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빙하와 만년설을 품은 도시
누군가 스위스의 매력에 빠지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것은 유럽의 모든 풍경이 스위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하며, 특히 스위스 여행에서 빠트리지 말아야 하는 곳 중의 하나가 루체른이라고 한다. 루체른은 중세 시대의 역사의 향기가 남아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여행은 어디를 가든지 다 그림엽서 같은 아름다움을 품은 나라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스위스 여행을 꿈꾸면 찾아오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전용 버스를 타고 알프스의 영봉으로 빙하와 만년설로 유명한 티틀리스로 향했다.
빙하와 만년설이 펼쳐진 명봉 티틀리스(Titlis)
티틀리스는 1년 내내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스키 코스도 있어서 마터호른, 융프라우요흐와 함께 티틀리스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산 아래 엥겔베르그 역이 해발 1,250m였다. 우리가 처음 출발부터 높은 곳에서 해서 그런지 잘 몰랐는데 올라와 보니 티틀리스 산 정상이 3,238m라 한다. 고산병이 시작된다는 3,000m.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디뎠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마침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불지 않아 설산이라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엥겔베르그에서 티틀리스 산 정상까지는 총 3번의 곤돌라를 타야 했다.
# 엥겔베르그 (곤돌라 20분) → 트륍제 (케이블카 5분) → 슈 탄트 (로테어 5분) → 클라인 티틀리스
특히 마지막에는 360도 회전하는 ‘티틀리스 로테어’를 타고 돌면서 티틀리스 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회전식 곤돌라는 이곳이 세계 최초라 했다. 산 정상에 올라가니 눈부신 만년설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알프스 산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온통 눈밭으로 뒤덮인 산은 내 평생 볼 눈 여기서 다 보고 가는구나 싶을 정도로 설원의 정취가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곳에 서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다녀와서도 꿈꾼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설경에 매혹되어 봉우리 정상에 섰다가 발을 헛디뎌 까딱했으면 눈구덩이 속으로 빠져 조난당할 뻔했던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소름 돋게 하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알프스의 설산을 관광할 때는 조금만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안전사고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산 교훈을 얻었다.
흔들리는 다리 ‘클리프 워크’를 타고 만년설 쌓인 산과 계곡을 보며 이동하면서는 섬뜩한 두려움마저 느꼈다. 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것이지만 스릴이 넘쳤다. 다음은 아이스 플리어를 타고 빙하 동굴로 이동했다. 빙하 동굴에서 나오니 티글 리스 로테어와 연결되어 있었다. 다음 코스로 루째른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매점에서 빵과 감자 스낵, 생수를 사서 먹었다. 알프스에서 먹는 점심 식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알프스 산을 중심으로 산 중턱에 낙농 농가의 평화로운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이 마을이 천사의 마을, 엥겔베르그 라 했다. 티틀리스 산의 기억을 뒤로한 채 우리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루째른으로 향했다.
피어 발트 슈테터 호수를 끼고 있는 호반의 도시, 루체른
스위스 루체른은 해발 400미터에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중세 시대에 건축한 건물들과 아름다운 호수와 여유 있는 사람들의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제일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은 역시 '카펠교'였다. 이 다리는 유럽의 산 역사로 아름답다기보다는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면서 중후한 느낌을 주었다.
루체른은 스위스에서 4번째로 큰 피어 발트 슈테터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다. 로이스 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어져 북쪽에는 중앙 역이 위치하며, 남쪽에는 구시가 호수 변으로 16세기에 번성했던 예술 기법으로 채색된 벽화들이 좁은 골목과 화려한 광장을 장식하고 있으며 다양한 상점들과 패션 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름다운 호숫가를 거닐며 진한 커피 향을 맡으니, 인생의 때가 어느 듯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 루체른에 가면 아름답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말을 하는 것인지.
