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학

가족 간에도 존중의 거리가필요하다

by 박천수





오늘 아침은 유난히 장맛비가 거세게 쏟아진다. 벌써 며칠째 비가 내리면서 희뿌연 안갯속에서도 자연의 색채는 한결 선명해졌다. 갑자기 빗속을 걷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비 내리는 아침, 우산을 받쳐 들고 생각지도 않은 산책길에 나서니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생기와 감미로움을 전해준다. 빗속을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충주에 사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간 오랜만이라는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장을 서며 머릿속을 채웠다. “웬일?”“요즘 코로나도 극성이고, 장마가 계속되어 형이 어디 아픈 데나 없나 해서 그냥 전화했다고”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고마워. 요즘 음식도 잘 먹고, 규칙적인 운동도 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어. 걱정하지 마”




언제부터인가 가족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오면 불안감부터 드는 것은 웬일 일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유달리 가족 간에 적용되는 말로 치부되고 있다. 우리의 영화나 드라마, 이웃의 문제를 통해서 가족 때문에 상처 받고 가족 때문에 절망하는 것을 보아 왔다. 가족이란 우리 삶의 원천이며 온갖 기쁨이나 슬픔이 시작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사랑하는 듯하지만, 그로 인해 가장 상처 받는 관계이기도 하다. ‘남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밉고 상처를 주는 가족이라도 완전히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속에 여전히 되찾고 싶은 그 옛날의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따로일 때나 같이 일 때나 서로에게 버팀이 되고, 설렘으로 다가오는 그런 삶을 그려본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정겹고도 고맙다. 보고 싶어도 저마다의 삶이 있으니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이 가족이다. 언젠가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래서 알베르 까뮈는 ‘인생이란, 홀로 됨과 같이함을 오가는 나룻배’라고 했을까. 까뮈의 <이방인>에 매혹됐던 학창 시절, 정교한 시처럼 운율을 맞춰 논하는 삶의 철학적 관찰이 돋보이는 말이 너무 좋았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살다 보니 가족과 떨어져 사는 친구들이 상당수 있다. 한 친구가 말했다.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흔히 듣던 말인데도 모두가 손바닥을 치며 맞는 말이라며 자신의 경우를 사례로 들었다. 아무리 좋은 사이여도, 혈연 가족이어도 매일 같이 붙어 있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말의 요지였다.


요즘 가족은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 한 공간에 모여 사는 가족이라도 구성원 각자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상대방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특히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표현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말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신혼의 꿈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삶을 지탱하기 위해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의 꿈은 잊은 채 가족이라는 일상에 매달려 살아간다.


어느 날부터인가 두 사람만이 오붓이 만나 식사를 하거나 카페를 찾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둘만의 시간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둘만 있을 때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자녀 관련한 내용을 빼고 나면 별다른 소재나 의미 있는 말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지루해진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정말 저런 사람이었나?’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참았던 감정이 노출되면서 부부싸움도 하게 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상관없다는 말도 있지만, 상대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나면 본인에게도 상처가 남는다. 이런 일은 아마도 서로가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싸움일 수 있다. 우리는 가까워질수록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해버리는 태도를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직접 보아왔을 것이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이 결혼으로 인해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혼생활은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서로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런 문제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부부라 하더라도 개인으로서 인격을 지켜주고 상대도 개인적인 존재로서 인정할 때, 보이지 않는 거리를 통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이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간격이 필요하다. 그 간격 속에는 서로를 아끼는 사랑과 믿음, 존경이라는 관계의 미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영화 <가족의 탄생>을 시청하면서, 가족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가족다운 가족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도 결국 가족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을 가지게 됨으로써 상처를 보듬어가게 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묻혀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음미함과 동시에 각자의 가족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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