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대 미항의 환상을 찾아
로마에서의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DUCAD’ESTE 호텔에서 토르티야로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한 후 숙소에서 나와 7시 30분에 전용 버스에 올라 일정대로 세계 3대 미항 중 첫 번째 관광지인 나폴리로 향했다. 검푸른 바다 위로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고 오렌지 향기와 시원한 해풍이 밀려오는 상큼한 나폴리를 상상하면서. '나폴리를 한번 본 후에 죽으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아름다움으로 손꼽히는 지중해의 도시로 기억돼서 그런지 내 마음을 더욱 끌어당겼다.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나폴리를 쓰고 그렸지만, 어떤 훌륭한 작품도 나폴리의 진가를 전부 담아낼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괴테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폴리는 그 모든 것의 이상이며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본 나폴리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폴리는 아름다운 도시보다는 영화에서나 보던 마피아들의 무대가 생각날 정도로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였다. 그러나 나폴리는 누군가에겐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곳이며 누군가에겐 최악의 도시가 될 수 있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대한 선입견에 괜히 가방을 더 꼭 쥐고, 지나가는 행인 모두를 경계하며 걷다 보니 이 도시의 풍광을 즐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긴장을 늦추고 찬찬히 둘러보면 나폴리의 일상이 보일 것이라 생각하며 중앙 역을 지나 단테 광장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스카나나폴리는 '나폴리를 반으로 나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세계 3대 미항에 이름을 올린 나폴리지만 스카나나폴리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으며 빈민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집집마다 걸려있는 빨래와 소형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듯한 좁은 골목길로 지저분했지만 예스러운 모습으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우스운 이야기로 빨래가 폴폴 날린다고 해서 나폴리라 불러진다고 할 만큼 지저분해 보였다. 거리엔 정부와 마피아 간의 이권 문제로 쓰레기가 넘쳐나고 게으른 도시는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조차 없었다. 바다를 끼고도 펄떡이는 생선조차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당시 날씨가 흐려 사진이 잘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나폴리 도심에 들어가 보니 쓰레기와 낡은 건물, 혼잡한 차량 등으로, 미항(美港)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혼란한 환경에 실망했다.
그러나 나폴리를 기억하고 있는 남은 환상을 찾아 도시의 골목길을 빠져나와 바닷가로 향했다. 소렌토와 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나폴리 만을 바다에서 보니 잠시 혼란했던 감정이 어느덧 날아가고, 그나마 참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도록 고향을 떠나 있던 바다 사나이들에게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어머니 품속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도시라는 생각으로 바라보니 마치 우리나라 남해안의 어느 항구를 보는 것만 같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폴리 만은 베수비오 화산이 구름에 쌓여있고, 항구는 둥근 바다를 둘러쌓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어 배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우리나라 통영과 흡사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나폴리는 150킬로미터나 되는 나폴리만의 해안선이 항아리처럼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늘 잔잔한 바다로 연중 해일이나 태풍도 없으며, 지중해성 해양 기후로 일 년 내내 온화하고 쾌청한 날씨가 연 300일 이상 계속된다고 한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요건으로 이곳 사람들의 성격은 생기 발랄하고 낙천적이며 정열적이어서 틈만 있으면 곧잘 콧노래를 흥얼거린다고도 한다.
'창공의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는 나폴리의 수호신 이름이고, 나폴리 해안의 지명이기도 하다. 산타루치아 항구는 석양이 질 때 항구를 바라보면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카스텔 델로보의 모습이 환상적이라고 했지만 그때까지 머물 수 없는 일정이 아쉬울 뿐이었다. 카스텔 델로보는 일명 계란 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비밀스러운 장소에 있는 계란이 깨지면 나폴리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라는 전설에 따라 계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산타루치아 해안에서 바라보는 델로보 성은 나폴리에 남아 있는 성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폴리의 상징물로 4개의 원통형 탑이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13세기에 나폴리를 정복한 프랑스의 앙주 왕가의 성이었다고 한다. 해안에서 본 나폴리만과 베수비오 산의 풍광은 또 하나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나폴리에서 관광을 끝내고 변변하게 먹지 못한 아침식사를 보충하기 위해 간식으로 나폴리의 유명 음식인 피자를 먹기로 의견을 모으고 유명 피자점을 찾아갔다. 나폴리 피자는 얇고 바삭바삭하며 토핑 재료도 몇 가지 안되었다. 빵을 구울 때 벌통 모양 오븐에서 장작불로 약 3분가량 굽는데 뜨겁게 달군 오븐 바닥은 대리석 판으로 돼 있었다. 우리는 대리석 오븐에서 구운 피자의 맛을 느끼고 즐긴 후 폼페이로 향했다.
