물 양 끝에 두 개의 대비 요소를 두어 서쪽 끝에는 빅토리아 타워를, 동쪽 끝에는 시계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 시계탑을 빅벤이라고 부르는 것은 ‘크다’라는 뜻의 영어단어 ‘Big’과 공사 담당자였던 벤자민 홀(Benjamin Hall) 경의 이름 ‘Ben’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시계탑 안의 종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시계탑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빅벤은 15분에 한 번씩 타종을 하며 매년 12월 31일 자정에는 12회의 타종을 한다. 시계 4면에는 라틴어로 ‘DOMINE SALVAM FAC REGINAM NOSTRAM VICTORIAM PRIMAM’이라고 쓰여 있으며 그 뜻은 ‘오 주여, 우리의 여왕 빅토리아 1세를 지켜주소서’라고 한다.
영국 황실의 공식 행사장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에서 길만 건너면 만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영국 고딕 양식의 거대한 성공회 성당으로 서쪽으로는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인접해 있다. 전통적으로 이곳은 영국의 왕과 여왕의 대관식뿐만 아니라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 및 국가의 주요 행사를 치르는 장소이다. 사원 내부에는 역대 왕과 여왕, 정치가(처칠, 글래드 스톤 등), 문학가(셰익스피어,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등), 과학자(뉴턴, 다윈 등), 음악가(헨델 등) 등이 잠들어 있는 묘와 기념비가 있다. 이 중에서도 뉴턴의 묘와 챕터 하우스는 영화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사원의 절반은 성당으로 나머지 반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 년 내내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는 이곳은 런던의 명소인 빅벤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보기 위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숨 막힐 듯이 많은 사람들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사원을 바라보면 고색 찬란한 자태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기념비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나와 전용버스를 타고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트라팔가 광장은 넬슨 제독이 스페인-프랑스 연합함대를 물리친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라고 한다.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지만 그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넬슨 제독은 죽음을 앞두고 부하들로부터 전투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보고를 받고 "내 임무를 다 할 수 있게 해 준 신께 감사드린다"며 숨을 거둔다. 부하들은 넬슨의 유해를 영국까지 운구하는 긴 항해 기간 동안 유해의 부패를 막기 위해 럼(Rum) 주를 관 속에 가득 채운다. 그러나 영국에 도착해서 뚜껑을 열어보니 럼주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넬슨의 용기와 전투능력, 그의 위엄에 존경심을 표하던 부하들이 그의 혼이 담긴 술이라며 다 마셔버린 것이다. 관 속의 술을 '넬슨의 피'라고 외치면서. 이후 영국 해군 장병들에게 배급되는 럼주는 '넬슨의 피'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다. 넬슨 기념비는 높이가 52미터이고 기념비를 둘러싸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 동상은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로 획득한 스페인과 프랑스 연합군 전함의 대포를 녹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트라팔가 광장은 별칭도 많다. 광장에는 사람들도 많지만 비둘기들도 많아 비둘기 광장으로도 부르지만, 일명 넬슨 광장, 데모의 광장, 키스의 광장으로도 불린다고 하니 광장의 쓰임새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런던 시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의 현장을 살피다 보니 어느 듯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정말 바쁘게 런던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문화를 직접 보고 느끼면서 보낸 시간이 감동으로 남아 있지만, 빠듯한 일정에 많은 것을 소화하기 위해 아쉬움을 남기며 런던을 떠나야만 했다.
1996년 10월 23일(수) 17시 48분, 우리는 런던 워털루역을 출발하여 파리 노드 역까지 가는 E/STAR(테제베)에 몸을 실었다. 영화 <애수>의 무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 런던 템스강변의 워털루. 그 워털루역은 이제 유럽 초특급열차(T.G.V)의 출발지다. 전용 개찰구와 대합실이 따로 있었고, 모든 시설은 공항을 능가했고 최첨단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유로스타는 도버해협 바다 밑을 통과해 파리로 향하는 시속 300km/h의 무서운 속도로 해협을 건넜다. 런던과 파리를 운행하는 유로스타는 1시간 간격으로 하루 15회 왕복 운행을 하며 소요 시간은 3시간 10분이라고 한다.
열차 내에서는 밖이 보이지도 않아 답답했다. 종일 다닌다고 피곤했는지 잠이 스르르 왔다. 한참이 지난 후에 열차가 노드 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역을 빠져나와 다시 전용 버스로 오늘 묵을 호텔을 향해 파리 외곽순환도로를 달렸다. 오늘날 파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순환도로는 원래 성벽과 성문이 있었으나 1860년도에 도시계획을 위해 허물고 도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차는 시속 80km/h로 운행하면서 6번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파리에서 첫 밤을 보낼 숙소인 ‘Hotel Clarine’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안내원은 전화 요령, 전화카드 사용 방법과 함께 간단한 프랑스식 인사말을 알려주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언어는 아름답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우아하고 매력적이며, 귀족적인 언어가 프랑스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과한 칭찬인가?
# 기본 인사말
Merci(beaucoup). ( 메르시 (보끄)) 감사합니다.
Bonjour./Salut. (봉쥬르 /살뤼) 안녕하세요.
Enchante(e). (앙샹떼) 처음 뵙겠습니다.
Excusez-moi. (엑스 꾸제 므와) 실례합니다.
Pardon. (빠르동) 죄송합니다.
D’accord. (다꼬르) 좋습니다.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만나는 런던의 역사 유물과 문화의 무게감에 감탄을 연발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표정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곳에도 골목길 곳곳에 고된 삶에 지친 사람이 있을 것이고, 행여 만날 수 있는 노숙자의 비루한 모습이 런던의 이미지를 당혹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유럽에 머무는 동안 어디선가에서 삶의 어두운 구석을 보고 고독을 느낀다면 그만큼 성숙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일정을 마쳤다. 가이드는 내일 일정을 위해 취침 전에, 모닝콜을 아침 7시에 맞춰 줄 것과 8시 전으로 식사를 완료한 후 09시에 목적지로 출발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빨리 움직여달라는 부탁을 했다. 호텔에 도착 후 각자 방으로 들어가 여장을 풀고 간단한 복장으로 호텔 식당에서 뷔페로 저녁을 먹은 후 내일을 위해 휴식에 들어갔다.
유럽 여행 2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