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센다는 것은

기쁨과 슬픔의 교차로

by 박천수







해마다 12월이면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면서 지나가는 세월이 허망하고 또다시 한 살을 더해야 하는 당연한 자연의 이치에 익숙해져 있지만, 왠지 모를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감정은 속일 수가 없다.


‘올 한 해 동안 내가 한 일이 무엇이지? 새해에는 올해보다 나은 알찬 계획을 세워 꼭 실천해야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스쳐 지나가는 회한과 함께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교차하며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 무언가를 센다는 것은 좋기도 하지만 나쁘기도 한 기억들이 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소풍 날짜를 손꼽아 세며 설렘에 빠져 잠 못 들던 날들, 결혼식을 앞둔 연인들이 세고 있는 날들은 모두가 행복한 기다림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숫자를 세는 것은 삶의 고통이자 불편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매달 잊지 않고 다가오는 대출금 상환, 자식의 대학 등록금, 연말정산 마감일 등을 세면서 걱정 안 해본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아니면 하나둘씩 늘어가는 흰머리 칼을 셀 때도 무거운 마음 한가운데에서 솟구치는 것은 불안과 슬픔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 가운데 정말 난처한 질문은 나이를 묻는 일이다. "선생님, 몇 년생이세요? 몇 년은 젊어 보이세요. 얼핏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듯하지만 내심 유쾌하지만은 않다. 외관상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처음부터 나이 타령이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이를 말하는 것이 왠지 꺼려진다는 것은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닌지. 평소에 나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나이를 묻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할지도 모르는 난감한 질문으로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나이에 대한 편견에서 오는 선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 아닐까?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할 때도 있지만, 감춰진 욕심을 내려놓고 나이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정을 쏟는다면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무언가를 센다는 것은 기다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어서 슬퍼지는 것보단 기쁨을 주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아침에 거울 앞에 서서 늘어나는 주름살을 세는 것은 슬픈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기적금을 붓고 만기일을 세며 기다리는 일이나, 아기의 출산을 기다리며 예정일을 세어보는 엄마의 마음은 황홀한 기쁨일 것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잘못한 일을 헤아리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꼽아보는 일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무언가를 센다는 것은,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익혀나가는 중요한 동작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 둘 하며 셀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세상에는 사람의 기분과 같이 셀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또, 너무 많아 도저히 셀 수 없는 것도 있다. 오늘만이라도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나와 내 가정이 축복받은 일을 한번 헤아려 보자. 좋은 일도 기쁜 일도 즐거운 일도 세어보면 가득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픈 일이나 힘든 일, 슬픈 일이 더 많았을 수도 있지만 감사한 일들을 세다 보면 당신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질 것이다.


어린 시절엔 밤하늘의 별을 하나하나 세면서 서로의 이름을 붙여본 기억이 있다. 요즘은 밤하늘에 별 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던 그 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밤하늘의 별을 헤며,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던 윤동주 시인의 그리움을 담아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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