로마 역사의 현장인 폼페이로 가는 A1 고속도로는 조용하고 직선도로로 시원하게 잘 뻗어 있었다. 가는 중 대리석 공장이 여기저기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이탈리아의 산과 들, 여기저기 보이는 농가의 풍경이 그지없이 조용하다. 이곳 사람들은 휴일에도 집 근교에서 축구를 하면서 여가를 보내며 야외로는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대체로 유럽은 직장이 끝나면 곧바로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가족주의가 팽배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폼페이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봉선화 연정’이 흘러나와 고국에 대한 향수에 물씬 젖어본다. 고국을 떠난 지가 벌써 9일째가 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곤해지니 귀에 익은 노래 하나에도 가족들이 생각났다. 가족 생각을 하니 갑자기 된장찌개나 김치 같은 칼칼한 음식을 실컷 좀 먹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여행을 하는 동안 주로 먹은 빵이나 버터, 고기 같은 음식이 체질에 별로 맞지 않은 탓으로 돌려본다. 폼페이로 가는 동안 가방을 뒤지다가 손에 잡힌 종이팩 참소주를 꺼내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오랜만에 마셔 본 소주의 짜릿한 느낌이 지루한 버스 여행에서 오는 답답함과 피로함을 없애주며 목덜미를 자극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의자에 머리를 젖힌 체 창밖을 보니 산허리를 잘라 대리석을 채취하는 광경과 함께 올리브 나무도 곳곳에 보였다.
폼페이는 2000년 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한순간에 화산재에 묻혀버린 나폴리만 연안의 고대도시로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 누수 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다. 그 당시에는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에서 농업, 상업의 중심지로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최고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화산력과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버렸고 당시 2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인구 중 2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폼페이 유적을 처음 접해 흥분과 기대를 안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의 유적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갑작스러운 재앙은 그 당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화산재와 함께 가두어서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도시 전체나 생활상이 고스란히 유적이 되어 오늘날에는 가치 높은 문화재가 된 셈이다.
폼페이 중앙광장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 동상이 있었다. 광장의 동쪽에는 아폴로 신전이 있고 이는 폼페이 아폴로 신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도리아 양식의 신전이라고 하며, 특히 활을 쏘고 있는 아폴로 청동 상은 이곳의 상징이라고 했다. 광장에서 북쪽으로 벽돌로 쌓은 구조물과 기둥이 바로 제우스 신전이었고 신전 뒤로는 베수비오 산이 보였다. 저 베수비오 산이 폭발하면서 이 폼페이 도시 전체를 묻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에도 잘 묘사되어 있지만, 당시 로마인들의 사치스러운 삶과 쾌락을 일삼는 타락한 도시에 대한 하느님이 벌이 화산 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하며, 아울러 현대인들에게도 큰 교훈을 주는 옛 유적으로 남아있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을 정말 재미나게 본 기억이 난다. 화려했던 도시가 사라지고 사랑은 전설이 되었다는 문구와 함께 사상 최대 화산 폭발로 인하여 일어난 사건을 그린 영화였다. 누구나 다 아는 줄거리지만...
어릴 적 로마군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은 뒤 노예 검투사가 된 ‘마일로’(킷 해링턴)는 폼페이 영주의 딸 ‘카시아’(에밀리 브라우닝)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풍요를 기원하는 비날리아 축제의 대규모 검투 경기에 참여한 ‘마일로’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코르부스’(키퍼 서덜랜드)를 발견한다. 로마의 상원 의원이 된 ‘코르부스’는 ‘카시아’와 정략결혼을 계획하고, ‘마일로’는 부모의 복수와 자신의 연인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건 최후의 검투에 나선다. 그 순간 갑자기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을 시작하고, 도망칠 새도 없이 쏟아지는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에 폼페이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데···두 사람의 운명은.