중세 스위스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유산들도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또한 루체른은 근교의 피 라투스 산과 리기산이 피어 발트 슈테터 호수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많은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이 즐겨 찾는 스위스 최대의 관광 휴양지로 알려져 있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 짓는 로이스강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인 카펠교가 있었고, 주변의 명소로는 옛 스위스 용병들의 고난과 용맹성을 교훈으로 삼는 빈사의 사자상과 빙하공원이 루체른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곳 루체른은 우리 한국 여행사나 배낭 여행객들의 필수코스이기에 이곳에 오면 우리나라 여행객들을 몇십 명은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루체른 카펠교의 매력에 빠지다
스위스의 대표적 관광명소는 역시 '카펠교'였다. 중세 시대에 건축되었다는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리로 호수 위에 낭만적으로 가로 놓여 있었다. 도시 방어를 위해 14세기에 건설된 204m 다리로 다리의 난간이 서쪽은 낮고, 동쪽은 높은 것도 방어개념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 그려진 다양한 그림은 루체른의 역사와 수호성인(守護聖人)들이었다. 다리 중간에 우뚝 선 43m 팔각 탑은 당시 감옥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감시탑 역할도 겸했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다리 위에 지붕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다리 위에 지붕이 있는 다리는 아직 보지 못했다. 지붕에는 루체른을 지킨 성인들의 그림이 있었지만 1993년 화제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판화 25개 정도 복구되어있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면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카펠교는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견딘 목조 다리라는 자체가 신기하기만 하다. 보통 나무는 물속에서 오래되면 썩기 마련인데 카펠교는 오래도 견뎌낸다. 입구의 안내문에 의하면, 삼 년 전인 1993년 8월에 행인이 던진 담뱃불에 70~80%가 불에 탄 뒤 그다음 해에 다시 원형 그대로 복구하였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카펠교는 불이 한 번 나서 그을린 자국은 약간 남아 있지만 아직도 튼튼해 보였다. 마침 날이 맑고 따뜻해서 카펠교가 있는 강변 노천카페에는 사람들이 커피나 음식을 먹으며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영화 속 같은 이국적인 멋진 장면을 보면서 우리도 그 속에 묻혀 있었는데, 갑자기 비도 내리고 날씨가 별로 좋지 못해서 실내공간 2층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카펠교에 담긴 화재 시 상황을 다시 상상해 보며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빈사의 사자상에 숨은 충성심을 기리며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루체른에서 빠질 수 없는 관광 코스라고 하는 '빈사의 사자상'이 있다는 루 체르니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를 지나 조금 들어가니 제법 큰 빈사의 사자상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조각상을 자세히 보니 머리맡에 창과 방패가 놓여있고 등에는 부러진 창이 박혀 있고 굶어서 초췌해져서 죽어가는 사자상이었다. 빈사의 사자상은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있던 궁전을 지키던 스위스 용병 전사자 786명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각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위스 용병을 상징하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사자 등에 칼이 찔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었다. 당시 스위스는 온통 산악지형이라 먹고살기가 어려워 서 자신의 가족 생계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사들이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 가서 왕실들을 보호하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사자에 등허리에 창이 꽂혀 사자가 혀를 벌리고 죽기 일보 직전의 형상을 조각하여 스위스 병사들을 기리는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조형물로 알려져 있었다.
빈사의 사자상에 숨은 이야기
1792년 루이 16세 때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정부군과 혁명군과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에 루이 16세는 스위스에서 용병을 돈을 주고 사 왔다고 한다. 그 당시 스위스에는 자원이 없어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 용병 업이었다고 한다.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건강하고 용맹스러운 병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세계 각국에서는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심과 용맹성을 높이 평가하여 용병들을 많은 돈을 주고 사다가 사용을 하였었다. 루이 16세도 왕궁 근위대도 있었지만, 혁명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스위스 용병 786명과 계약을 하고 왕궁을 지키는 데 투입하였다. 그러나 정부군은 패하고 혁명군이 왕궁까지 밀고 들어오게 되었다. 왕궁 근위대도 다 도망가고 왕궁이 점령되게 되었을 때 왕이 스위스 용병 대장에게 “너희들은 프랑스 국민도 아니니 오늘부로 계약을 해지하겠으니 너희 본국으로 돌아가라 내 백성도 나를 두고 다 도망을 갔는데 너희들이 여기에서 죽을 이유가 없다”라고 하자, 용병대장은 “우리는 비록 돈을 받고 왔지만, 우리가 맺은 계약대로 충실히 충성을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왕의 권고를 무시하고 끝까지 혁명군과 싸우다가 786명 모두가 죽었다. 혁명군은 용병들의 시신의 머리를 잘라 장대에 메 달아 가지고 파리 시내를 활보하며 거리에다 내다 걸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접한 덴마크의 조각가인 트루 발센이 충성스러운 용병들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스위스의 루 체르니 공원에 빈사의 사자상을 조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린 루체른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이탈리아 밀라노를 향해 서둘러 출발했다. 저녁 6시경 밀라노에 도착하여 호텔 QUARK에서 저녁 식사 후 호텔 휴게실에 모여 각자의 입맛에 맞는 스위스 전통 티백차를 한잔씩 마셨다. 차를 마시먄서 연수단장을 포함한 15명은 그동안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루체른까지 4개국을 여행하면서 심신이 조금은 피곤해져 있을 시간이 되었지만, 마지막 남은 이탈리아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등 3대 미항, 그리고 로마 여행을 위해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화이팅하고 남은 기간 동안 몸건강히 멋진 추억을 만들어 가자는 결의를 모으고 난 후 각자의 방에서 내일을 위한 휴식에 들어갔다.
유럽 여행 7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