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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Jul 10. 2020

한란의 기억법

마지막 메시지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보세란, 한란, 소심 등 난 분들과 상쾌한 향기의 로즈메리와 박하 향기 가득한 페퍼민트 등이 함께. 그중, 내가 애지중지하는 한란(寒蘭)은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잎과 함께 매끈한 몸매와 고귀한 품격을 자랑이나 하듯 덩그러니 혼자 자리하고 있다.


며칠 전 꽃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오늘내일 꽃망울을 활짝 터트릴 기세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 저녁, 베란다로 허급지급 달려가 한란을 본다. 잠시 시간을 놓친 사이, 한란은 마치 힘찬 날개 짓하는 선학(仙鶴) 같은 수려한 자태의 꽃을 피웠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동양화가 있을까.

한동안 한란의 우아한 꽃 빛과 그윽한 향기 속에 빠져들었다.




짙은 국화 향기를 음미하던 어느 늦가을,

그 친구가 정년퇴직을 축하한다며 작은 메모와 함께 화분을 보내왔다. 푸른빛이 감도는 도자기 화분엔 고고한 자태의 난초 한 본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형님, 제주 한란처럼 품격 있고 멋있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축하의 고마움보다, 한란과의 해후가 더 큰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한란의 부드러운 잎 새와 은은하고 맑은 꽃 향은 가히 최고의 난이라 해고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추운 겨울에 핀 아름다운 한란을 보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공직에 있을 때였다. 모 지방자치단체에 일곱 명이 같은 날 인사이동되어 왔다. 그들은 함께 왔다는 동질성만으로 끈끈한 교류를 이어갔다. 분기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서로의 친분을 쌓아갔다.


그 친구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언제나 특유의 활달한 언변과 재치 있는 말로 주위를 유쾌하게 만들며 ‘분위기 업 맨’으로 통했다.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그 친구는 언제나 나를 형님이라 불렀다.

그들은 친구처럼, 형과 아우처럼 소탈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키워나갔다.




간암으로 병석에 누웠다는 그 친구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은 정년퇴직 후 모 기업체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모임의 총무가 전해 준 그 친구의 소식으로 내 머릿속은 잠시 순간 하얘져 있었다. 생각의 끈이 잘려 나간 것만 같은 멍한 충격이 한동안 말을 잃어버렸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던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으니까.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퇴근 후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배드민턴 동호회원들과 한두 시간씩 운동하며 날마다 싱글벙글했던 그 친구.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을 앞두고 빼앗긴 허탈감이 화살처럼 심중에 와 박혔다.

간암 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다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 눈을 감은 채 흐르는 눈물조차 닦을 수도 없었다.




내게 한란을 전해 온 것은 그 친구가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듣기 얼마 전이었다. 죽음을 앞둔 생의 끝자락에서 정년퇴직을 축하한다며 화분을 보낼 생각까지 하였는지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아마도 한란의 청향(淸香)처럼 오래도록 그윽한 향기를 세상에 남겨두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 이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홍자색 운치를 지닌 한란의 깊은 향기를 기대하며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해졌다. 말조차 할 수 없는 아픔이 밀물처럼 가슴 안으로 쏟아져 왔지만 예정된 결과라는 초연한 마음으로 우정을 담은 하얀 국화 한 송이로 이별을 대신했다.




인연은 잠시 시간의 기억 속에 갇혀있다, 언젠간 지워져 갈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과 같은 것이다. 삶의 엇박자 속에 살다 순서 없이 떠나간 그 친구의 향기가 한란과 함께 오래오래 살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가오는 겨울에도 한란은 형용할 수 없는 그윽한 향기를 뽐내며 행복했던 날들을 다시 기억해 낼 것이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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