폼페이는 전체를 돌아다니려면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로 넓은 유적 그 자체이다. 걸어 다니면서 보아도 깔끔하게 잘 정리된 길과 건물의 배치가 계획도시 같아 보였다. 실제로 도시 전체를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나누었으며, 마차가 다니는 길과 인도를 구분하고, 그 아래에는 완벽한 하수도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도시의 서쪽에는 포럼이라고 불리는 광장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신전과 시장, 시청 등이 모여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이 폼페이의 종교,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던 것입니다. 또한 대형 극장과 경기장, 목욕탕, 상점은 물론 허가받은 매춘 업소까지 있었다니 폼페이가 얼마나 번성한 도시였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주요한 유적지들을 하나라도 빠뜨릴까 가이드를 따라 열심히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도 빠질세라 찍어 댔다. 광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재판을 하던 바실리카, 아폴로와 그의 쌍둥이 여동생 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신전이었던 아폴로 신전, 폼페이의 중심지 포럼 등을 둘러보았다. 화산 폭발이 정말 있었던 것인지 모를 정도로 고요하고 깨끗한 도시의 흔적만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곡물창고에서는 정말 여기가 화산이 폭발한 곳이 맞는구나 하는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발굴된 유물을 임시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화산 폭발로 죽은 사람과 동물의 석고 형상을 전시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심지어 임산부와 아이의 형상도 있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이 정말 안타깝고 자연의 재앙 앞에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2000년의 세월을 넘어 내가 여기에 이렇게 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고, 또 어떤 역사가 반복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두렵기도 했다.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탈리아의 위대한 유적지 폼페이를 둘러보는 일정을 마치고 난 후, 홍합이 들어간 해산물 스파게티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쏘렌토로 향해 버스에 시동을 다시 걸었다.
이탈리아 쏘렌토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와 '오! 솔레미오'등 세계적인 가곡의 무대가 되기도 한 이탈리아의 작은 항구도시로 쏘렌토라는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울 것만 같은 느낌이 풍기는 데 직접 와서 보니 더 아름다웠다. 나폴리만의 아름다운 색조와 친숙한 소음, 그리고 오렌지 숲 그리고 올리브나무가 서있는 절벽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 소렌토는 역사와 예술을 자랑하고 있는 평화로운 도시였다. ‘소렌토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현에 있는 도시로 나폴리만을 사이에 두고 나폴리와 마주하고, 배후에 오렌지, 레몬 등의 과수원이 펼쳐진 산지를 등진 명승지이기도 했다.
소렌토에서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자란 레몬들로 만든 술, 사탕, 쿠키 제품들을 판매하는 소렌토의 레몬 시장을 둘러보았다. 작은 골목에 쭉 일자로 펼쳐져 있는 레몬 마켓에서는 레몬 제품뿐만이 아니라, 기념품, 가죽제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잠시 시장을 둘러보았지만 알록달록한 과일과 색다른 물건들로 인해 보는 눈이 즐거웠다. 소렌토 항구로 걸어 내려가는 길은 약간 가파르고 계단도 있고 해서 힘들었지만, 내려가다 보이는 지중해 바다와 해안가로 보이는 절벽 위의 집들은 그림이나 사진 속에서만 봐왔던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소렌토는 지대가 높아서 주변 경치가 한눈에 잘 들어왔다. 오른쪽으로 나폴리만이 보이고 그 너머 산과 육지가 보이며, 반대쪽으로는 소렌토 반도의 산자락에 듬성듬성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었다. 해안 절벽에 세워진 고급 호텔, 별장, 집들이 참으로 아슬아슬해 보였다. 특히 쏘렌토에서 만나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파스텔 톤의 건물들과 코발트블루의 지중해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지중해의 그림 같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쏘렌토 거리의 중심은 '쏘렌토가 자랑하는 위대한 시인 '토르쿠아토 타소'를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붙인 '타소 광장'이며 광장에는 그의 기념비와 함께 소렌토의 수호성인인 ‘산트 안토니노 아베트’의 동상도 있었다. 아베트는 콜레라로부터의 해방, 악마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바다 괴물 물고기로부터 소년을 구해내는 기적을 일으킨 소렌토의 수호성인이라고 한다. 코르소 이탈리아 거리는 타소 광장과 연결되어있는 소렌토에서 가장 매력적인 거리거리로 상점과 바, 레스토랑이 즐비했고 특히 아로마 샵이 많았다. 시티 공원으로 들어가니 베수비오 산에 이르는 멋진 전망과 소렌토의 아름다운 바다 휴양지를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석양을 보지 못해서 아쉽기만 했다. 소렌토에서 항구로 가는 길은 엄청 높은 절벽 높이에 집이 지어져 있는데, 아찔하게 보이는 절벽 사이로 보이는 집들은 무너지진 않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집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함을 매일 보며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에 쫓기는 단체여행이 아니고 자유여행으로 다음에 다시 찾는다면 한나절 정도 천천히 걸어서 구경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쏘렌토를 끝으로 3대 미항을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폼페이 나폴리를 거쳐 다시 로마로 향했다. 출발하면서 본 시계는 오후 4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7시간째 버스를 타고 달리는 것이 벌써 두 번째다. 이젠 유럽 여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지만 엄습해 오는 피곤함은 뿌리칠 수 없었다. 로마로 가는 동안 우리는 잠 속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